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2# Somport-> Villanua <01. 눈부신 피레네>

아침이 시작됐다. 한국에서 매일 늦잠잤는데, 여기선 아침에 바로 깼다.


나 빼고 다른 순례자들은 이미 다 나간듯 했다. 적어도 어제 같이 묵은 룸메 할아버지는 없었던 것 같다.



짐은 자기 전에 이미 대강 챙겨두었기 때문에 나도 아침으로 간단한 요깃거리만 챙기고 바로 나왔다.

알베르게는 어두웠고 별다른 체크아웃없이 그냥 밖으로 나왔다.


어두침침했던 어제와는 달리 (그래도 해 지기전에 밖을 돌아다보긴 했다만)


아침은 매우 쾌청했다.




아직 높은 산 중엔 해가 들지 않았지만 하늘을 샛파랬고 

저 멀리 산 봉우리들은 빛을 발하며 반짝였다.


6월이지만 눈이 아직 쌓여있는 이곳은 피레네의 산 속이다!





완전 초짜라 이제 어떻게 까미노를 시작하는 거지? 싶었지만 바로 앞에 표지판이 보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길


길에도 친절하게 까미노의 길이라는 표식들이 이어졌다.




이게 나의 첫 표지석, 산띠아고 까지 858키로미터 남았다.



처음 조가비를 보곤 몰랐지만 저 조가비 넓은 쪽이 내가 가야할 방향이다.




이젠 어제의 마드리드에서 처럼 갈팡질팡 헤매거나 시간에 쫓기거나 모르는 스페인어에 둘러쌓일 필요가 없었다.


아주 조용한 피레네는 아름다웠고 시간은 내 자유고 길에는 오로지 나 뿐이었다.


한참 내려가는데 뒤에 어제 알베르게에 묶었던 다른 남정네 둘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로 질주해가는게 보였다. 매우 빠른 속도로 사라졌다. 내 기억엔 그 도로 경사가 무시 못할 정도에 거의 급 커브가 연달아 있던걸로.....


나도 자전거 진짜 좋아하는데 여기선 절대 타고 싶지않다.







알베르게 앞에서 찍은 사진, 저 멀리 까미노 초입 표지판이 보인다. 아 얼마나 선명하고 가슴뛰는 모습인가.

+ 언덕 위에 보이는 성모상과 돔 형식의 십자가 덮개(?)는 쏭뽀흐에 대한 안내 책자에 등장하는 대표 명물 1이다.




알베르게를 향해 섰을 때 오른 쪽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 왼쪽으로 걸어가면 '여기서 부터 프랑스 입니다'하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내가 해를 향해 가는 꼴이었으므로 내 뒤편 경치가 햇살을 받아 매우 아름다웠다.




알베르게 옆에 위치한 스페인 국경. 그래도 유럽연합이라 그 모양새를 띤듯. 지키는 사람도 없고 관문소도 없다. 

이 산꼭대기에 누가 서있었다면 그게 더 불쌍한듯.





알베르게 바로 옆 상등성이에서 내려오는 계곡 물줄기. 

학교에서 물순환에 대해 배우면 바다에서 기화돼 구름이 된 뒤 산에 내리면 산에서부터 물이 내려와 강을 만든 다는게 바로 여기서 출발하는 구나 했다.






순례자 철제상. 까미노 시작점 옆 언덕에 위치하는데 이게 바로 쏭뽀흐 명물 2. 이제 쏭뽀흐 다 봄. 끝.






처음의 표지판 아래로 이렇게 아기자기한 돌길이 이어진다. 알프스의 하이디가 된 기분이었다. 물론 스위스는 다른 느낌이겠다만. 


유럽은 도시의 아름다움으로 유명한데, 나는 유럽의 산들도 그에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꽤 내려온 뒤에 올려다 본 알베르게. 

초록 빛 산 속에 작은 알베르게가 매우 귀엽다.






오솔길 왼편 아래에 보이는 계곡물. 이렇게 물길을 따라 걷게 된다. 화질이 희부연하게 나왔지만 실제로 보면 더 촉촉하고 청명한 느낌이 든다.






왼편엔 물길, 오른편엔 흐드러지게 핀 6월의 산꽃들이 한창이다. 너무도 아름답다.

돼지풀꽃으로 덮여 죽음의 산 같이 생기없는 흰빛으로 물든 우리나라 산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이 곳의 꽃들은 얼마나 다양하고 색색이 아름다운지. 


우리 들꽃 산꽃들도 외래종에 지지 않고 피어나주길 바란다.









색색이 다른 아라고녜스의 산꽃들








첫 오솔길이 끝나는 지점에 바로 나오는 스키장 리조트. 

창문은 덮여있고 아무도 없다. 희게 빛나는 산등성이 꼭대기로 이어지는 리프트는 멈춰서 산바람에 덜렁거린다.


아무도 없더라도 존재자체로 풍경에 동화되고 아름답다니. 

우리나라 바닷가와 산에 포진하여 경관을 망치고 있는 싸구려스러운 건물들을 내 돈주고 다 한옥으로 갈아버리고 싶었다.





꼬부랑 거리는 도로, 


내 길과는 다른 길이다. 






계속 이어지는 꽃 꽃 꽃


한국에서는 키워보고 싶어서 동경만 하던 물망초가 여기엔 발에 밟히게 많이 피어있었다.


아직 햇살이 들지않아 이슬에 젖은 물망초







옛 터. 스페인어로 설명이 있었던 것 같았으나 지나침. 영어도 있었던가?

무언가의 터였더넉 같은데 이번 까미노에서는 뭔가 이런 유적같은 것들에 관심을 주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고 나 하고 싶은데로 걷기로 했기 때문에 지나쳤다.


그 옆에 핀 노란 꽃들이 너무너무 예뻤다.






이제 2 킬로 걸었음!


순간순간이 너무 아쉽고 아름답고 행복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











도로와 어느새 가까워진 까미노


어차피 다니는 차가 없어서 매연 걱정은 없다.




이런 오솔길들이 나는 지금도 너무나 좋다


사진이 어둡게 나왔지만 실은 들판과 꽃들도 환하게 빛나고 하늘도 빛나고 산봉우리도 빛난다.


어리석은 카메라가 하나의 피사체에 초점을 맞추면 하늘과 땅 둘 중에 하나만 밝게 표현했기 때문에 이렇게 보일 뿐.





해발 1600 미터 정도 되니 산들에 큰 나무가 울창하기보단 돌이 많이 보이고 그 위에 풀들이 덮고 있는 지형이다.

특히 풀들이 해를 많이 받아 꽃이 다양하게 필 수 있게 되었을 것이다.

중간중간 자라는 나무들은 침엽수 종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수분을 보존하고 강풍에서도 찢기지 않는 잎들을 지녔다. 모든게 어우러져 아름다운 피레네의 풍경을 이룬다.






같이 따라 내려온 계곡물


작은 다리들



이곳을 지나치면



드디어 계곡을 벗어나 넓게 트인 곳에 마주하게 되는데......











이 곳이 내가 걸은 까미노 중 가장 아름답던 길이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표현이 안된다.


이곳에 들어서는 순간 왼편에 하늘을 가리던 산봉우리가 끝이 나고 갑자기 엄청나게 환한 빛이 쏟아졌다.

이제 막 뜬 촉촉하고 새하얀 흰 태양은 내 왼편에서 찬란하게 빛을 뿜고 있었다.


한명이 겨우 걷기 좋은 폭의 오솔길 양옆으로는 노란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있는데 그 색이 너무 예쁘고 초록빛깔 풀 들이 너무 선명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앞으로 펼쳐진 산봉우리들은 아침 햇살아래 가슴 벅차게 빛나고 있어서



나는 진짜 천국에 온 기분이었다.



이 햇살, 이 시간, 이 계절에서만이 볼 수 있는 극히 찰나의 아름다움.


지구가 우주 공간을 돌고 또 돌면서 나고 지는 것들 가운데



여러가지가 딱 한 순간에 모여 완성한 가장 아름다운 퍼즐




그 한가운데 나는 서있었다. 


오로지 나 혼자.











그야말로 모든 세상이 '빛이 났다'


모든 것이 끔찍할정도로 선명했고


극명한 빛과 그림자 속에서 펼쳐지는 건 돌 산 꽃 그리고 꽃







해 반대쪽의 하늘, 맑고 깨끗한 푸름.






내가 걸어온 길


저 나무 그림자 속에서 이 꽃밭으로 나올 때의 환희란.......!









같은 장소인데 한 장에 다 담을 수 없어서 여러번 찍었다. 


생각해보라. 가까운 땅 위의 돌과 꽃들판, 조금 멀리의 푸른 잔디밭과 침엽수들, 더 멀리 눈을 들어보면 보이는 눈 덮인 봉우리들과 새파란 하늘








꽃들 사이로 솟아오른 산속의 난초. 


희고 노란 빛깔이 그야말로 요정.









이제 읽을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싶지 않다


사진들을 영구보관하는 것으로 이번 글의 의미를 남기고 싶다.



나는 이 들판에서 얼마나 천천히 걸었는지 모르겠다.


사진만 찍은 것이 아니라 진짜 이 공간에 존재한다는 것을 최대한 만끽하였다. 조금만 해가 높이 솟아오르면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임을 알기에. 내일 돌아오지 않음을 알기에.








내 블로그 메인 사진을 여기서 찍었다.


수백번 보고 또 봐도 아름답다. 







길은 노란 꽃 들판으로 이어졌다.



나는 여기서 길잃은 양치기 목동 처럼 꽃 속을 헤메이었다.................





헤메었다..........헤맸다....................



길을 잃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문자그대로 길이 없어졌다. 




우와 아름다워

우와 저 꽃좀 봐

우와 저 하늘 최고



우와

하는 사이에


길은 꽃 속으로 사라졌다.


혹시나 내가 한눈팔다 놓친게 아닌가 싶어 처음 부근까지 거슬러 올라갔지만 아예 이 들판이 나온 뒤에 길은 하나뿐이었다.....아예 여기로 오는게 아니었던건가 ㅠㅠㅠ


그치만 길을 잃을 것도 없이 하나 뿐인 오솔길이었는걸....





꽃이 그나마 듬성듬성한 곳이 길이 아니었을까 싶어서 그 쪽으로 한참 걸었더니


저 사진에는 그냥 들판 같아보이지만 무지막지하게 넓은 곳이었고


들판 안으로 들어갈 수록 꽃과 풀의 높이가 깊어져 어느새 무릎까지 빠지는 수준이 되었다.



겁이 나기 시작했다.


어느 쪽으로 가도 계속 가다보면 꽃 사이의 가시덤불로 이어지질 않나

산으로 올라가질 않나


아아아 나는 어떡하면 좋지??? 


등에는 일주일 여정을 책임져줄 커다란 배낭이 메어져 있고 이제 아름다운 산길은 아무도 없는 무서운 곳으로 바뀌고 있었다.




진짜 여기서 이리갔다 저리갔다 하면서 뱅뱅 돌기 시작했는데 저 아름다운 산등성이 중 하나에서 마법과 같이 사람그림자들이 밧줄을 타고 탓탓탓탓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때부터는 제정신이 아니라 사진을 찍지도 못했고 찍을 수도 없었다.


스페인 무장군인들이었다...!!!!!!



등벽훈련인지 돌산을 타고 내려오는데 총을 든 거 까지 보였다.


아 이거 진짜 잘못했다.



왠지 꽃들 사이에 지뢰가 있을것만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국경을 넘는건 자유로운데 군사 훈련 지역으로 넘어온 배낭을 맨 수상한 동양인은 사살해도 되는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카메라를 꺼내면 아주 큰일을 저지를 것만 같았다.





얼어붙어서 빠르게 머리를 굴리고 나는 작전후퇴를 결심했다. 

눈에 보이는 가장 가까운 찻길로 배낭과 한몸이 되어 구르다시피 뛰어내려왔다.






내려오면서 알았는데 사진 속에 보이는 작은 집들은 군인 기지였고 내려와보니 철조망으로 둘러쌓여있어 도로까지 가는 것도 매우 힘들었다.


몇 몇 군인들이 총을 메고 풀 숲에서 서있었는데 다행히 나에게 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주셨다......


혹시나 누군가 나와 같은 절차를 밟는다면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무섭긴무섭다.






도로를 따라 걷다가 다른 오솔길을 찾아 다행히 무사히 까미노로 복귀할 수 있었다. 


도로위를 걷는 동안 차에 치이면 어떡하지, 이대로 시작하자마자 까미노에서 일탈(?)하게 되다니 하면서 근심걱정이 많았는데


며칠 뒤 다른 순례자들과 대화하는 중에 다들 여기서 길을 잃었단걸 알게 되었다. 

비가 와서 산길이 무너졌고 그 위로 돌이 덮어 길이 유실된 것이라고 한다.

(까미노 아라고녜스를 담당하시는 분들이 어서 복구해주시길 ㅠㅠㅠ)




우여곡절 끝에 계곡을 모두 내려왔다.


이제는 길도 조금 넓어졌고


나도 이제 조금은 맘 편히 걷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산골마을 길이 이어졌다.





Day1# Madrid->Somport <02. Somport 가는 길>

기차는 창이 넓었고 내 옆에는 아무도 앉지 않았다. 마드리드에서 내가 가야할 목적지는 꽤나 멀었다. 일기를 끄적이다가 낯선 풍경들이 나타날 때면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한국에서처럼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아야지, 하고 몇번이나 다짐하고 떠났는데. 기차역에 멈출 때마다 보이는 작은 스페인 시골 집들이 내겐 인상적이라 매번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관광객이라고는 하나 없는 무궁화호 같은 기차에서 혼자 찰칵대기 민망시러워 몇번이고 눈치를 보다가 놓쳤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데, 바보같이.



: 내가 탄 기차, 렌페(renfe). 프랑스에 떼제베가 있다면 스페인엔 렌페가 있다.

기차칸에 사람이 별로 없어서 좋았다. 











: 창밖의 그림같은 풍경. 나는 들양귀비를 워낙 좋아하는데 여기는 끝없는 들판과 온화한 기후 때문인지 들양귀비가 무지많이 펼쳐져 있었다. 6월이었는데 밀들이 거의 다 익어가서 여름인 한국과 비교하면 이상하게 느껴지는 가을같은 풍경들이었다.







 창 밖에는 점점 커지는 피레네 산맥과 그 아래 비행기에서 보며 감탄했던 끝없이 펼쳐진 노오란 들판이 뻗어있다. 우뚝 솟아오른 산맥은 그 높이를 자랑하듯 머리가 희끗희끗했고 우리나라 산처럼 부드럽게 솟아오른 게 아니라 누군가 실수로 탁 박아놓은듯, 아무것도 없는 평지에 성벽처럼 얹어져 있었다. 


출발 전 알아본 이번주 날씨 예고대로 산봉우리 위로는 검고 으스스한 구름들이 일렁이고 있었다. 스페인 북부, 피레네 산맥 남쪽 지역 6월 날씨는 주로 아침에 비, 온도는 쌀쌀함. 바로 앞에 펼쳐진 평야지대는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벌써부터 열기가 이글거리는 것과 대조된다. 눈 앞에 다가오는 자연의 장벽과 주변에 맴도는 언어의 장벽, 낯선 공기 낯선 사람들. 그리고 나만 없으면 무척 평화롭고 조화로울 것 같은 풍경 안에서 나는 조금 겁이 났다.

 

 

 

여행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번엔 평소와 달랐다.

 

 

나는 너무 이질적인 존재가 된 것에 예전같으면 즐거웠을 텐데 이번엔 간이 콩알만해졌다.

아마도 직장이나 학업이나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상황에서 무작정 떠나왔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한 뿌리가 제대로 박히지 않으면 세상 어딜 가나 불안하고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위축되게 되는 듯 싶다.


게다가 내가 이전까지 했던 해외 경험들은 그 자체에 목적성이 있었는데(교환학생이나 워크캠프) 이번에는 그냥 '내가 가고 싶어서' '내가 계획짜서' '내 돈 들여' 간 여행이라선지 더욱 어색했던 것 같다. 잘하고 있는게 맞는가 하는 그런 두려움?





 



마드리드로부터 사라고사까지 가는 여정은 편했다. 칸도 넓고 내 옆에 아무도 없어서 반쯤 드러누워서 노란 들판과 이국적인 풍경을 하염없이 바라봤다.......가 잠에 들었다.



이전에 프랑스 기차에서 갈아타야하는데 잠이들어서 하마터면 못 내릴뻔한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 도착예정시간에 알람도 맞춰놓고 긴장한 채로 잠에 들었다.



다행히 프랑스보다 친절하게 어디라고 방송도 나오고 문제없이 내렸다.


사라고사는 넓었다. 다음 somport 근처에 가는 다음 열차를 타기전에 두시간 정도가 남아서 동네 둘러볼 겸 역을 나왔다. 역사 간이 사물함에 백팩을 넣어놓고 시내에 나갔다. 허기지기도 해서 배나 채울겸!


걷다가 쇼핑몰이 보였는데 아, 저기서 유심칩도 살 수 있겠다 싶었다. 올레!



몰은 미국에서도 자주봤던 그냥 몰이었다. 예전 워크캠프에서 만났던 클라라가 사라고사 출신인게 기억났다. 클라라는 이런 곳에서 나고 자랐겠지.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몰에 있는 스페인 주민들을 봤다.





다행히 보다폰 매장이 있었고 (우리나라 skt, kt 매장이 널려있듯) 한산한 몰에 들어온 손님한테 여직원은 매우 친절했다! 솔광장에서 몇시간 기다리느니 이게 훨씬 낫구나 싶었다.


시간도 여유있어서 내 폰 유심칩도 직접 갈아주었다. 말은 서로 안통했지만 유심칩이란 단어는 통했다. ㅋㅋ




폰을 여유있게 새로 켜보고 간단히 마트에서 빵과 오렌지를 샀다. 이번 기차 티켓팅을 도와준 친구는 스페인에서 일년간 교환학생을 했었는데 당시에 오렌지가 아주 맛잇었다고 극찬을 하길래 이번에 오기 전부터 오렌지를 사먹어야지 했다. 빵도 싸고 양 많다고 들어서 나도 사먹어보았다. 한국에서 먹던 거랑 그렇게 크게 차이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새로 탄 기차는 진짜 작았다. 무궁화호 같은 작고 지역주민만 사용하는 듯한 열차였다. 

열차 내에 동양인은 오로지 나뿐이었다. 괜시리 신경이 쓰였다.

건너편 아저씨들을 스페인어로 크게 떠들었는데 뭔가 시골 특유의 거친 목소리가 인상깊었고 나는 좀 쫄았다ㅎㅎㅎㅎㅎㅎㅎㅎ




기차는 점점 산맥을 향해 돌진했다. 중간에 내가 스페인어를 못알아들어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내가 향하는 도시 전에 다른 곳을 들렸다가 기차가 그대로 후진을 해서 방향만 반대로 해서 달리기 시작했다. 좀 색다른 기분이었다. 



Somport는 구글지도에서도 보면 알겠지만 마을이 아니다. 그냥 어떤 '지점' 이라고 해야할까. 오직 여관 한개만 존재하는 곳이다. 프랑스와의 국경이며, 그렇기 때문에 기차로 갈수가 없다. 중간에 내려서 버스로 갈아타야하는 걸 알고는 있었는데 버스 티켓은 별도로 끊어놓진 않았었다. 어쨌든 알아본 바로는 해지기 전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란 것 뿐.



: 엄청 확대한 상태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다 ㅠㅠㅋㅋㅋㅋ

구글에서 나와있는 예시 사진이 유일한 알베르게고 옆에 보이는 도로를 따라 스페인을 등지고 걸으면 '여기서부터 프랑스입니다'하는 푯말이 서있다.





열차가 내 목적지에 다다랐다 (마을 이름을 까먹었다. ㅠㅠ) 

버스 정류장이 나는 바로 이어져 있을 줄 알았는데 크나큰 착각이다. 역에서 나는 한참을 헤매다가 여행자의 원칙, 모르면 용기내서 주민들한테 물어봐라! 를 시행했다.


역장 아저씨는 나한테 계속 스페인어로 말을 걸었으나 나는 한마디도 못알아듣고 아저씨도 영어를 못하고 둘다 시무룩.......

일단 지도를 꺼내서 목적지를 보여주니 알아는 들으신것 같았다. 그러나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난감해하심.


우여곡절 끝에 저쪽으로 가란 말을 들었는데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빨리 가야하는 상황이었다. Somport 버스 시간표를 주셨던거 같은데 가는 차가 몇대 없었고 곧 막차가 끊길 예정이었다 ㅠㅠㅠ

스페인까지 와서 차 시간땜에 하루종일 이리저리 뛰었다........


진짜 길을 좀 음미하면서 가고 싶었는데 이거 놓치면 일주일 계획이 다 뭉그러진다는 생각에 진짜 피눈물 흘리면서 헐떡이면서 뛰었다.

문제는 뛰는데 내가 맞게 뛰는지 모르겠다는 거 ㅠㅠㅠㅠ 아저씨가 대강 이정표를 체크해주었는데 지도가 너무 단순하게 그려져있었고 나는 스페인어 간판을 읽을수가 없었다. ㅠㅠㅠㅠ 진짜 언어의 중요성을 다시금 실감.



그치만 워낙 시골 마을이었고 조그만해선지 계속 뛰니까 사람들이 모여있는 광장에 다다랐다.

스페인은 거의 대부분의 마을이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어서 잘 모르겠으면 가운데로 가면 된다. 광장에서부터 길을 찾는 것이 더 쉽다.


게다가 여긴 광장이 탁 트인 곳에 위치하고 바로 옆에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터와 공터가 있어서 마음이 한결 편했다. 어떤 곳들은 광장이 건물로 둘러쌓여있어서 찾기가 매우 힘들다.

광장 한가운데 인포메이션에 재빨리 달려가서 나 버스 타야된다고~~버스 시간표를 보여주니 진짜 하늘이 도우사 광장에 버스터미널이 위치하고 있었다. 


역에 도착했을 때 이미 기차가 좀 늦어서 5분안에 버스 타러 가야하는 상황이었고 역이 마을 바깥에 위치한데다가 택시를 탈수도 없는 상황이어서 사실 진짜 미칠것만 같은 마음으로 달렸었다.


솔직히 우리 집에서 집앞 지하철역까지만 가는데도 5분은 걸리지 않는가!!...... 진짜 밑져야 본전이다 하는 마음으로 뛰고 또 뛰면서 아 진짜 닥쳐서 뛰는 삶은 이제 그만하고 싶다와 그래도 끝까지 전력질주해야 후회 없다는 마음이 연달아 교차했다.




버스터미널은 말이 터미널이지 그냥 천장있는 버스 차고와 사무소 하나였고 나는 일단 차고에 보이는 버스로 돌진했다. 

그런데 버스는 닫혀있고 사람도 안보이고 ㅠㅠㅠ 나는 놓친줄 알고 그 앞에서 진짜 뱅뱅 돌면서 눈물이 날것만 같았다. 


버스 건너편 차고 안 벤치에 한 할아버지가 자세히 보니 순례자스러운 복장과 조개껍질달린 가방과 지팡이를 짚고 앉아있었다. 




그렇다. 기차도 늦게 도착했지만 버스도 늦게 출발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페인타임 만세!





오히려 나는 거기 정류장에서 한참 기다렸다. 

버스는 사람들이 많이 모일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었고 나는 그 할아버지 뒷 자리에 탔다.


워낙 시골이라선지 사람도 별로 없었고 우리나라에 있는 일반 버스와 달리 좌석 등받침이 낮고 창이 바로 옆에 넓게 있어서 관광차량 같았다.



이제 산맥 속으로 올라간다.

이 버스를 탐으로써 오늘 목적한 일을 모두 성공리에 마무리 하게되었다. 안도의 마음에 진짜 스스로가 대견하고 방금 전까지 초긴장 상태를 지속했던 피로가 한번에 몰려왔다.


그제서야 여유를 가지고 승객들을 관찰도 하고 풍경도 보았다.

(진짜 사진을 보면 사라고사 때부터 한장도 못찍었다 ㅠㅠㅠㅠ)




: 이렇게 등받이가 낮아 앞좌석 손님이 바로 보인다.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할아버지. 앞으로의 여행에서 친해질줄 당시에는 생각치도 못했음.




: 기차에서 보던 풍경과 확연히 다른 차창 밖. 이제 초록이 완연하고 피레네 산맥의 높은 봉우리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있었다. 
















Somport는 마지막 정류소였고 사람들이 하나둘 씩 내리기 시작했다. 한 내 또래 같아 보이는 스페인 여성은 마지막 다 되가는 쯤의 한 산골 집 앞에서 내렸는데 가족들과 포옹하는 것이 보였다. 도시에서 공부하다가 방학에 집에 온것일까? 여기는 진짜 우리나라 경상북도 태백산맥 시골같이, 우리 할머니네 같이, 집들이 듬성듬성 가운데 길을 중심으로 떨어져있었고 관광객은 제로!였다. 




까미노를 처음 계획하던 때만해도 나는 내가 이런 동네에 올지 전혀 몰랐다. 오는 중에서도 진짜 계속 당황했다. 나를 제외한 승객들은 그냥 일상생활 영역으로밖에 안보였고 관광객이 하나도 없는 지역에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오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완전 혼자! ㅠㅠ


뭔가 어색하고 내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라 불편했다. 남들 다 쓰는 까미노 순례 후기를 보면 안이렇던데 ㅠㅠ

나중에 다 끝나고야 알았지만 유럽사람들도 잘 안오는 길이 바로 여기, 까미노 아라고녜스(Camino Aragones) 였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주로 가는 까미노 프랑세스는 이와는 전혀 다른 '순례자들이다~ 여기도 있다~ 저기도 있다~' '한국사람 엄청많다~' 분위기임을 나중에야 알았다. 그걸 알게된 뒤로는 내 순례길에 대한 후회가 하나도 없어졌지만, 최소한 Somport로 오는 길 동안에는 진짜 내가 잘못알고 가는건 아닌지, 이미 역사속에 없어진 길은 아닌지, 영업중지인지ㅠㅠㅠ 여러가지 걱정이 계속 들었다.







Somport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이 다되었다. 여름의 유럽은 해가 늦게 지긴 하지만 그래도 하루가 종일 걸린 이동이었다. 이젠 앞의 할아버지를 따라 가면 되겠지 해서 안심이 되었다. 할아버지는 짐을 다 내린 후 바로 앞에 보이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도 따라 들어갔는데 슥 보니 이 가게 빼고는 진짜 '아무것도' 없었다. 


들어가서 체크인 하는 할아버지 뒤에 서있으니 알베르게 여주인 분께서 능숙한 영어로(ㅠㅠ 감동 ㅠㅠ 드디어 말이 통함) 순례자냐고 여쭤주셨다. 


고생끝에 얻었던 끄레덴시알을 꺼내드리니 첫 도장을 찍어주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네 한국인들은 죄다 '킴'이냐~"




이런 농담도 내가 알아먹을 수 있어서 마냥 좋기만 함.



이미 거기엔 순례자들 몇이 한명은 테이블에서 밥을 먹고, 한명은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뭐좀 먹을거냐고 물었는데 난 이제 지치고 혼자 낯선이들 사이에 있고 싶지가 않아져서 바로 숙소로 들어갔다.


2층 숙소에 가니 그 할아버지랑 같은 방!


할아버지가 먼저 말을 걸어주셨다. 영어가 가능한 스페인 할아버지였다. 짧은 인사를 하고 주위를 좀 둘러보고 온 뒤 아침부터 걸을 생각에 일찍 잠이 들었다.



아 드디어 알베르게다.

까미노다.



허둥지둥 갈팡질팡 했지만 다행히 까미노 시작점에 도착했다. 






: 첫 알베르게 내 방. 가운데 사진에 보이는 것이 스페인 할아버지의 짐과 지팡이

저 지팡이 나중에 부러워짐






: 창 밖 풍경. 자기 전에 나와서 저기 도로 끝까지 걸어가봤다. 그 옆에 보이는 십자가 상은 까미노 책자에 Somport하면 나오는 단골 상징물이었음. 






이렇게 나의 까미노가 시작했다.

Day1# Madrid->Somport <01. 마드리드에서 까미노 준비>

 

 

누군가 내게 그날그날  느끼는 감정을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에 올라탄 순간 내 감정은 바로 '무서움'... 


'아니, 내가 진짜 남의 동네에서 뭐하는 거지??'

 

 

 

 

 

 

 

 Day 1#     Madrid -> Somport

 

 

 

 

  

 

 내가 탄 기차는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선을 낀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고 있었다. 


좁은 열차칸 안 건너편엔 주먹 꽤나 쓸 것같은 옹이진 얼굴의 스페인 노인 둘, 치즈 광고에서 소젖짜며 나올 것 같은 금발의 통통한 여자 하나가 보였다. 감히 일어나서 보진 않았지만 그 칸에는 '일상적'으로 열차를 탄 스페인 사람들 다수, 그리고 그 풍경과 너무도 어색하게 커다란 산악배낭과 검은 머리에, 심지어 그 동네에선 보기 힘든 커다란 안경을 쓴 동양인 여자애가 하나가 있었다. 나는 오랫만에 이방인이 된 느낌에 매우 쫄아 있었다.



 낮은 저음의 스페인어로 중간중간 대화하는 소리가 내 머리 위에 떠돌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올해 경기에서 누가 이긴줄 알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게 내가 뭐랬나? 자네는 내 말은 하나도 안듣지!' 라는 내용이면 적절할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도착한 스페인, 처음가보는 마드리드, 하지만 둘러볼 시간도 없었다. 유심칩 기다리면서 있던 광장에서 뭔가 시위하던 스페인 사람들과 개의치 않고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주민들)





이번 일정은 오로지 딱 1주일 동안 아라곤길을 걷는 것이기에 계획한대로 첫날은 마드리드에서 출발지인 Somport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사전조사한대로 마드리드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세 가지!



- 1주일 용 선불 유심칩 구입하기

- 순례자의 증표인 끄레덴시알(Credencial) 구하기

- Somport 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하기



였다. 오전이 다 지나서 도착했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특히 Somport는 듣보잡 깡촌이기 때문에 기차가 하루에 몇대 없었고 불친절한 스페인 기차 티켓팅 홈페이지는 영어가 지원되지 않았다......ㅠㅠ


출발 전 세가지를 오후 내에 다 해결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1) 우선 스페인어가 가능한 학교 친구에게 부탁해서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았다. 친구 말이 버스보다는 기차를 갈아타는게 가장 빠르며 가격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목적지인 Somport 로 가기 위해서 마드리드(Madrid) -> 사라고사(Zaragoza) ->...........-> Somport 로 여러번 환승이 필요했다


Somport(쏭뽀흐 라고 읽음)는 피레네 산맥에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지역에 위치하는 아주 시골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omport 


쏭뽀흐를 검색하면 나오는 위키백과에서도(불행히 한국어는 없다...내가 나중에 번역해야겠다) 접경지역으로 나오며 까미노 길에 대한 설명이 주다.. 즉 여기는 마을같은게 아니다. 쏭뽀흐에 딱 도착하면 단 하나뿐인 여관이 나오고 표지판이 여럿인데 하나는 '이 뒤부터 프랑스 입니다' 이다. 군인도 철책도 없고, 나도 '그냥 해볼 수 있으니까' 괜히 그 앞에서 국경을 여러번 걸어서 넘었다들어왔다 했다.




2) 끄레덴시알을 발급해주는 곳은 여러 군데 인데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시작하는 Camino Frances (프랑스 길)의  Saint-Jean-Pied-de-Port (생장 드 피예드 포트) 에서 주로 많이들 발급 받는다. 또는 스페인에 있는 주요 성당이나 알베르게에서도 발급 받을 수 있다.


나는 메인 루트인 프랑스길이 아닌 스페인 아라곤 지방을 출발하는 까미노 아라고녜스 가 목표였으므로 당연히 생장뭐시기~에서는 받을 수가 없었다. Somport에서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찾아봐도 잘 안나오기 때문에 우선 마드리드에서 발급 받기로 계획했다.


마드리드에서도 발급 해주는 곳은 다양한데 한국분께서 운영하시는 한인 알베르게에서도 발급이 가능하다 (무려 온라인으로도!)


http://caminocorea.org/?page_id=3124

(-> 여기 가보면 끄레덴시알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읽을 수 있다.)



끄레덴시알이 있어야 순례자를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서도 묵을 수 있고, 끄레덴시알에 '도장'을 받아야 순례의 증거도 남는다. 그래서 출발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마드리드 관광도 할 겸 알무데나 대성당에서 발급 받기로 혼자 정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드리드에 사시면서 주말에 짬내서 까미노 순례를 하셨던 한국 분이 알무데나에서 발급을 받은 적이 있다는 글이 나왔다. 나도 그럼 받을 수 있겠지!(하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게다가 알무데나 대성당은 마드리드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해서 반나절 밖에 못있는 마드리드지만 중요 관광지는 눈으로 찍을 수 있겠구나 했다! 




3) 1주일용 선불 유심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다가 알게되었는데 아주 친절하게 설명된 블로그들이 많다.

아마 내가 그 당시 본 건 이거인듯!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_r0316&logNo=110169866136


문제는, 이 사람 블로그 만큼 보다폰 직원들은 친절하지가 않았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뒤 기차 출발 전까지 유심을 발급받고 또 끄레덴시알을 받기까지 몇시간 밖에 없었다. 


재빨리 지하철 티켓을 끊고 먼저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스페인의 느린 일처리가 여러 블로그에서 언급되었었다) 말에 솔 광장(Puerta del Sol)에 갔다. 



광장은 넓었고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느 서유럽의 광장들과 별 다를 것 없어보였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광장들이 떠올랐다. 여기가 좀 더 넓찍했지만.


맨 위의 사진이 솔 광장, 보다폰 매장은 금방 발견, 바로 들어가서 블로그 말대로 순번표를 뽑았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직원 중에 영어가 가능한 분이 있었고 나는 위층에 올라가서 기다리게 되었다. 사람이 엄청 많은 건 아니었지만 모든 창구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긴했다. 나는 일단 느긋하게 기다리다 정 안되면 나가야지 하고 아예 작정했다. 


창밖에는 광장이 보였는데 사람들이 그냥 많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시위 중이었다.

무슨 꽃 같은걸 머리에 쓰고 동그랗게 강강술래 같은 걸 하길래 이벤트인줄 알았지. 



그렇게 시간이 계속 지나고 

또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고 나는 이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원래 그 다음 목적지인 알무데나 성당은 꽤나 가까워서 구경할 겸 걸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아마 뛰어가야할듯....!




결국 보다폰을 포기하고 (느린 일처리에 한국을 그리워하며) 알무데나로 이동했다. 




알무데나로 이동하는 길을 아름다웠으나

나는 파워워킹으로 빠르게 통과


다행히 목적했던 Opera 역이 보였다. 


거기서 왕궁으로 꺾어들어가니 길게 늘어선 관광객 줄이 보였다. 



왕궁은 진짜 '아 저게 왕궁이군' 하고 빠른걸음으로 지나친 다음에

(마음이 급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ㅠㅠ 내 계획은 보다폰매장직원님들이 사뿐히 즈려밟아주심)


알무데나 성당에 다다랐는데.......문제는 입구에 들어가니 그냥 성당이다.

뭔가 여기로 들어가는거 같지 않은데 ㅠㅠㅠㅠㅠ 거기서 한참 뺑뺑 돌다가

뒷길을 발견해서 가보니 인포메이션 같은거가 나왔다. 


나는 스페인어고자일 뿐이고

끄레덴시알이 맞는 발음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외쳐!


몇몇 영어하는 직원이 이 쪽이 아니고 다른 쪽이라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고 나왔지만

여전히 어딘지 감이 안왔다. 그냥 이건 관광명소인거같은데 ㅠㅠ


물어물어 뭔가 사무소 같은 방들이 이어진 곳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도 한참 헤매고 있는데 어떤 자유로운 복장의 (마치 개량한복같은....) 한 아주머니가 자기도 방금 안에서 끄레덴시알을 받고 나오는 참이라고 웃으며 어딘지 가르쳐 주셨다! 할렐루야!




신부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약간은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의 신부님이 계셨다.

물론 말은 안통해서 끄레덴시알 끄레덴시알 하니까 끄덕이시면서 많이 해보신듯 뭔가를 적으신다.


말이 안통해서 그런지 아님 내가 너무 긴장하고 당황해서 그런지 엄격해보이는 모습이 뭔가 무서웠다.

게다가 내가 오기 전에 상상한 인자한 할아버지 신부님의 따스한 미소와 환대하는 까미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이름 물어보시는데 (신부님도 영어가 안되서 대충 감으로 대화함) 내 세례명도 일부러 말했는데 그냥 약자로 후려치심 ㅎㅎㅎ



어쨌든 임무완수하고 나름 감사의 표시로 그라씨아스~Gracias~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이제 좀 여유를 찾아 왕궁 담벼락에 붙어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 




: 문제의 알무데나 성당

가보면 정말 어디로 들어가야할지 감이 안온다. 성당에서 끄레덴시알을 발급받고자 한다면 성당 정문이 아니라 뒤쪽의 성당사무소에 들어가야한다.




: 철창 사이로 찍은 왕궁의 한켠, 왕궁이라 그런지 금박이 간간히 보인다. 프랑스같은 느낌은 없지만 아직 왕이 존재하는 국가인거 자체가 매우 신기했음.

내가 있던 기간에 당시 왕이었던 후안 카를로스1세가 왕위 양도, 국왕 즉위식이 있었다.










이렇게 마드리드에서 마음먹은 것 중 한가지만 완수하고 기차를 탔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고 폰이야 뭐, 정 안되면 없이 걸으면 되니까!

인터넷은 어차피 못할 생각이었고 폰이 없어도 괜찮도록 정말 필요한 자료들은 다 인쇄해서 가지고 왔었다.

없으면 어찌어찌 되겠지~ 하는게 여러번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인생교훈이라

초짜처럼 당황하진 않고 그냥 맘 편히 기차에 올랐다.





혹시나 이 글을 참고해서 마드리드에서 까미노 준비를 하실 분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1) 마드리드 알무데나 성당에서 끄레덴시알 발급이 가능하다. 다만 스페인어를 못할 경우 성당 정문이 아닌 뒤 쪽 사무소로 들어가야함을 알려주고 싶다. 

(정문으로 들어가도 될수도 있는데 나는 일단 말이 안되서 모르겠음)



2) 솔광장 보다폰 매장에서 유심칩을 발급받으려면 최소 두세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은거긴 한데 굳이 솔광장 매장을 갈 필요없다. 말이 안 통해도 유심칩 구매는 가능하고, 솔광장엔 관광객이 많아서 무조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기차 환승을 위해 잠시 들른 사라고사(Zaragoza) 쇼핑몰에서 5분만에 샀다.......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역에 가득찬 유럽사람들을 보니 다시금 두근거렸다. 나는 지금 스페인이다!





다음 글에서 첫날의 남은 여정, 진짜 까미노의 시작을 향한 과정을 적어보겠다.






Camino Aragones Day 1# Madrid -> Somport

0# 까미노 아라곤 길 도보일지




Camino de Santiago _ Aragones




Santiago de Compostela를 향해 걷는 순례자의 길


그 여러 길 중에 잘 알려지지 않고


조용하고


아름다운


홀로 걷기 좋은 그 길을 이제부터 소개하려 한다.






2014.06.10-2014.06.21


「Somport」 to 「Puente la Reina Gares」









약 1주일간의 여정













이름만 봐도 다시 심장이 세차게 뛰는 그 곳

그 곳에서 만난 사람들과 추억





다시금 차근차근 펼쳐보겠다

일어서자 걷자 숨쉬자 눈 뜨자 by 테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