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오 모토 - 이구아나의 딸(단편)

전부 내 얘기다.

나도 이구아나였던 것이다.
나도 내가 냉혈동물이라고 생각해왔다.

애초에 뱀띠니까.




엄마는 나를 보면 괴로웠겠지?




엄마가 날 사랑해줄 수 없었다는걸 깨닫는게 나를 자유롭게 해주기도 한다. 슬프지만.

https://m.ruliweb.com/community/board/300143/read/72342011





나랑 똑같은 삶을 살아본 여자들이 세계 곳곳에 있다는 건 정말이지 놀랍다…






정신분석을 받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이 작가 대단하다..

후지코 F.후지오 - 안식의 집(단편)

트위터에서 일부만 보고 충격적이어서 본작도 찾아봄.


아래는 그 트위터에 올라와진 부분.









결국 자기 발로 서서 자신의 삶을 스스로 살아가지 못하는 인간들은 저런 엄마의 품에서 아무 기능도 스스로 할 줄 모른채 살아가길 바라는 셈이다. 그 모습이 어떠한지.








집 앞 초등학교 운동장을 산책했다.
한 남자아이가 어른들의 지지와 훈계, 도움 속에서 어설프게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있었다. 헬멧과 보호장비를 갖춘 아이 하나에 어른 서너명.

인상적인 건 아이가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게 하고 이래봐라 저래봐라 말은 해도 아이가 스스로 탈 수 있게 기회를 준다는 것이었다. 누구도 그 아이의 차의 핸들을 뺐지 않았다. 그럼에도 훈계가 좀 어른들 스스로를 위한 것 - 잘난척이거나 좋은 어른 역할을 한다는 자기만족감 - 같이 느껴질때 아이가 빽 소리를 질렀다. “ 아 좀 옆으로 가시라고요~~! ”







한없이 품어주고 내 똥도 대신 치워줄 엄마, 어른을 염원 하게되지만 사실 스스로 일어나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삶에서 다시 없을 기쁨 아닌가.




처음 내 손으로 하고 싶었던 바다수영을 했을 때, 영리한 질문과 답을 해서 한문 선생님께 이쁨 받았을 때, 내 손으로 가구를 조립해서 내맘에 드는 흰 책장을 내 손으로 세웠을 때. 그 기쁨이 과연 희생할만한 것인가. 그렇게 부모님의 사랑을 받는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건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무엇을 디디고 서있는 지 부터가 다르다.

[애니] 지. -지구의 운동에 대하여- (2026.09-) [스포있음]

보기 시작.
이제 여유시간에 애니 하나씩 보려하는데 볼게 너무 많아서 신난다. 은퇴하면 보려고 했는데 그냥 지금 볼래.

자유롭게 내가 원하는 걸 고를 수 있다니 행복하다.

뭐부터 볼까 하다가 요즘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내 마음을 따라 이거로 결정.

나는 과학이 좋다.
프로이트의 글도 과학의 냄새가 나서 좋다.
현상에 의문을 품고
의문에 합리적으로 답하는 것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과학에는 경계가 없고, 관습이 없고, 종교가 없다.
이치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만 있을 뿐이다.


정신분석이 좋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삶과 세상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 것들을 이해해나갈수록 자유함을 느낀다.

천막의 자두가르 무함마드 도련님이 말했듯
무지는 두려움을 낳지만 앎은 내가 내 행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해준다.



자, 세상에 척을 지든 핍박을 받든 두렵지만
나는 과학을 하고싶다.
과학자의 자세로 나아가고 싶다.



-



1화부터 고문 장면이 나와서 괴로움.
근데 결국 호기심이 저기까지 가게 했을 걸 아니까 나도 남말할 처지는 아니지 싶다.



미친 3화만에 주인공 죽음 ㅠㅠㅠㅠㅠㅠㅠㅠㅠ




밤하늘이 배경인 경우가 많아서 조명을 어둡게 해야 화면이 다 보이는 경우가 많다.



첫번째 주인공 너무 나같았는데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진정한 학자가 된다.. 알고 싶다는 마음. 재미없는 세계에 살아가며 안전하게 지내는 것과 이 세상의 진짜 모습을 알아가면서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후자를 선택하면 이단아로 잡혀 고문과 죽음이 기다림에도.


나야말로 최근 상담에서 그냥 돈과 명예만 추구하면 되는데 왜 이렇게까지 왔을까 했는데 그럼에도 왜 계속할까 나 스스로도 답이 안됐었다.





나도 어쩌면 모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알고싶다는 마음에서 여기까지 온거 같다.



여전히 세상은 알 수 없고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지금의 세상을 우리는 다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중세의 학자들도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언제든 우리가 당연하다 여긴 세계는 뒤집힐 수 있다.



두번째 주인공은 개찐따이고 비굴하기 그지 없고 개쫄보인데 어떤점에선 그래서 더 인간적이기도 하다. 또 다른 주인공은 너무 오만한데다가 인간을 우습게 봐서 얘 이러다 큰일나는거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주인공들이 언제 죽을지 몰라서 조마조마하다.
코스모스를 읽을 때 느꼈듯 세계관과 가치관을 흔드는 사회를 불안정하게 하는 호기심에 대해 인류가 거세게 저항한다는 사실.
과학혁명의 역사는 나같은 호기심 인간에게는 피부에 차갑게 스며든다. 그럼에도, 그럼에도 인간은 진리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은 반란자, 이단자가 맞을 것이다. 체제와 유지되온 평화를 깨는 사람들이니까.

안전을 위해서 말이다.


그래서 내면의 진실한 목소리와 세상의 진짜 모습을 외면하며 살아가는 건데

거기에 의문을 표하고 반대의견을 내니 더 깔아뭉개질 수 밖에.



챕터마다 나오는 이단 심문관들의 고문이 극의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하고 동시에 진리를 추구한다는 것이 그렇게 가볍고 쉬운 게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영화] 프로젝트 헤일메리

로키!!!

별점: ★★★☆☆
한줄평: 용기란, 누군가를 위할 때 생겨난다. 우정은 상대를 생각해주는 마음이 있다면 우주 어디에서든 생겨날 수 있다.






운이 좋았다!

원래 오늘 영화를 볼 생각이 없었는데 이후 일정이 취소되고, 메가박스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 재상영을 한다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추석 연휴에 보려한 걸 확인해보니 추석에는 막이 내려간다는 걸 알게되고, 바로 남은 상영시간을 찾아보니 딱 1시간 뒤에 신촌 메가박스에서 오늘 마지막 타임이 있었고 - 일요일 이후로는 내가 안되는 시간 뿐이었고 - 이동시간 고려하니 딱 시작 10분 전에 도착 예정인데다가 자리도 많이 있어서 바로 예매. 그리고 가는 길에 맘스터치 들러서 청사초롱 키링 사면 딱이겠다 싶어서 이대역 맘스터치에서 저녁 사고 들어가야지 함.

원래는 집에서 혼자 고기 구워먹는게 계획이었는데 티켓 할인 받아도 만이천원이나 하길래 왕십리역에서 순간 한번 멈춰서 고민했다. 충동구매 이거 맞나??? 안그래도 요즘 돈 쪼달리고 집에 있는 식량 먹어야하는데.

왕십리역 에스컬레이터에 붐비는 사람들 가운데 줄 서있다가 타기 직전에 빠져나와서 검색을 시작했다. 그냥 집에서 노트북으로 보면서 고기 구워먹는게 이득아닌가 싶어서.

근데 넷플릭스에 이 작품 검색해도 안나오는거 보고 바로 고>>>



그리고 우주 영화는 대형 스크린에서 봐야 참맛이지!


계산미스는 토요일 저녁 맘스터치에 사람이 많다는 것. 기다리면서 앞 부분은 날리겠구나 맘먹고 그래도 상영시작시간인 8시가 되도 햄버거가 안나오길래 취소할까 하다가 딱 받아들고! 키링도 원하는 색상으로 바꿔달라고 하니 바꿔주시고(오예스!) 한정거장 거리인데 바로 가는 버스 딱 1분 안에 타고 극장까지 8:07분에 도착.


썩을 티켓 부스 찾는데 좀 걸렸고(통신사앱에서 할인티켓을 사니 모바일 티켓이 없었음) 거기도 줄서야했지만 다들 나처럼 혼자 이 영화를 보러 온 사람들 같았음. 다들 마음 급히 티켓을 뽑아들고 바로 그 층에 있는 상영관1 을 찾아들어감.


딱 들어가서 자리에 앉자마자 영화 시작-!



옆자리 사람도 없어서 더블불고기버거세트를 편히 꺼내 먹었다. 프로젝트 헤일메리가 시작했다.


(근데 왜 헤일메리일까, 해일매리가 맞지 않나)





최근에 영화관련 대화를 나누는데 다들 이 영화는 칭찬을 해서 궁금했었다. 대략적 포맷은 마션이랑 비슷한데 여기서도 혼자남은 우주미아가 나온다.

역시 우주는 고립된 인간을 극명히 드러내는 장치로 최적이다.



로키를 포함해 무서운 영화가 아니고 우정에 대한 거란 걸 예전에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역시나 미지의 무언가와 조우하는 어둠 속의 순간은 넘 무서워서 두 손은 꼬옥 마주잡고 긴장하며 봤다.






라이언 고슬링 특유의 능청스런 모습과 드립치는 캐릭터 성격이 잘 어울렸다. 극은 종말이 다가오는 지구를 배경으로 하지만 주인공 덕에 우울하게 가라앉진 않는다.



그레이스는 용기있는 사람의 이미지에서 동떨어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그의 배경부터 그가 용기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준다.

모두가 환영하지 않는 이론을 주장하고, 싸우다 학계에서 매장되고, 연구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지만 세계를 위하고 싶다고 말해서 연구에 합류한다. 결국 영화 시작점에서 두갈래로 흘러가는 과거의 기억과 현재 시점의 끝에 알게되는 출발과정은 충격적이지만, 그는 그럼에도 홀로 임무를 완수하는 과정에서 무척 용감하다.


아니 그냥 로키를 처음 만나는 과정부터가 용기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 뿐이었다.

미지의 함선과 교류하고, 헬멧을 벗고,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소통방식을 고민하고 끝내 해낸다!

어떤 점에서는 과학자라는 종족이기에 해낼 수 있는 있다는 생각도 든다. 과학은 함부로 판단하지 않고, 불가능은 없다고 믿으며, 탐구하고, 방법을 강구하는 세계다.

회의적일 수 있지만 어떤 점에선 첨단의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아니아니 근데 적다보니 너무 과하게 껴맞춘거 같네. 주인공은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이기도 하다. 매우 인간적이다.


사실 그가 다른 승무원들이 용기있다고 말하며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고 연거푸 말하는데, 이 이야기에서 이 말들은 장치 중 하나이다. 용기를 낸 선장의 대사에서 누군가를 위해서, 할 수 있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주인공 그레이스 박사에겐 전인류적인 차원에서 봐도 목숨을 걸만큼 소중한 누군가는 없으니까. 그만한 희생을 할 이유도 없기에 그런 용기를 낼 이유도 없는 거다.




지구 상에는 그를 위해주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다른 탑승원들에게는 지구에 두고온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의 사진은 오직 독사진 뿐이다(ㅠㅠ).



어찌보면 그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지구상엔 없었던걸지도 모르겠다. 자기고집있는 괴짜 과학자, 대인관계 영역에 투자 안한 사람은 대부분 그런 이미지 맞지 않나.



그치만 아무리 그래도 우주의 그 망망대해 속에서 지구로부터 수없이 멀리 떨어져 적은 연료로 118년 걸리는 곳에 유일한 생명체로 존재한다는 고립감은 그 앞선 것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내 인생영화 그래비티에 내가 크게 공명했던 것도 돌아보면 완전한 고립감. 그리고 품 안으로 돌아가고 싶은 소망, 이 마음 때문이었던 것같다.


이무리 그래도 지구에는 상점에서, 길거리에서, 하다못해 눈인사라도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단 말이다!












그 와중에 생긴 또다른 외로운 존재 로키와의 만남과 둘이 만든 콤비 케미는 넘 훈훈하고 귀엽다.


마지막에 그레이스가 보여준 용기와 선택은 로키가 자신의 목숨을 걸면서 그레이스를 위한 유대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소중한 대상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미래와 목숨까지 거는 것.


아무에게나 그러면 문제지만, 그럴 상대가 존재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이 드넓은 우주에서, 살아갈 가치가 충분할 것이다.



누구나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모두 너무나 소중한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초반에 홀로남은 그레이스가 마대자루를 사람처럼 옷입혀놓고 꼬옥 껴안는 장면이 캐스트어웨이의 윌슨을 떠올리게 했다. 역시 인간은 사회적동물인가보다. 누군가와의 교류가 필요하다. 대화와 웃음, 체온은 영혼의 양식이다. 굶으면 죽는다.



ps. 영화의 메세지는 좋은데 결국 이 우정이 외계인과의 것이고 지구에서는 무자비한 인간들이 있다는 점에서 사실 희망없는 방구석 오타쿠의 시나라오 같단 생각도 든다. 내가 그레이스라면 총사령관(?)을 과연 용서할 수 있었을까? 그정도의 외로움과 적막함, 죽음의 공포 뒤면 미움과 원망이 그리 중요하지 않으려나..



ps2. 진심 호프 본 뒤로 기승전결이 있는 영화가 다 밋밋하고 단조롭게 느껴진다 ㅠ



ps3. 눈 컨디션이 안좋아선지 빛번짐이 부옇게 심해서 영상미를 충분히 즐기지 못했다. 우주영화도 여러번 보니까 감동이 덜한 걸까. 그래도 대기권 진입장면은 너무 멋졌다. 나중에 더 큰 스크린으로 가운데 줄에서 보고 싶다.


+ 음악은 좋았다. 우주가 배경인 영화음악이 좋다. 아마 21세기 초반의 대중음악의 흐름 중 하나로 기록되지 않응까. 20세기보다는 우주극이 늘어난거 같기도 하고. 다른 차원의 거대한 시공간을 음으로 표현한 것이 상상력을 자극시킨다.


++ 중간에 노래방 기계로 불러준 노래 가사도 하나하나 박힌다. 어떻게 그렇게 선곡을 했지..

*아직 안 본 분들은 아래 영상 보지 마시고 영화 내에서 이 장면을 처음 보는 감정을 생생히 느끼시길 바람.

https://youtu.be/D2m50b5ff_E?si=Nchf7KnPFi2C1lci

[애니] 강철의 연금술사

https://youtu.be/-xjoIziCMuc?si=JAfu0ZC5EBmMN665

 

 

 

아마 이 영상의 모든 것이 내 인생에 주는 울림은 다른 누구도 알 수 없는 나만의 경험일 것이다.

 

 

https://youtu.be/oFenLhd7M0Q?si=wM7o1OLjrRB_S5D9

 

 

 

다시보니 가사들이 다 보통 깊이가 아니네

 

 

https://youtu.be/t-CCI7cp-UQ?si=5FyD0S_a_ZyiQWnf

 

요즘은 유명하진 않지만 당시 구강철에서 나온 극장판도 챙겨보고 노래도 다 외울 정도로 그 시대와 함께 살아있었다.

[애니] 강철의 연금술사: Brotherhood

https://youtu.be/0omJ-qlPT8A?si=b4Vpx5n-z_BvEm-A

 

 

 

1기 오프닝 위 영상 번역에서 '진실'이 아니고 '현실'이 맞음.

계속 살아낸다면 뜻밖의 조우

최근 상담을 하고 나오는 길에 진지하게 이제 상담받길 그만둘까 생각해보았다.

선생님이 먼저 ‘이렇게 정신 못차리고, 차리려는 노력도 하지 않으면 나도 할 수 있는게 없다’ 그만해라 하셨다. 자주 듣는 소리긴했다. 그 전까지는 그러시면 마치 엄마 젖을 놓치는 아기처럼 온힘으로 울면서 책상을 붙들고 떨어뜨려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는데 이번엔 뭔가 간당간당했다 내 마음이.


살아야할 이유도 잃어버리고
왜 살아야하는지 진심으로 알 수 없어서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나를 돌아봤을때 꽤나 최고로 근접하게 죽음이 가깝게 느껴졌다. 비문 같지만. 어쨌든 죽음의 가장자리에 가장 가까워져있는 상태였다.


상담선생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나는 변하고 싶지 않았다.
징징대고 싶고
사랑받고 싶고
손쉽게 성공하고 편하게 안락하게 즐겁게 누리고 싶었지.
내 손으로 진흙을 퍼서 벽돌을 쌓고
생채기 나면서 시간 한참들여 노동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그 끝에 확실한 보상 따위도 없는데!


싫었다.

그냥 남자나 만나고, 그냥 돈 쓰고 쇼핑하고,
그냥 맛있는거 먹고, 그냥 애니나 보고,
그냥 재밌는거나 하면서 살고 싶었다.



그래서 상담이라는 거 자체를 이제 그만해야하나 싶었다. 왜냐면 이 갈림길 반대쪽 길은 내가 내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내 이상적 모습을 향해 정진하고 노력하면서 고통도 감내하고 인내를 하는 삶이기 때문이었다.
그러지 않을거면 오지 마라 한 것이나 다름없어서.. 그냥 동물덩어리같은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없이 본능을 채우며 그저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게 진짜 더 낫지 않을까, 사실 그게 ‘삶’이라고 불러지는 것의 본질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지쳤고 외로웠다.


그냥 생각없이 무리에 소속되고 싶었다.


그만두면 이제 뭐로 밥벌어먹을까 생각해보았다.
미래를 그려보았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을 하다가 그날 상담실 밖 공원을 크게 한바퀴 돈 그 밤에 나는 그냥 알 수 있었다.
나는 상담을 그만두고 나면 머지않아 곧 죽을거라는 걸.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난 죽게될 것이다.



그걸 그냥 느꼈다.
이건 죽을지 살지를 선택하는 갈림길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물론 반대쪽 길도 죽음을 향한 길일 수 있겠다만.
기존에 내가 0살때부터 익숙하게 다닌 그 길로 되돌아간다면 분명 즉시 회의감과 괴로움에 미쳐버리고 죽게될 것이 느껴졌다.







일단 살아볼까 싶었다.
막 정신차리려는 생각도 들진 않았다.
그저 이게 뭔 상황일까, 나는 어쩌고 싶은걸까, 상담이란 뭘까 등의 생각을 하며 그동안 내가 아는 줄 알았지만 하나도 알지 못했구나를 느꼈다.




소장님이 언젠가의 교육에서 그렇게 말했다.
”상담에 와서 진정한 내담자가 된다면 그는 구원 받겠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그 부분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거슬렸다. 예수님도 아니고 상담자가 무슨 구원을 입에 담나! 너무 교만한 단어란 생각을 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나는 주2회 상담을 몇년째 계속해서 받고 있다. 두번씩 하니 속성과외처럼 변화 속도가 조금 빠른 느낌이다(착각일수도).


죽음을 잠시 뒤로 미뤄두고 해보고 싶다고 구상만 하던 일을 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잔뜩 만났다. 생각보다 다들 예의있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깊이있고 대화가 즐거웠다. 즐거웠다! 얼마만에 이렇게 즐겁게 대화했는지 모르겠다(물론 상담시간이 더 재밌다).

살기로 했더니 전혀 생각지 못한 기쁨과 즐거움이 있었다. 잘생기고 예쁜 젊은이들을 보니 기분이 함깨 들떴다. 아 나 이런거 좋아했지. 좋아하는 것들을 하다보니 기분도 좋아지고 삶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게된다. 웃기지.



그렇게 깊은 우울에서 살짝 빠져나오고 보니 내가 괴로워하고 우울해했던 것은 이사와 분리독립, 목표상실, 역할상실ㅡ그런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나 자신의 발작이 큰 파도처럼 출렁이는 상태였던 것이다.

결국 뭐든 처음엔 적응할 시간이 필요한 거라 생긴 해프닝인가 싶다.


40평생 엄마의 보조제 역할을 해왔는데 그걸 빼내니 욕조 마개 빠진듯 물이 걷잡을 수 없이 빠르게 구멍이 뚫은 듯… 그 적응이 말이 쉽지 거의 정체성 상실, 무쓸모와 무가치함을 견디기, 수치심 견디기, 자책감 견디기, 외로움의 늪에 익사하지 않기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것은 적응의 기간이 맞았던 듯하다.




그러고나니 좋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고 상담이 재밌어졌다. 가치있는 일로도 느껴지고. 다른 직업의 종사자들이 부럽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정말 10년전 나를 떠올리면 놀라울 정도로 바꼈다.
그래서 구원이라는 그 말이 이젠 과장이 아님을 알게된다.

아마 상담을 몰랐가면 나는 삶의 자유, 우연이 주는 인연들을 만난 기쁨, 가치있는 일을 하고 느끼는 보람을 몰랐을 것이다.


가치있다고 여겨지니 더 애착이 가는 일이 되고있다.




우리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집으로부터, 내 과거의 삶으로부터 벗어나와서 이런 것들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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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오딧세이

별점: ★★★☆☆
한줄평: 당신은 집에 갈 준비가 되었는가. 순리를 따를 것인가, 맞설 것인가.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사실 난 놀란 감독의 국내 명성에 비해 그 감독 작품을 막 좋아하진 않는다. 본 것도 인셉션, 다크나이트, 인터스텔라 정도. 남자분들 중에서 놀란 좋아해서 덩케르크, 테넷 막 들입다 파고 그런 분들 계시던데 암튼 뭔가 놀란은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장르인듯.


감독빨도 있겠지만 위대한 그리스로마신화에서 나온 오디세이아는 호메로스 원전의 깊고깊은 인류 초기 이야기이니 안보면 섭섭할거 같았다. 안그래도 정신분석 세미나에서 이 영화를 다음주까지 보고 오라 하셔서 좋다 싶었다.



호프를 본 뒤라서 그런가.
그냥 그랬다.



아는 이야기이고 아는 엔딩.
너무 유명한 배우들을 기용해서 몰입감이 일단 좀 떨어짐. 앤 해서웨이는 너무 예쁘심.


인물에 몰입할 정도로 한 인물이 오래 조명되지 않는 거도 내가 좋아할 포인트가 아녔고, 전쟁을 일으키고 사람들 간의 암묵적 신뢰의 관습을 깨버린 것에 대한 책임을 지는 걸 강조하느라 그 외의 부가적인 부분은 뭉그러진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게 감독의 의도이기도 한 거 같다. 그 부분이 좋았던 부분이었으니까.


오디세우스에 초점을 맞추면서 그와 그의 부하들이 어떻게 같은 시련 속에서 삶과 죽음의 갈래길을 선택해나가는지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메세지 같다.

그리고 아테나의 속삭임으로 죽은 자들에 대해 지나친 책임감은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영화는 계속해서 보여준다.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것.


칼립소에서 메세지는 직설적으로 전달된다.
싸우지 마라.
통제하지 마라.
그저 너를 내맡기고,
살아남는데 집중해라.


그건가.
삶이란,
그런거였을까.


요즘 내가 맞닥뜨린 고민과 같은 지점이라 참 오묘했다.


뭔가 전쟁같은게 일어날 때 우세한 세력이 되고 싶었다. 살아남을 수 있는 강한 힘을 갖고 싶었다.
높은 지위도, 많은 돈도, 그래서 원했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하지만 인간은 내몰려진다.
원치않고 예상치못한 상황 속에 뒹굴게 된다.
그걸 통제하고 내 의지대로만 하려고 애를 써도 결국은 진만 빠지기도 한다.



그럼 내맡긴다는 건 뭔가.




부하들은 신을 경배하고,
오딧세우스는 신에게 맞서려한다.


하지만 부하들은 본능을 따르고 의문을 품지 않고 자기를 통제하진 않는다.
오딧세우스는 신들의 규칙을 읽고, 상황을 파악하며, 의문을 품고, 자신의 목표를 위해 자기를 통제한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뭘까.
내맡긴다는 것과는 정반대처럼 보이는 주인공에게 영화는 무엇을 보여주는 걸까.



그리고 그 끝에 오딧세우스 본인이 하는 말이란건
결국 과거 행동들에 대한 죄책감, 책임감.
다만 후회는 아니다.

망자들의 외침에 답하는 모습에서도 후회나 사죄는 없다.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인다. 다만 그 후에 그들을 위해 행동할 것을 약속하고 지켜낸다.



책임감을 지는 것은 어른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진정, 한 독립된 인간을 만드는 것 같다.


하지만 결과는 내 통제 밖에 있다.
그래서 그리스 인들은 신을 믿었고,
종교는 21세기에도 존재한다.
모든 결과를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은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런 세상이다.
그런 게 삶이다.


그걸 받아들이고,
이 삶이란 바다에 몸을 내던지고
맡기되
자신의 머리로 의문을 품고, 상황을 파악하고, 행동하고 나아가면서, 저지른 일들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자신이 속한 곳에서 했어야할 것들을 하면서, 사랑하는 이들과 살아가는 것이 결국 인생이란 메세지로 들렸다.


결국 아테네가 묻는 질문, 너는 왜 집에 가려하지 않느냐, 집에 갈 준비가 되었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현실의 내 자리에서 질 준비가 됐냐는 질문이었다. 많은 이를 죽이고, 죽도록 만들고, 사람들간에 불신을 심고, 문명을 무너뜨리는- 이렇게 꼭 거창하지 않더라도, 살아남기 위해 한 행동이지만 타인을 고통스럽게, 원한에 차게 한 모든 것에 대해서 말이다.





오펜하이머랑 비슷하다 하는데
오늘 들어보니 AI시대의 초입에서 미국 대기업들이 만드는 한 문명의 붕괴를 본 감독의 마음이 담긴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우리는 현대 인류 문명의 제일 마지막 향유자가 될지 모른다. 완전한 붕괴 뒤에 새로운 문명이 떠오르겠지만, 그래도.


망자들의 영혼을 기리고, 사랑하는 이의 품에 안기고,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 나는 이 영화가 삶을 얘기한다는 생각이 든다.






소감:
굳이 뭔가가 되어야하나.
그저 내맡겨진채로 바다에서 살아남는 것이 전부 아닐까.
최소한 내 생각을 꺼뜨리지 말고 깨어있자.


좋았던 장면:
그리스 바다가 너~~~~무 아름답다. 주홍색 돛의 대비를 보면 눈이 다 사치스럽다. 그리스 꼭 가봐야지..


전투신은 그냥 그랬고, 망자들이 귀신같이 사는 나같은 사람들 같았고, 키클롭스나 키르케도 그냥 그랬고 텔레마코스는 스스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이겨내지 못한 소년 같았다. 중간에 그래도 어머니의 뜻을 어기고 나아가려는 부분에서 그나마 자아가 조금 생기고 있구나 싶은 정도. 음악은 항상 좋았는데 이번엔 별로였다. 사람들의 고함과 음악이 구분이 안됐다. 호프 음악이 훨나았음…

그리고 위의 글과 별개로 실제 오디세우스가 내 상관이라면 나도 말 안 따를 듯 ㅋㅋㅋㅋㅋ 자기 혼자만 아는 정보가 너무 많고 아군도 속이고 팀킬도 감수함 ㅠㅠㅋㅋㅋㅋ 개이기적이게 느껴질거 같고 영 맥락에 이해 안되는 명령을 앞뒤설명 없이 계속 하니까 짜증나서 반항하게될듯 ㅋㅋ…. 사정은 있지만 진짜 부하 입장에선 부하들을 위한다 생각 안들었을듯 ㅎㅎ 세이렌 씬은 마약씬 같았음.



잘 짜여진 선명한 메세지 위의 플롯이 어쩐지 그리 매력적이지만은 않아서 신기했음. 어쩌면 호프를 보고나서, 상담을 받으면서 이제 복잡하고 모호한 세상의 매력에 눈을 뜨게 되가는 거 같기도 하다. 새로운 챕터인가.




아 그리고 헬레네 역에 흑인을 쓴 걸로 처음에 말이 많았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 어울림. 일단 여자로서 아름다우시고, 헬레네 얼굴이 중요한 전쟁 원인이 아님이 나오고, 남편들에게 분노하는 여자들의 모습으로서도 잘 어울림.




후기가 다소 난잡한데, 한 영화에서 하나의 감정을 느낀다 했을때 이 영화에서 내가 가장 크게 느낀 건 전쟁의 참혹함이다.

무자비한 죽임과 죽음.
되돌이킬 수 없는 일상의 파괴.
민간인들의 살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전술을 만들어내지만
그로 인한 죽음과 파괴의 결과를 원했냐 하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 라는 것.

하지만 나라는 사람 개인의 입장에선 저런 전쟁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어난다면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리고 저 순간에 인간성을 지키며 자기 가치를 따라 사는 것이 과연 정말 좋은 길일까? 하는 의문. 그냥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거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상담선생님은 전쟁에서도 사람마다 태도는 다르다 했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이 전쟁 속에 있는 사람으로서 강하고 압도적인 위치에 올라 안전해지고 싶은 불안이 가장 많이 느껴졌다.






Ps. 보통 영화보고 오면 나무위키 찾아보는 편인데 이건 그닥 궁금한게 없네.

너무 강한 메세지는 호기심을 남기지 못하는구나 싶다.



Ps2. 시논이나 부하들이 오딧세우스를 못 믿게 된다거나 자기들까지 속이면서 그렇게 했어야했냐고 항변하는 모습은 너무나 공감되지만(나라도 그랬을거지만) 천막의 자두가르에 나오는 시타라라면 달랐을 것이다. 그 작품도 결국 같은 메세지를 담았다. 자신을 지켜줄 이 없는 변화무쌍한 세상 속에서 자기생각을 가지고 상황을 이해하려들고 자기뜻을 갖고 행동할 줄 아는 사람만이 무력하게 휩쓸리지 않는다는 것.

아 젠장 그게 제일 어렵다고..



Ps3. 오디세우스의 10년의 귀향길에 2년은 키르케랑 살고 7년은 칼립소랑 살며 보낸걸 생각하면 험난한 바다보다는 안락함을 주는 여자들의 유혹이 현실의 자기자리에 가서 어려운 책임을 마주하는데 더 강력한 훼방꾼이란 교훈을 담은거 같다. 맞지 맞지. 부하들이 소를 잡아먹은 것처럼 입에 단 것이 뿌리치기 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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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더 지나 생각을 다시 해보니


신들의 뜻 - 전쟁, 재해, 사건/사고 등 외부환경의 변화와 자연의 섭리 등을 의미.

부하들의 행동 - 본능, 충동에 따름 또는 신들의 뜻에 따름.

아테나 - 오디세우스의 양심이자 이성.

오디세우스 - 목표(집에 돌아간다)를 달성하기위해 귀향길을 거세게 밀어내는 신들의 뜻(난관)에 맞서고, 부하들처럼 배고픔이나 당장의 힘듦이나 유혹에 넘어가지 않으려하고(본능만족을 지연하고 인내), 물론 칼립소의 품에서 시간을 보내니 유혹에 완전히 면역된건 아니지만, 끝내 자신의 현실로 돌아가 목표를 완수하고 짊어져야할 잘못과 원성을 포함하여 책임을 진다.


이성,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다는건, 이 영화에서 보자면, 자신이 궁극적으로 원하는게 뭔지 알고(눈 앞의 욕구를 충족한다거나, 감정이나 충동을 위안시키려드는게 아니고), 그것을 위해 둘러싼 환경의 섭리와 규칙을 이해하고 이 규칙들을 존중하며 그 안에서 목표 달성을 위한 행동을 선택하며, 뜻하지 않은 일들까지 포함해서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자기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는 것이다.


그것이 그를 집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주었으며,
그랬기 때문에 그 부하들은 집에갈 수 없었던 것이다.

일어서자, 걷자, 숨쉬자, 눈 뜨자, • 아메바의 파편이 모이는 곳

by 작은 레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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