무지개빛 새싹이라니



방황하는 건 청춘의 권리라는 말이 있던가..
그리 힘들게 살지도 않았으면서, 불확실하고 불가능으로만 보이는 미래의 행복 앞에서 삶이 버겁게 느껴지는, 나는 이십대 피터팬이다.

네버랜드가 요정들이 살 정도로 숲이 우거진 곳이듯, 내 안의 피터팬이 커져갈 수록 내 방은 하나의 식물원이 되가고 있다.

내 마음이란 녀석이 겁나는 것들을, 두렵고 불안한 것들을 스스로 치료해보고자 하는 심산일까. 원예치료라도 하듯이 봄이되자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맨손으로 흙을 부지런히 만지고, 집에서 몇년이나 잠자던 씨앗들을 고르고, 화분들을 정리한다.

그렇게 하나, 둘 화분이 늘던 것이 이젠 남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아진 건 어찌보면 놀랍지도 않다. 어느 새 정신을 차리고보니 현실은 나를 또다시 재촉했고 흙을 볼 여유가 없어졌다.

ㅡ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씨앗 속 DNA에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생명에의 명령은 어김없이, 아무도 바라봐주지 않더라도, 발휘되어 새 생명들이 벌떡 솟아오른다.

식물을 기르는 일은 잡념을 없애주는 데에도 좋지만, 그들이 살아있다는 것과 -쉽게 죽는 것 같아보이지만- 온 힘을 다해서 살아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나의 방이라도 책상만큼은 되도록 화분을 두지 않는데, 단 하나 예외가 있다: Dendrobium Rainbow, 작년에 난농장에서 받은 작은 아이다.

새로나는 잎에 무지갯빛이 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죽지만 않고 살아있는가 싶을 정도로 변화 없던 녀석이 봄은 봄인줄 알고 새순을 삐죽 내밀었다. 무지갯빛이다.

너 그렇게 좋아하는 식물은 어쩌고,....하는 엄마의 말에 힘겹게 현실과 타협했던 내 자신이 책상에서 패배주의자가 되어버리고 눈물이 쏟아질때, 녀석은 새순을 소리없이 뻗고 있었다.

누구보다 부모님이 그 타협안을 좋아할거라고 생각했던 난 아직 바보였다. 자식이 진정 행복해지는 길이 부모님을 위한 길인 걸 왜 모자란 자식은 모르고 있던걸까.

한참 학생시절에 썼던 일기장들을 읽다보니, 우리 삶이 다 그 책상에 놓인 싹과 마찬가지이다 싶어 또 눈물이 났다. 그렇게 희망차보이던 미래와, 무엇이든 되보고 싶고 무엇이던 경험해보고팠던 무지개같이 다채로웠던 그 열정. 잎사귀가 두꺼워지고 엽록소다 살아남기위해 펌프질을 쉼없이 할때, 잎은 딱딱한 녹색으로 굳어져버린다.

고등학교 야자시간에 강제로 앉아있던 좁은 책상에서 내가 꿈꿨던 것들은 무엇이었을까. 어떤 미래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걸까. 그때의 시각으로 다시 무지갯빛 세상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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