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8. 30. 16:05 생각 기억 느낌/나 관찰일기
다시 한번 기회가 닿는다면 이런거, 저런거 해보고 싶은게 여전히 많이 떠오르지만,
그건 그냥 내가 상상력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일테니까.
어떤 가보지 못한 길은 단념할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걸 배우고 있다.
그래야 상실감, 그리움, 후회, 추억, 이런 것들이 생겨날 자리가 생기니까.
삶이라는 걸 온전히 배우고 알아가기로 결심했으니 달콤하고 좋은 것만 취사선택할 수 없는 거야.
슬픔, 외로움, 좌절, 이런 것도 경험해내는 거야.
그래야 나도 상대방도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는거야.
그래야 더 좋은 것들이 올 자리도 생기는 거야.
그리고 인간은 그런걸 해낼만큼은 강하니까,
해낼 수 있어.
경험해내고도 살아낼 수 있어.
충분히 그럴 수 있어.
-
이런걸 글로 쓴다는거 자체가 자연스레 단념이 안되서 결의를 다지려고 하는 거지.
선생님은 너는 네 발로 나오지 못했을거야 하셨는데 맞는 말같다.
나는 상시 누군가의 노예가 되고 싶은 사람 같다.
정작 노예가 되면 행복하기만 하지도 않으면서도.
노예근성이 뼛속 깊이 자리잡아서 누군가가 나를 함부로 대하고 목줄을 채워주길 바라는 모양이다.
거기서 나오려고 이렇게 돈과 시간을 쓰고 노력하면서도 습성이라는게 참 그렇다.
-
이 세상 그 누구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아도,
아무도 날 원하지 않아도,
나는 살아갈 수 있다.
그럴 수 있음을 증명해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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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24. 03:14 Beyond Barriers/Reading

가벼운 마음으로 고른 책이었는데
마지막 쯤에 자살 충동 부분을 읽다가 먹먹해졌다.
목을 매 자살시도를 한 뒤 두 눈이 다 충혈된 채 병원에 입원하게 된 아주머니 얘기와 허리띠로 병동에서 생을 마감한 한 여자의 이야기를 읽는데 뭔가 내 눈앞에 올가미가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
그러면,
왠지 기분이 좋을 거 같았다.
왠지 편안해질 거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고난 뒤 며칠간 그 생각에서 벗어나오지 못했다.
상담을 받고 조금 나아졌지만 혼자 가재도구들과 있을 때 생각보다 자신을 해치려는 의지만 있다면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자신이 적인 것이 가장 막기 힘든 적이구나.
자해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극도로 우울감에 빠지면 내 심장소리를 듣고 싶어지더라. 내가 살아있는지 아닌지 감이 없어진다.
아무리 애써도 심장박동이 너무 희미해서 잘 느껴지지 않았다.
목을 콱 졸랐다가 푸니까 컥컥 거리면서 숨을 확 들이키니 내가 진짜 살아있구나 하는 감각이 들었다. 그게 꽤 안심을 주는 거 같다. 실제로 죽지 않고 내가 그 전에 멈출 수 있다는 사실도 더해서.
자위를 하는 것도 비슷한 것 같다. 심장이 빨리 뛰고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소설 ‘추락’의 주인공이 섹스에 매달리는 것도 살아있음을 느끼기 위한 것이란 해석이 있던데 공감이 간다.
왜 살아야하죠?
이런 질문을 보통 사람들은 잘 안한다.
소위 정병 걸린 사람들이 달고다니는 질문이다.
이 책으로 돌아오자면,
심각한 정신병리로 인해 병동에 입원한 사람들이 간호사였던 작가의 시선으로 소개된다.
그들은 자신을 돌볼 정신이 온전치 못한 이들이다.
우울과 자살 부분을 보면 돌봄은 커녕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이다.
치매로 시작해서 반사회성 성격장애, 조울증, 우울증, 조현병 등.
마지막에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인생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진로 방황을 하며,
병원에서 결국 오래 버티지 못하고 퇴사해서 스스로 우울증에 걸린 남자.
애초에 진로방황을 한 것부터 자아정체성이 다 발달하지 못한 채 헤매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그도 예술적인 사람이었으나 그걸 발휘하기보단 섬세한 감수성을 다른 사람 감정을 읽고 돕는데 써오다가 병원에서 나온 뒤 깊은 우울증을 통과하고 나서야 만화를 그려 올리기 시작했다.
너무 나랑 비슷해서 묘한 공감이 되기도 하고 나는 결국 만화가 아니라 치료자의 길을 걷는데 내가 가보지 못한 길을 교차하는 것 같아서 부럽기도 하고 나도 역시 저쪽으로 가야하나 싶기도 했다.
우울하면 자신감이 없다.
내 모든 게 부적절하게 느껴진다.
저자도 자신의 만화가 형편없다고 생각해서 올리지 못한 채 붙들고 그렸다고 했다. 온라인 매체가 활성화되면서 인터넷에 올린 뒤 반응이 좋아서 희망을 갖고 출판까지 가게 됐다고 했다.
우울하면 실제보다 더 부정적으로 자신을 본다.
사실 세상은 생각보다 더 친절하고 기회가 있는 곳일 수 있다. 물론 항상 따뜻하지만은 않지만.
그럼에도 우울할때 보는 세상과 미래, 자기자신은 상당히 왜곡된 것일 수도 있다.
감정은 널뛰기를 한다.
이 책을 읽는 도중엔 흑백의 판화같은 저자의 표현력에 초점을 맞춰서 나름 흥미롭게 읽었는데,
마지막에 자살사고가 올라오면서 책을 덮을 때는 나 자신이 극히 우울해져있었다.
분명 작가는 가장 희망어린 말로 책을 끝냈는데 그때 내 머리에 떠오른 생각은 어떻게? 어떻게 그 우울을 버텨냈을까?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을까? 였다.
내가 그의 입장이었다면, 커리어도 박살나고, 뭐 하나 오래 한 적이 없으며, 만화로도 인정받아본 적 없고, 그런걸 붙잡고 방구석에서 계속 그리는데 대중에게 내보이기도 수치스럽고, 우울증 약을 먹으며 지내는 일상 속에서 다시 일어나는게, 하루를 지낸다는게 너무나 어려운 일처럼 느껴졌을거 같다.
하지만 그는 버텨냈고, 살아냈고, 그 터널 뒤에 온 새로운 삶의 지평을 누리게 됐다. 이제 그는 출판 만화가이고, 그 뒤로도 작품활동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포기했다면 보지 못했을 미래이다.
그래서그런걸까?
그래서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걸까?
병동에 치매환자들은 집에 가고 싶어한다.
중환자실에 입원했을때, 그곳의 할머니들은 참 살고 싶어했다.
누군가는 버리려고 하는 삶은,
누군가가 염원하는 삶이다.
두 삶은
동시에 존재한다.
내 안에서도 동시에 존재한다.
힘들어서 삶을 놓느니 힘든 일을 놓는게 낫지 바보야.
그런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내 생각대로 살게되지 않지만,
그건 생각이 보여주는 세계가 현실보다 작아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한 해답이 주어질 수 있음이 이 세상의 미지가 주는 사랑스러운 부분이다.
나도 내 경험으로 만화 그려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우연히 흥미가 생겨 집어든 책이었는데, 저자의 경험의 무게와 방황한 시기를 보면 이러한 책 한 권조차 절대 쉽게 나오는게 아녔구나 생각하게된다.
나는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나만의 답을 찾아내야 한다.
저자가 만들어낸 것처럼,
나만의 답을 만들어내야한다.
작가 특유의 검고 투박한 그림체가 내용과 잘 어울린다.
챕터별로 우리나라 정신과의사 분의 병에 대한 코멘트가 있어서 정신병리에 대해 호기심이 있는 사람이 전반적으로 병의 양상을 보고 싶을 때 도움이 될 책 같다.
어느정도 솔직히 써야할지 고민을 했다. 베르테르 효과를 낳고 싶진 않으니까. 나도 책을 읽으니 그런 생각이 든거니까. 하지만 나는 죽지 않았다. 저자도 살아냈다. 그래서 느낀 그대로 남겨본다. 애초에 누가 많이 읽는 블로그도 아니니..
미래의 내가 몇살까지 살진 모르겠지만 가장 늙었을 때 이 순간을 회상해보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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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24. 01:51 Beyond Barriers/Reading

공감되는 부분을 적자니.. 책 전부를 받아적어야해서 불가능.
좋은 책이냐 물으면 그렇다 말하긴 좀 그렇다.
잘난 척만 하는 사람,
괜찮은 척, 잘 사는 척, 잘나가는 척하다 알고보니 혼자 집에서 고독사한 사람,
쉽게 사랑한다 홀리고 한번 잔 뒤 사라지는 사람,
모든 것에서 수치심을 느끼면서 속으로는 성공한 자신의 환상에 빠져 사는 사람,
자기 외 사람에게 지나치게 비판적이어서 다들 떠나가지만 자기는 오히려 혼자 노력한다 생각하는 사람,
등등
온갖 나르시스트의 사례들이 나온다.
첫 사례부터 쭉 끝까지 안 와닿는게 없다.
하지만 이걸로 누가 나르시시스트인지 판별하고자 한다면 말리겠다, 자기자신을 진단하는 용으로도.
그냥 현대사회, 특히 현재 한국사회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나르시스트이다. 내 생각엔 기득권일수록 더 많은 듯.
오토 컨버그의 성격장애 분류를 배우고 난 뒤에는 나르시시스트들이 유별난 종족으로 보이기 보다는 인간의 성격수준 3단계 (정신증-경계선-신경증) 중 경계선에 해당되는 사람들의 특징임을 알게됐고, 그 뒤로는 이들이 별도 그룹이라기보다는 발달이 덜 된 애기들 모두를 일컫는 상태라고 보게됐다.
결국 자아가 발달될 충분한 정서적 양육경험이 부족하면 남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어렵고, 자기가 주인공이 되고 싶고, 져주는게 극히 싫으며, 실패나 수치를 견디기 너무 힘들고, 사랑은 엄청 받고 싶으면서 책임은 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르시시스트를 한데 뭉쳐서 특이집단 취급하고 관찰하거나 욕하는 건 무의미하게 느끼게됐다.
오히려 발달 중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살아가면서 바뀔 수 있는 부분이라는 걸(하지만 보통의 상담사들도 수년간 애쓰다 나가떨어질 정도인걸 익히 들음, 그만큼 쉽진 않다) 알게됐다.
우리 엄마는 강박적인 사람이었지만 그래서 동시에 나르시스트 적이었던거고,
우리 아빠는 대놓고 자기자랑 일색에, 애한테도 져주는 걸 못하니 외현형 나르시스트인 것이었다.
그냥 다들 그런 구석이 있을 수 있는데 얼마나 병리적으로 심한지, 그리고 완고한지가 차이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나르시스트라는 분류가 유의한 함의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거나, 본인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유형으로써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이전에 자기애성 성격장애 진단 관련 책 후기를 써서 올렸었는데 그건 그냥 정의, 진단문처럼 돼있어서 엥 나도?? 하고 누구나 자기에 대입해서 읽다가 그래서 자기가 대단하다는 공상을 하는게 어디까지가 정상이고 어디까지가 나르시스트라는 거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럴때 이 책을 읽으면 훨씬 와닿는다.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나르시시스트 사례집이다. 그래서 각 사례별로 어떻게 치유하고 대해야하는지는 코딱지만큼 나와있고 별로 도움도 안된다(상담받아라 아니면 거리둬라 두가지임).
그보다 각 사례가 진심 내가 살면서 만난 누구누구들이 떠오를 정도로 자세하다. 사실 내 뇌속이 사찰당한 수준이다.
한 사례에서 겉으로는 화려한 업적을 쌓고 잘나가는 인생을 살았지만 속깊은 대화할 친구 하나 없어 고독사로 집에서 홀로 죽은 채 발견되는 사람 이야기가 인상깊었다.
이걸 동료에게 얘기했더니 실제로 나르시스트 할머니 중에 평소에 친구 많다 하시던 분이 있었는데 정작 장례식엔 친구가 아무도 안 왔다는 얘길 들려줬다.
난 우리 할머니가 항상 친구 많다고 해서 진짜겠거니 했는데 우리 할머니도 생각해보면 완전 자기애적이라 그게 다 뻥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하게됐다. 충격.
그리고 나 자신이 사실 죽으면 그렇게 될거 같다. 누가 오겠나 내 장례식.
뭐 죽으면 그만이지 싶긴한데,
회사 동료들과 일상 대화를 할 때 나는 나눌 것이 없다는 데서 그걸 느낀다. 내 삶에 다른 사람이 없고, 여가가 없다. 온통 일과 미래에 대한 생각과 불안 뿐.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만,
나르시스트의 문제는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는 데 있다.
호르몬으로 인해 가슴뛰는 걸 경험하지 않는다는게 아니고 내가 싫은 일도 하고, 내가 소외되거나, 내가 좀 지거나, 양보하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썩을.
과연 이게 바뀔 수 있는 부분일까?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고 있긴한가?
왜이리 세상엔 힘들고 고된 일만 많은거 같은지.
어쨌든 치료적 측면에선 비추이지만 생생한 사례를 접하는 용으로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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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23. 03:27 Beyond Barriers/Watching
별점: ★★★☆☆
한줄평: 머리로 생각하지말고 느껴야한다, 알 수 없는 재앙이 닥칠 때,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 같은가.

다보고 나오는데 왠지 달려야할 거 같아서 전속력으로 질주했다. 땀범벅으로 헐떡이니 그제야 좀 살아있는 것 같았다.
나홍진 감독 작품은 처음 봤는데 앞으로 피하게 되거나 무작정 보진 않을 듯. 영화는 어떠한 체험, 삶의 일부를 타인에게 맡기고 그 순간을 경험하게 해주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 감독이 주는 경험은 굉장히 내겐 힘들다.
극 초반 내내 스포를 대강 읽고 갔음에도 불구하고 의자 등받이에 잔뜩 기대서 손을 마주잡고 웅크리고 봤다.
나는 공포라는 감정에 굉장히 취약한데 스릴러와 공포물, 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감정선이 굉장히 괴로웠다.
내 옆에 앉은 혼영하는 남자분 중간에 헉! 하면서 큰 소리로 놀라시기도..
끝나고도 그 긴장과 공포가 가시지 않아서 집에 오는 길 내내 무서웠다. 사실 지금 침대에 누워있는데 또 무섭다.
무서움은 극복하기 어려운 감정이다.
나라면 총을 들고 어둠 속으로 가지도 못할테고,
누굴 구한다고 죽을 각오를 하고 숲으로 들어가지도 않을 것이다. 옘병. 제일 먼저 도망갈거 같다, 죽은 척 하거나.
극 중 인물들은 공포가 만연한 상황 속에서도 인간의 마음을 놓치 않는다. 존경스럽다.
그리고 지만 알고 이기적인 인간에게 욕하고 화내는데 제3자입장에선 진심 개빡칠거 같아서 공감되면서도 과연 내가 저 자리에 있다면 혼자 내빼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 스포 없이 본 동료는 예고편도 보지 않길 추천했지만, 난 그랬으면 훨 두려웠을거 같다 ㅠ
약하고 작은 동물들은 공포가 임계치 수준 이상이 되면 그 자리에서 즉사한다.
나도 그럴 거란 예감같은게 있다.
나에게 그 이상의 자극을 주고 싶지 않다.
인간 군상들이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다르게 행동하는지 본다는 점에서, 그리고 사람이 진실을 알고자 하기보다는 감정에 따라서 신뢰하고 행동하고 만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볼 부분이 여럿 있었다.
강렬한 체험과
중간중간의 유머,
그리고 깊이 있는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선 좋은 영화이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주는 감정의 체험은 내게 좀 힘들어서 앞으로 또 이 감독 껄 볼진 모르겠음.
+ 곡성, 랑종 스토리도 집 오는 길에 찾아봤는데 와.. 나 이거 보면 평생 트라우마 될거 같음;;;; 배드 엔딩은 도저히 못견디겠다, 특히 장르가 호러 공포일때….
++ 그래도 중간 이후부터는 주인공은 안 죽을거란 예감을 줘서 참 마음이 덜 불편해졌다. 뭔가 그래도 다 죽는 건 너무 그렇잖아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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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22. 19:42 생각 기억 느낌/상담일기
어제 뭔가 깨달은 듯 드라마 후기를 울며 적고
엎드려 엉엉 울다가 오늘 상담을 갔다.
내 얘길 들으시더니 선생님은
진짜 삶을 알아가고 싶은 사람은 그렇게 말하지 않지,
넌 성공하고 싶은거야,
오히려 그래서 지난 선택을 후회하는거처럼 들리는데?
라고 하셨다.
대화를 나누다보니 그게 맞았다.
그래서 운거였다.
내가 그냥 의문을 떠올리지 않고
멈춰서지 않고
그냥 의대 진학 준비를 했다면,
그냥 유학을 갔다면,
그냥 투자 성공을 했다면,
그냥 박사가고
그냥 전문직이 됐다면
좋았을텐데.
왜 이렇게 했을까
마음에 들지 않고,
계속해서 진실이 뭔지 알려고 하는 내가 짜증나고,
결국 돈버는 길로부터 멀어지는게
사회적 성공으로부터 먼 곳에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영역에 돈과 시간을 쓰는게
맘에 들지 않고 속상해서
그런 내가 내 안에 있고 그렇게 선택해왔고
앞으로도 그럴거 같아서 엉엉 운 것이다.
앞으로 결국 이 사단에 촌극을 하고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평범한 사람’이 되는거라서.
엉엉
선생님은 그럼 이제 그만 그 길로 가~~~ 하셨는데
그러게 말이다.
나는 성공하고 싶은걸까?
성공하고도 삶을 알아갈 수 있지 않을까?
선생님은
뭘 해야할지 모르겠으면
그냥 모르겠다고 해- 하셨지만
나는 뭔가 그냥
의문을 갖고 딴 생각을 하고
멈춰서서 어디로 가야할까 하는 내가
영 맘에 안들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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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8. 18. 02:54 생각 기억 느낌/나 관찰일기
영화 자체에 대한 감상평은 따로 적었다.
마사코의 삶에 대해 생각해봤다.
사실
사실은
마사코도 집 밖을 나가지 않고 미쳐버리길 선택한게 아닐까 하는 생각.
제정신으로 누가 그런걸 선택하겠냐!는 비판이 있는게 정상이다.
하지만 혹시 그녀의 무의식이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 뿐이라고 느꼈다면.
끔찍하고 무자비할 정도로 꽉막힌 아빠와
못지 않게 그걸 동조하는 엄마
그 둘을 사랑한다면
그 둘의 사랑을 받고자 한다면
의대에서 성공하거나
미쳐버리거나
둘 중 하나 밖에 없다고 느끼지 않는가.
대들지 않고,
실패한 사람이 되지 않고,
거역하지도, 거스르지도, 그러면서 낙오자가 되지도 않으면서,
부모와 공존하는 방법을 택한 것이라면.
현실적으론 의사가 되지 못했지만 마사코가 의대를 그만두고 책방을 하고 싶다고 했다거나, 피아노 학원 선생이 되고 싶다고 했다면 과연 그게 허용됐을까? 의대 입학한 우수한 딸에게?
부, 모, 딸, 그 누구의 자존심도 꺾지 않고,
가정의 평화를 지켜내는,
그런 방법으로써 미쳐버리는 것은 굉장히 효과적이지 않은가.
그 부모가 딸이 죽은 순간에마저 그녀가 의사 자격을 따고 논문을 쓸거란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더더욱.
거세게 부딪혀 자신이 산산조각 나는 것도,
그 뜻대로 살면서 세상의 한계와 어긋난 자신을 억지로 부추겨 망가지는 것도,
부모를 노엽게 하거나 슬퍼하지 않게 하는 것도,
미쳐버리면 되는 일이다.
하나 다만 놓치는 게 있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봄날에 산책하는 것도,
여름의 불꽃놀이를 구경하는 것도,
혼자 나가고 싶은 때 문을 열고 나가는 것도,
자기 것을 만들며 자기 삶 속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하며 알아가는 것,
그 이상의 많은 것을,
모두 포기했다.
미친다는 선택지로,
그녀는 그 스스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을 포기한 셈이다.
그러니 누가 그 선택을 하겠냐고?
아니다… 나 자신도 그렇고,
일터에서 만나는 정말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게 선택한다.
도리어 부모 뜻을 따르지 못하는 자신을 잔인하게 응징하고 벌하면서 슬퍼한다.
어떻게든 부모와 공존하고 싶어하는
그들의 소망은 마치 그들의 영혼보다 5배는 커서 통째로 삼켜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까지 공존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결국 그녀 본인도 이 삶을 원했을까.
모든 걸 알았어도?
| 단념할 줄 아는 마음 (0) | 2026.08.30 |
|---|---|
| 집을 나왔다, 이제 영원히 (0) | 2026.08.06 |
| 격변의 7월 (0) | 2026.07.28 |
| 매우 화가 나고 불편한 경험 - 서비스업에 대한 고찰 (0) | 2026.07.05 |
| 부모가 자식을 곁에 두는 방법 (0) | 2026.07.02 |
2026. 8. 17. 16:59 Beyond Barriers/Watching
★★★★★
한줄평: 누군가의 자식이라면, 누군가의 부모라면 꼭 보길 바라는 영화. 부모는 자기 자신을 위해 자식이 필요한 것 같다.
*가족사를 다룬 다큐로 감독이 ott나 dvd 제작은 하고 싶지 않다고 들음. 현재 극장에서 상영 중.

”부모라는 인간들에게 내 삶을 맡기면 안된다.“
그 하나의 메세지가 맴돌았다.
저 지긋지긋하고 끔찍하게 자기밖에 모르는 인간들.
나 자신조차.
인간이라면 자기가 옳고 자기가 생각한게 틀릴리 없다는 생각을, 합리화를, 자기방어로 계속해서 하는 것이다.
그것이 자기자식을 병신으로 만들고 25년 동안 집에 좌물쇠를 걸고 가둬두는 일이라 할지라도.
타인의 삶이 어떻게 파괴되는지는 놀라울 정도로 무심하다. 오히려 그게 상대방을 위한거라는 자기합리화 속에서 현실을 외면한다.
감독이 자신의 가족사를 찍은 다큐멘터리 영화.
가족의 일이라 ott엔 올리지 않을 거란 얘길 듣고 불편한 마음이었지만 영화를 예매했다.
결국 불편한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 눈돌리려던건 나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주위 동료들이 모두 보겠단 말을 듣지 않았다면 나도 모른 척 넘어갔을 것이다.
25년간 병원에도 보내지 않은 채 조현병 걸린 딸을 데리고 산 부모의 이야기.
보기도 전에 갑갑해지고 부모에 대해 화가 났으니까.
영화는 담담하게 흘러가고 누나인 마사코의 삶이 드문드문 시간 차를 두고 나타난다. 이따금 방문하는 동생의 시선으로.
1920년대에 태어나 1950년대에 의대를 나오고 연구원이 된 부모. 1958년에 태어난 똑똑하고 착한 첫째딸.
의대를 가거나 연구원이 되고자했던 자식들의 소망은 부모때문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나오는 아버지의 말과 행동에 스며들어 있다.
조폭이니 토성연구니 미국연합이니 말도 안되는 걸 지껄이는 딸에게 매년 의사 국가고시 공부를 쥐어주고 시험장까지 데려다주는 아빠는 과연 제정신일까??
부모 모두 딸이 아픈 곳이 없고 정상이라고 내내 말하는데 그건 그냥 그들의 소원인거잖아.
그냥 문제없이 의대 졸업하고 글래스고에 출판한 논문을 딸과 아버지 이름으로 내는 건 대체 누구의 소망이냔 말이다.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논문을 딸 턱 밑에 두는 아버지와, 아들이 이 다큐를 마무리하면서 혹시 과거로 돌아가면 다르게 했을 거냔 질문에 실패하지 않았다고 답하는 90대 노인네는,
아… 어떤 말로도 설득할 수 없는, 자기반성이란 걸 이끌어 낼 수 없는 그런 지경이었다.
죽어도,
죽을거 같아도,
미쳐도,
설득되지 않는 수준의 완고함.
영화를 보고나니,
나 자신을 갈기갈기 찢어서 부모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마음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지 알 거 같았다.
내가 갈갈이 찢겨지든, 처참하게 뭉개져 터져있든, 목을 메달고 해괴하게 죽어있든, 그들의 완고함은 깨지는 게 아니었다.
그게 오히려 더 단단하게 그들을 에워쌀 것이다.
왜냐면 그들 자신의 나약한 자존심을 지키는게 그것의 목표니까.
오로지 그들이 바라는 건 그들 자신이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느낌이니까.
그걸 부정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는거야.
그들이 받아들이길 바라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짓이라는 걸 내 삶에서도, 영화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이 진실.
나를 정신병자라고 하던 아빠가 그래도 보고싶어서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서 상담 선생님과 정신분석 모두가 밉고 이 길로 들어선 게 후회되기도 했지만,
아, 역시 아니었다.
아빠도 그들과 똑같은 사람인 걸 나는 안다.
선생님은 그런 사람들이 약하다고 했지만,
아냐,
사람을 죽일만큼 강하다.
상대를 미쳐버리게하고 병에 걸리게 하고 종국에 자기파괴적으로 죽게 만들만큼 강하다.
아마 마사코는 부모님께 사랑받고 싶은 마음,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지만 자기자신으로 살고 싶고 부모님 뜻대로 따를 수 없는 한계에 대한 괴로움이 부딪혀 미친게 아닐까.
약을 먹은 뒤 일상대화가 가능해졌을때,
삶이란 대체 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날들이 분명 있는데.
꼭 의사를 시켜야했을까.
꼭 자기 뒤를 이어 연구를 시켜야했을까.
아내가 죽자 그 아내 때문에 이렇게 됐다고 해야했을까.
병원에 보내자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이렇게 답했다.
그러면 너네 아빠는 죽는거야.
그런거다.
아내도 희생시키고
딸도 희생시키고
사실 영화에 들어있진 않아도 아들도 희생시키면서
그 아버지의 작은 자존감
그 하나를 지킨 것이다.
주변을 해친 피해를 생각하면 끝없이 끔찍한 것인데.
그래서 행복 하셨습니까????????
근데 웃기게 그 아버지는 진짜 행복해보이는 거 같기도 하다. 알 수 없지. 그 속에 어떤게 들어있을진.
전쟁시기에 의대를 나와 대학에 남은 연구자가 됐으니, 같은 연구를 하는 아내를 얻고 독일 유학을 가고, 세계를 돌며 여행을 하고, 그 시기에 그랬으니 공부가 주는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했을까. 아마 목숨같았겠지. 실제로 목숨 그 자체겠지. 내 자신이 맞다, 옳다, 내 생각이 맞다 하는 것은.
딸이 죽고싶다고 죽이고 싶다고 소리지르고 비명질렀을때, 그냥 우리는 원래 그런거야, 하고 대답한 우리 아빠도 아마 똑같이 반응했을 것을 나는 안다.
내가 비극적 최후를 맞고 일찍 죽었어도
그 애가 우리 곁에 와줘서 좋았어,
그애의 삶은 나름대로 충만했을거야,
이렇게 말하며 본인의 여생을 살 걸, 나는 알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런 사람들이니까.
그런 부모들을 너무 많이,
너무 많이 봤으니까.
나도 그럴 수 있다는 걸 아니까.
그러지 않는게 도리어 매우 힘들다는 걸 아니까.
결국 그런 것이다.
나의 삶을 타인에게 맡기면 안된다.
때로는 누군가의 노예가 되어 살고 싶단 생각이 종종 든다. 그냥 아양떨고 이쁨 받으면서 살아가고 싶기도 하다.
누군가가 나 대신 어려운 일들을 해주고 고통을 덜어주고 나아갈 수 있게 도와줬으면 하는 때도 많다. 지금도 그렇다.
그럼에도
아니다.
아니다.
내 삶은 타인에게 맡겨선 안 될 일이다.
ps. 이 영화의 부모는 딸을 학대하지 않는다. 밥도 잘 챙겨주고, 가족행사도 같이하고, 차도 마시고, 술도 함께한다. 딸애가 마음의 상처를 받을까 병명도 알려주지 않으려 한다. 여전히 귀여워하고 아낀다. 다정하다?고 보여진다. 그리고 그저 보듬어주려한다. 이상한 짓거리를 해도 그럴 수 있지, 지금 좀 힘들어서 그런거지- 넘어가준다. 그 애가 다시 의사가 될 수 있다고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어떤 점에선 그들의 딸을 극진히 사랑하는 듯 하다. 그 애가 편안히 여생을 보내게, 안전하고 익숙한 그들의 곁에 두려는 것 같다.
하지만 누구나 알지 않나. 그건 그 딸을 위하는게 아니란걸. 의사가 되고 아니고를 떠나서! 그 애가 진짜 필요로 하는 것을 함께 찾아주고, 그 애가 진짜 하고싶은 말을 들어주는게 필요한 걸. 고의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단 걸. 그 딸은 부모를 위해 자신의 삶을 잃고 방치됐다는 걸.
그저 조용히 아무도 밖으로 나가지 않고 거실에 앉아 시간을 죽이는 엄마아빠딸의 모습에 살아있지 않은 채 살아가는 좀비들이란 정신분석에서 나온 비유가 떠올랐다.
맨처음 검은 화면에서 울려퍼지는 마사코의 외침은 내 외침과 비슷했다.
우리 부모가 그랬듯 그 외침은 아무런 반향을 남기지 않았다. 그저 미친년의 울부짖음으로, 하룻밤 해프닝으로 지나갈 뿐.
그 비명에 귀기울여 줄 사람이 집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렇게 시간이 흘러간다.
집 대문 안 쪽에서 벌어지는 이런 꽉막혀버린 죽은 삶들이 얼마나 또 많을까.
전세계의 모든 부모들이 봤으면 하는 영화.
우리 부모님은 과연 뭐라고 하실까.
ps2. 나무위키를 읽으니 부모 모두 의대 교수였구나. 진심 타인 그 누구의 말도 설득력이 없었겠다. 상담 선생님 졸업논문이 별로라서 상담을 받지 않겠다 한거부터 정상이 아니었다.
그 어머니도 돌볼 대상이 필요했던거 같고,
그 아버지도 자기 뜻을 잇도록 할 대상이 필요했던 거 같다.
둘다 그냥 대상으로써 딸이 필요해서 낫길 진심으로 바라지 않은 것이다. 그냥 병신 상태로 집에 있길 바랬던 걸 숨긴 것일지도 모르겠다.
결국 그 완고함이 꺾인 건 부모가 늙고 병들어 스스로조차 돌보기 어려워졌을 때이니까.
소름끼칠정도로 우리 엄마랑 똑같다..
의대, 입시, 공부를 외치는 우리나라에는 더하면 더했지 적지 않을 것이다. 배우고 익힐수록, 부모가 자식이 필요해서 반병신 만들어 곁에 두는 일이 집마다 일어나는 게 보인다.
참고로 마사코는 의대입시에 실패하지도 않았다. 4년 입시 결과 들어간 의대에서 첫 해부 수업을 하고 발병했다.
우리나라의 많은 마사코들이 이 영화를 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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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아버지도 자기 아들이 타락하고 탐욕에 빠지고 진흙탕을 구르고 외로움과 고통을 느끼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서며 자기 삶을 만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 애가 한 끝도 다치지 않게 하려할수록 그 아이는 아버지를 경멸할 것이며 반발할 것이며 고통과 근심이 될 것이다. 결국은 그 아버지 본인이 그러했듯 아들들은 홀로 자신의 삶에 빠져들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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