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12. 19:44 생각 기억 느낌/나 관찰일기
삶이 시련과 고통을 줄 때가 많다
생각한 것 이상의 나락을 경험할 때도 있다.
바닥이 없을 것 같은 어둠 속으로 빠질 때도 생긴다.
그 고통자체는 너무나 나를 괴롭게 만든다.
내 영혼과 몸은 자신들의 최선을 다해 이것을 완화시키고 탈출하려 애쓴다.
술을 마시거나 노래를 듣거나 새싹을 심거나 따뜻한 샤워를 해준다.
그러한 시간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선물은 수없이 많은 인간사에서 나보다 더 비할데 없이 끔찍한 삶을 살아온 무수한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내가 어렴풋 이해하게 되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나의 삶의 목표 중 하나는 삶의 풍부함을 경험하는 것이다. 고통과 슬픔 비극적인 요소들은 문학이나 다른 이야기들 속에서 그들의 주름을 접었다 펴면서 날개를 펼쳐낸다.
나는 나락에 떨어진 뒤에야 비로소 그들의 글을 마음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바닥에 머리를 세게 부딪히고 갈길을 잃은채 방황한 뒤에야 나의 십자가를 메라는 말을 영혼에서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삶의 의미를 전부 잃고 미래에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게 된채 무기력하게 숨만쉬게 되었을 때 비로소 삶에 대한 노래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삶에 대한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나의 가난 배고픔 슬픔 좌절 수모 모멸감을 줄 제라도.
나는 삶이 기쁨 희망 재미로만 이뤄져있지 않다는 걸,
성공의 찬미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란걸
그럼에도 의미있고 그 안에서 진정한 정신적 성취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삶이란 결국 내 안에서 이뤄진다는 것을.
행복과 자유란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아, 내가 이렇게 구렁텅이 속에 떨어졌기에 삶이 가치있는 것임을 이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알 수 있다.
사랑의 위대함을.
내적인 성취를.
시련 속에서 태어난 인간사의 뜨겁고 단단한 글들이 존재하는 한 내 인생은 외로우면서도 외롭지 않다.
이렇게 책을 읽게 될 때, 이해하게 될 때, 글쓴이의 마음이 느껴지고 그것이 나에게 위로가 될 때 느끼는 환희는 얼마나 큰지.
나는 이 세상 현재에 존재하지 않는 듯하면서 동시에 또렷하고 강렬하게 지금 이 순간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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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11. 21:38 생각 기억 느낌
올해 우리나라 정부께서 공무원을 더 뽑겠다고 한다.
그 이유로는 청년 실업 해결을 내세우셨는데
만약 실제로 공무원 일손이 부족했던게 이유였다면 납득할 수 있었을 거다.
청년들이 갈곳이 없으니 공무원에서 더 받아주겠다는 정책은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다..
요즘 내각을 보면 정말 내가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공무원을 아무리 더 뽑아도 현 실업자를 다 받아주는 것은 택도없다. 이런 정책은 더 많은 젊은이들을 수험생으로 몰아붙이는 것일 뿐이다.
둘째로 이렇게 뽑힌 공무원이 된 청년들은 나는 통과된 사람이라는 의식을 가지기 쉬워진다. 그들이 어떤 기득권층이 될지 생각해 보고 세운 정책일까? 우리나라 기존에 팽배해 있던 생각들, "시험에 통과하지 못한건 너네가 열심히 하지 못해서고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이다. 통과한 사람들은 더 좋은 삶과 보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것들을 강화시킬 뿐이다.
이 생각들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보면 울화통이 터진다. 시험 외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사는 사람이 많다. 뛰어난 사람도 많고 노력하는 사람도 많다. 고작 시험이 더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다. 그걸 가지고 특권의식을 가지는 우리나라는 뭔가 잘못되었다.
그렇게 별거아니면 다 시험보라는 반박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정말 동네 할아버지나 할 말이다. 할아버지를 비하하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보다 개개인에게 하는 조언 수준이라는 말이다. 내가 아는 동생이나 조카나 동네 아이한테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국가 정책을 논할 사람이라면 전체 국민 중에 취업연령대의 국민 수 전체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공무원은 극히 일부의 청년만 갖는 '일자리'이다. 그리고 각 개개인은 강점이 다르다. 공무원이 하는 주 업무는 부처별로 다르지만 주로 행정업무와 법의 시행이며 5급 이상이 될 경우 이제 정책 제안 및 분석 영역에 갈 것이다.
전 국민이 행정업무만 하는 나라.
말이 되나? 누가 돈을 벌어올 것이며 연금은 누가 줄 것인가?
실업문제를 해결해야하는 이유는 그들이 시끄럽게 하기 때문이 아니고 당장 30-40년 뒤에 현 기득권들이 국내에서 돈벌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기득권들은 왜 그걸 모르는가.
다 현재의 지위와 부로 외국에 갈 생각들이시라면 이런 나라는 그냥 망하게 두는 것이 낫다.
탈출을 할 생각인 사람들이 모는 배는 침몰할게 자명한 것이니 당장 땜질만 하는 것이다.
국민들의 입장은 다르다. 4천7백만명이 한번에 탈출할 곳은 없다. 우리도 난민이 되는 것이다.
국민들은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고싶어한다.
그렇다면 우리도 앞으로 더 돈 많이 벌 길을 찾아야하고 그것은 미래의 한국 청년들이 해야할 일이다.
돈은 어떻게 버는가, 21세기의 세계 부자 명단을 보면 그것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 도전과 실패 속에서 나온다.
전국민이 더 많은 도전과 실패를 할 수 있고 각자의 강점을 펼칠 수 있는 토양과 게임판이 형성되어야한다.
지금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기득권이나 노인층을 위한 눈가리고 아웅은 정권을 잡는 데 까지만 유효할 것이다.
그러면 지금 정권을 잡은 뒤에 은퇴하고 외국에 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는가?
진정 한국의 백년 이백년을 생각하고 국가를 이끌 사람은 현 정치권에 없는 건가?
공무원을 몇명 더 뽑을 돈으로 차라리 젊은이들에게 평생 연금을 줘라.
기업문화는 어차피 진화이론에 맞게 더 좋은 쪽으로 자동 발전할 수밖에 없다. 기업은 약육강식의 세계이므로 삼성조차 아무도 지켜주지 못한다. 이것은 세계 속의 경쟁이므로.
우리가 조심해야할 것은 정권이다. 법이다. 정책이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기업이나 사회단체나 시민이나 다 말짱 황이다.
가까운 길을 아주 힘들게 돌아가야한다.
공무원을 권하는 것은 자식들 먹고살 걱정을 하는 부모로 족하다.
공무원 권하는 나라라는 것은 국민들에게 각자가 생존에만 초점맞추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 국민들과 그들이 기를 자식들 중 누구가 애국심을 가질까. 애국심없는 생존을 위해 하는 공무원이 꽉 찬 나라는 얼마나 튼튼할까?
공무원을 권하지 마라.
서류작업하고 도장찍는 국민만 둔 정부는 세금을 걷을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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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2. 9. 21:12 學問如逆水行舟/서재
오랜만에 '맘에 드는 작가'를 만나 더할나위 없이 기쁜 맘으로 그의 책을 또 찾아 읽었다.
웬걸, 이번 책은 전 처럼 쉽게 읽히지가 않았다. 번역문이 좀 긴 문장을 있는 그대로 번역해서 인거 같기도 하고 또 사람의 마음이 아닌 사회의 단어들이 많이 들어가서 인것 같기도 했다.
책 서문에 작가의 말에 정말 공감한다. 사실 사람의 인생을 시간적으로 본다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일'이다. 그런데 온갖 예술은 그 일에 대한 것들을 그다지 조명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사람에 대해 알아갈 때 중요한 부분을 놓치고 있는 것과 다름없다.
나 자신 조차 투자회사에서 다양한 산업군이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게 사회를 지탱하고 있다는 것에 놀라지 않았는가. 이 책에서 보통은 내가 들여다 봤던 것보다 더 가까이에서 우리 사회를 감싸는 산업들과 그 안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책은 각 파트 별로 주제가 다른 듯 하다. 고로 파트별로 느낀 점과 와닿았던 문구들을 적어본다.
1. 화물선 관찰하기
"예를 들어 치약에 첨가하는 폴리올은 치약의 습기를 유지해준다. 구연산은 세제를 안정시키는 데 이용된다.."
: 우리 문명은 갈수록 정교해져서 사람들이 자신이 쓰고 있는 물건 단 한개도 혼자서는 만들수도 없고 그 성분이 무엇인지 원료는 어디서 구해오는지는 더더욱 알 수 없게 되가는 것 같다.... 소외.
"이런 과정을 책임지는 사람들은 타고난 게으름을 억누르고 화학과 물리학의 괴로운 딜레마들을 정복하기 위해 노려가는 엔지니어들이다. 이들은 가연성 용매의 저장이나 펄프의 수증기에 대한 반응을 전공으로 삼고 20년을 보냈을 것이며, 여가 시간에는 원유와 화학물질의 안전한 처리와 운송을 다루는 세계유일의 월간지 <위험한 화물속보>를 넘길 것이다."
: 이게 내가 바로 대학원에서 느낀 점이었다. 그 학계 내에서는 무척이나 핫하고 최근 이슈일지라도 한발짝만 떨어져 나와 본다면 참... 이걸로 20년 바칠만한 의미가 삶에 존재할까 싶은 그런 주제들이다. 하지만 또 세계의 수많은 과학자들이 저 쓸데없어보이는 연구를 지속함으로서 예상할 수 없는 전 사회적인 기술발전이 일어나고 있는 것도 맞다. 결국 과학자들도 이제는 거대한 시스템의 톱니가 되어가고 있는 세상이다.
"산업의 이런 지류를 만들어나가는 데 투자한 사람들의 인내심과 배짱에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투자자라는 사람들은 한 나라의 집배원이나 간호사들이 평생 저축한 돈을 가져다 파나마의 창고나 함부르크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무실에 집어넣는 일이 받아들이기 힘든 것도 아니고, 오만한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자금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10년 이상 박아두기도 한다. ... 투자자들은 자신들의 투자가 결국에는 인내와 활용에 대한 보상으로 부풀어올라 다시 자신들에게로 돌아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이런 식의 지출이 알고보면 신중한 태도로서, 침대 밑에 도을 두는 것 - 결국에는 궁핍과 파산에 이르기 십상이다 - 보다 훨씬 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 투자자들과 일하며 느낀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어떻게 보통은 이렇게 세밀히 파악했나 놀라울 정ㄷ다. 그들은 인내에 대한 보상을 받는 사람들이고 또 인플레이션을 비롯한 돈의 가치 변화에 대해 민감하여 돈을 더 안전하고 유익한 방향으로 - 본인 스스로에게 - 굴릴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간호사들과 집배원들과의 대비되는 이 무시무시함. 이렇듯 세상은 다 비슷하게 살아가는 듯 하지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을 대도 있고 또 다른 측면에서는, '삶'이라는 측면에서는 비슷한걸지도 모르겠다.
"조류학자들 또한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파란색과 잿빛이 섞인 보통 새라고 여기고 곧 고개를 돌려버릴 새를 쌍안경으로 관찰하고, 상아 해안의 늪지대 서식지에서 ... 를 올해 처음 만났다며 기뻐하지 않는가."
: 내가 생태학자가 주는 이점을 보고 생태학을 깊이 파려고 할 때 느꼈던 이질감이 바로 이것이다. 나는 '그들'처럼 기쁘고 즐겁게 생물체를 바라보지 못했다. 못하겠다. 펭귄은 귀엽고 팬더도 귀엽다. 거기까지다. 일반인인 상태로 그들과 함께하다보면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내 자리는 이곳이 아닌 것 같다- 하고.
정작 우리 사회에 대부분을 차지하고 우리 사람들의 삶에 거의 모든 것이나 다름 없는 현대 산업은 일상 생활에서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자는 화물선을 오로지 관찰만을 위해 관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가 깨닫지 못하지만 이 산업체들을 구성하는 것들을 바라볼 때 우리가 관광명소나 자연물을 관찰할 때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아름다움, 배울 점이 있다고 하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투자회사에서 정말 이토록 많은 산업군들이 존재하는 지에 놀랐었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을, 우리가 쓰는 전기부터 시작해서 내가 타이핑하고 있는 이 키보드, 그걸 입력 가능하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오늘 먹은 아침 재료, 식기, 선반, 인쇄물인 책. 이 모든 것이 현대 산업의 결과물이다. 누군가의 노동의 결과임을 우리는 항상 까먹게 되는 것이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렇게 우리를 감싸고 있는 환경을 구성하는 것들이 누구로부터 어떻게 왔는지를 관심 갖는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없다.
산업체와 일찍이 투자에 관심이 있던 대학 동기들을 제외하고는 더더욱 20대 청년들은 관심이 없다. 그들은 비로소 취업된 뒤 자신들이 그 생산자 입장이 되면서 이것들이 누군가의 노동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자각하게 된다.
저자는 그런 노동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철저한 관찰자 입장에서 보는 우리 산업 현장을 보여준다. 그 점이 이 책의 묘미이다.
1장에서 우리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이 얼마나 관심을 받지 못하는지 강조하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2. 물류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은 자신이 먹는 음식이나 소유하고 있는 한정된 수의 물건 하나하나의 정확한 역사와 유래, 나아가서 그 생산에 관여한 사람이나 연장까지 알았을 것이다. .... 그 이 후로 구매 가능한 물품의 범위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과 반비례로 물품의 유래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거의 깜깜할 정도로 줄어들었다. ... 이런 소외 과정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경이, 감사, 죄책감을 경험할 수많은 기회를 박탈당한다."
: 최근에 프랑스의 한 과학자가 사표를 쓰고 난 뒤 시골에 내려가 대장장이가 된 기사를 읽었다. 우리 시대에 사람의 손으로 직접 만든 것들은 거의 보기 드물어졌다. 그래서 마치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나 회귀 운동과 같이 그런 움직임이 가끔 눈에 띄는 것이다.
이러한 반발적인 사례가 기사에 나올만큼 우리는 우리가 쓰는 물건의 생산과 유통에서 완전히 소외되어 있다. 이따금 우리 시대의 문명인이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정말 그저 아기와 같이 무지한 상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나만해도 그래도 시골에 가끔 가서 벼도 보고 밭고랑의 배추도 봐왔지만 갈수록 음식이 공산품화 되어 내 후손들은 치킨이나 소세지를 먹더라도 이게 원래 동물의 신체 일부였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느껴졌다. 그냥 음식은 그 자체로 존재한다고 말이다. 벌써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지만..
소외하면 바로 떠오르는 마르크스의 '노동의 소외'는 이미 일어난 지 한참이다. 거의 모든 노동자들은 - 보통 스스로가 노동자인지 깨닫지도 못하는 경우가 한국에선 태반이지만 - 이미 자신이 하고 있는 일로부터 소외되었다. 그런데 소비자로서의 우리조차 실질적인 생산과정으로부터 소외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모든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다. 거대화, 공장화, 기계화, 자동화가 가져온 편리함의 동전 뒷면은 바로 이러한 과정으로부터 소비자를 격리 시키는 것이다.
저자는 소외된 우리자신을 대신하여 스스로 물류 현장으로 잠입한다. 그리고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보는 물건의 원산지로부터 집까지 오는 과정을 보여준다.
"물류 단지에서 펼쳐지는 일은, 스스로 깨닫지 못한 채 이곳의 혜택을 입고 있는 우리 대부분을 수동적인 역할로 몰아넣는다. 우리가 침대에 무방비 상태로 누워 입을 헤 벌린 채 이따금씩 좌우로 뒤척이는 동안, 어떤 곳에서는 그날 아침의 반 탈지 우유 가운데 대부분의 물량을 실은 트럭 한 부대가 잉글랜드 북부로 갈 준비를 하고 있다."
: 만약 내가 영국 시민이었다면 더욱 재밌게 느껴졌을 것이다. 실제 영국 지명과 위치와 고속도로 명이 나와 있어 이 모든 것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 거리가 아니라 실제 내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임을 실감나게 해줬을테니!
"시간이 핵심이다. 어떤 특정한 순간, 창고 내용물의 반은 72시간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 투자자가 되려면 먼저 그 산업의 핵심을 파악해야 한다. 물류업은 유통망 확보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회전이 잘 되느냐와 상품의 선적 관리도 중요하다. 시간과의 싸움이 가장 핵심인 것은 주로 농산품으로, 그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 머리 위를 수많은 화물비행기가 날아다니는 것이다.
"그러나 와인이 바다처럼 넘실거리고 빵이 알프스처럼 잔뜩 쌓인 우리의 풍요로운 세계는 기근에 시달리던 중세의 조상들이 꿈꾸던 생기발랄한 곳과는 다르다. 우리 시대의 가장 뛰어난 정신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진부하기 짝이 없는 기능들을 단순화하거나 가속화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보낸다.
엔지니어들은 스캐닝 기계의 속도에 관한 논문을 쓰고, 컨설턴트들은 선반에 물건을 쌓는 직원이나 지게차 운전자의 동선을 약간이라도 줄이는 방법 연구에 경력을 바친다.
... 겉으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법을 잘 지키고 고분고분하게 살지만, 밑에서는 소리 없이 분노가 쌓여가고 있는 것이다."
: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 풍요로운 세상은 설명만 들으면 조상들이 꿈꾸는 천국이나 태평성대와 다름 없다.. 하지만 우리의 삶도 그러한가? 빠른 수송과 뛰어난 기술을 가진 우리는 더 빠른 수송과 더 뛰어난 기술을 위해 인생을 투자한다.
내가 GMO관련 연구를 하려다 아예 시작도 말은 것은, 식량 증대를 모토로 수행되는 연구에 회의감을 느껴서이다. 솔직히 말해서 현 시대에 식량이 부족한 것은 벼 1개당 생산량이 적어서 인가? 토지가 모잘라서 인가? 아니다. 분배와 가진 것 없는 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이 더 가지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가 가난한 이유는 쌀 한톨에 함량된 탄수화물양이 증가한다고 절대 해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성인병에 시달리는 선진국 국민들에게 또다른 골칫거릴 안겨줄 뿐이다.
하지만 지금도 각국의 수많은 과학자들은 그런 문제에 일평생을 투자하고 있다. 더 나은 생산량, 더 좋은 기계설비, 더 똑똑한 인공두뇌!
이 모든 것이 삶의 질 향상에 필수불가결한 것일까? 우리는 왜 그런 것들을 만들려 평생을 바치는 것일까.
그 안에서 발생하는 것은 행복과 평화 인가?
"그러나 무엇보다 내 흥미를 자극하는 것은 이런 성취에 대하여 거의 음모를 꾸민 듯 모두가 침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 실제로 상자에 담긴 물품의 잊힌 오디세이를 관찰하고, 창고의 은밀한 삶을 목격하다 보면, 우리가 일상생활의 흐름 속에서 아무런 생각 없이 소비하는 물건들과 그 미지의 기원이나 창조자 사이가 어긋나고 있다는 느낌, 사람을 무감각하게 만드는 그 독특하게 현대적인 느낌을 어느 정도 덜어낼 수 있다."
: 나도 격하게 동의한다. 그의 참치 여정을 읽으면서 내 방을 구성하는 모든 물건들의 원류를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를 만들고 싶어졌다.
투자자로서 회사들을 방문하면 얻게되는 강점이 내가 하는 질문에 거의 대부분 답을 해준다는 것이다. 물론 기밀같은 것은 들을 수 없겠지만, 그 산업 경쟁구도, 생산 과정, 원재료 조달, 물품 유통 및 거래 방식. 이렇게 하나의 산업을 이해하는 것은 무척이나 흥미롭다. 한 산업의 흥망성쇠를 보자면 옛 시대의 왕조의 역사를 보는 느낌이랄까.
내가 일하면서 든 의문점은 왜 내가 이 전에는 이런 것들을 알지도 못하고 알수도 없었을까 하는 점인데, 산업체들은 생존과 수익을 위한 단체이니 만큼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그들은 폐쇄적이고 의심이 많다. 산업스파이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일반인에게 이런 정보들을 투명하게 전부 공개하는 것은 사업적으로 좋지 못한 선택이 될 것이다. 물론 공정무역을 외치는 일부 업체들에게서는 이런 것을 마케팅 전략으로 내세울 수는 있겠다.
이전에 읽은 코너 우드먼의 '나는 세계일주로 자본주의를 만났다'에서 몇 산업체들은 오히려 이런 것들이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피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를 들면 우리가 쓰는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의 IT제품들. 이들의 반도체는 주로 대만과 중국의 공장에서 나오는데, 중국의 반도체 공장을 방문한 우드먼은 그곳에서 어린 노동자들이 겪는 노예같은 삶을 보여준다. 어느 IT 회사가 그런 것들을 드러내고 보여주겠는가. 오직 하얗고 깨끗하고 뛰어난 제품 이미지만이 마케팅의 전략 아래 소비자에게 다가온다.
이에 관한 저자의 한 마디 "아마 1780년대에 노예무역에 관해 질문을 하고 다녔다면 바로 이런 의심을 받지 않았을까."
"어선은 서른세 살에 다섯 자녀의 아버지인 이브라힘 라시드 선장이 지휘했다. 그 자녀들이 생존하려면 라시드 선장은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성숙한 참치를 적어도 열다섯 마리는 추적하여 곤봉으로 때려잡아야 했다."
"참치 떼는 시속 50km로 인도네시아 해안으로부터 소말리아로 가는 길이었다. 이 저주받은 생물은 부레가 없기 때문에 가차 없이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그는 곤봉으로 참치를 세게 내리쳤다. 참치의 두 눈이 눈구멍에서 쑥 빠져나갔다. 꼬리가 경련을 일으켰다. 입이 열렸다 닫혔다. 우리 입도 열렸다 닫혔다. ... 그가 여드레 만에 처음 잡은 참치였다. 집에서는 아이 여섯 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게 바로 실제다. 우리가 맛있게 먹는 참치 통조림의 살코기들은 결국 살아 숨쉬고 지느러미를 접었다 폈다 하던 물고기의 살덩어리다. 우리의 통조림이 있기 까지는 죽음이 수반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우리는 먹을 때 거의 대부분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이미 그것은 생물체로부터 동떨어진 형상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잔인성에 대해 놀라움과 싫은 감정을 표할 수 있겠지만 저자는 동시에 어부의 가족 얘길하며 이 전체적인 과정이 도덕적인 것으로 판단될 것이 아님을, 우리 삶의 - 아주 원시 시대로부터 계속 이어져오는 - 먹고 먹히는 과정을 보여준다.
"화물 상자 하나는 비즈니스 클래스의 3열과 9열 밑에 고정되어 있었다. 또 한 상자는 이코노미 클래스의 43열과 48열 밑에 고정되어 있었다."
: 또 얼마나 우리가 모르는 우리 곁의 세계들이 존재 할까...?
"참치는 이 창고를 통해 슈퍼마켓으로 들어간다. 인도양의 빛 없는 소금물에서 처음 들어올려지고 나서 52시간 뒤의 일이었다."
: 지구가 하나의 마을임이 이미 현실이다. 우리가 마트에서 발견하는 것들은 대부분 세계 다른 쪽에서 어제를 보냈을 확률이 높은 것이다.
2장에서 실제 우리 주변 환경을 가능케하는 사람들의 '일'을 보여준다. 그렇게 해서 우리가 당연시 여기는 것들이 누군가의 '일'의 결과임을 알려준다.
3. 비스킷 공장
2장에서 소비자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생산-조달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는지, 실제 그 과정은 어떠한지 보여줬다면,
3장에서는 한 특정 브랜드의 한 특정 비스킷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 아이디어의 출발점인 담당자로부터 출발한다. 어떻게 상품이 만들어지는지를 통해 생산자로서의 우리가 어떻게 기능하고 있는지,
과자의 컨셉 - 심리학적 측면에서, 컨셉에 맞는 디자인과 재료 & 이름 선정, 포장 디자인,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선택 된 최종 제품이 판매되기 까지 수 천명의 직원들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일부러 비스킷 공장을 선택한 이유는 자명하다, 아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고, 간단한, 누구나 할 수 있는 과자 만들기가 공장에서는 어떻게 변모되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대산업의 작업 세분화, 분업화가 강조된다. 그래서 '겨우' 과자를 굽는 일인데도 롤 포장 메커니즘 개선 기술자와 창고보관 공급망 관리 전문가가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도 서로의 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당연함을 이해시킨다.
대학원에서도 같은 단과대 안인데도 교수님들간에, 하다못해 박사들 가운데에서도 서로의 연구가 너무 상이해서 아예 그에 대한 얘기가 되지 않는 경우를 수두룩하게 봤다.
점점 사회가 거대해지면서 점차 내가 무슨일을 하는지 그 일의 의미를 온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이 되가고있다. 예전의 직업이 몇개 없던 세상에선 얼마나 이해가 쉬웠던가.
여전히 어린이들이 접하는 직업은 직관적 이해가 쉬운 소방관, 간호사, 가수, 과학자 등에 머물고 있다. 그 아이들은 나중에 본인이 커서 시스템 관리자, UI/UX 디자이너, 인사관리 직원이 될 줄은 꿈에도 모를 것이다.
"그러나 오후 한나절에 할 수 있는 일(비스킷 굽기)의 요소들을 분리하여 40여년 동안 할 수 있는 다양한 직업으로 세분화하는 것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익을 주는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생기지는 않는지 궁금해진다."
"일이 의미 있게 느껴지는 건 언제일까? 우리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들의 기쁨을 자아내거나 고통을 줄여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이기적으로 타고났다고 생각하도록 종종 배워왔지만, 일에서 의미를 찾는 방향으로 행동하려는 갈망은 지위나 돈에 대한 욕심만큼이나 완강하게 우리의 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 진짜 문제는 비스킷을 굽는 것이 의미 있느냐가 아니라, 그 일이 5천 명의 삶과 6개 제조 현장으로 계속 확장되고 분화된 뒤에도 여전히 의미 있게 여겨지느냐 하는 것이다."
"아이들 책에는 보통 가게주인, 건설 노동자, 요리사, 농부가 등장한다. 인류의 생활을 눈에 쯰게 개선하는 일과 쉽게 연결될 수 있는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공감, 애정, '내 시간'에의 갈망을 해결해주겠다는 모토로 만들어진 '모먼트'라는 비스킷이 오히려 생산자들의 삶에서 바로 그런 문제를 만드는 것이 아닐까? 하는 저자의 질문은 그가 왜 이 비스킷 공장으로 왔는지에 대해 한번 더 감탄하게 만든다.
"나는 르네에게 내 의문을 제기했다. 왜 우리 사회에서는 가장 의미 없는 것들을 판매할 때 가장 큰 돈이 생기는 일이 종종 벌어지는 것일까?
... 우리의 로봇이나 엔진은 그것들이 줄 수 있는 혜택 가운데 가장 큰 것을 우리 욕구의 피라미드 가운데 가장 낮은 것에만 가져다준다는 이야기, 우리는 과자를 바르게 만드는 데는 분명히 전문가이지만 아직도 감정적 안정이나 결혼의 조화를 이루어줄 믿음직한 수단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 사실 사람에게 행복이라는 문제는 의식주도 중요하지만 자아 존중, 구성원의 인정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로부터의 사랑, 자아실현 및 스스로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식주와는 좀 별개의 행복을 충족시키는 단계이며 오히려 의식주보다 더 어렵고 채우기 힘든 경우가 많다. 그런데 저자의 말대로 이것에 대한 치열한 성취를 진행되고 있는 것인가? 과거의 사람들보다 우리는 더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았고 또 행복한가?
어떤 면에서는 나는 우리 시대가 더 이런 분야에서도 발전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인구들은 이 문제를 볼 여유가 없다. 왜냐면 우리는 비스킷을 수억개 만들어야하는 의무가 우선이니까.
"공장은 물론 경제적 존재지만 동시에 건축학, 심리학, 민족지학의 산물이기도 했다. 하지만 블랙스톤 그룹의 소유자들이 벨기에 동부에서 넓은 땅과 200명의 삶에서 가장 큰 부분을 소유하는 것의 완전한 의미를 알고 있을까?... 나아가서, 퇴직을 눈앞에 둘 때쯤 자신들의 투자에서 경제적 측면과 관계없이 어떤 각별한 기쁨이나 책임감을 느낄까?"
"그러나 세이버리 비스킷의 브랜딩 책임자를 조롱하기 전에, ... 비스킷 영업의 핵심에는 의미가 있다고 받아들여줄 만한 명령, 긴급한 동시에 단순한 명령이 자리 잡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현명할 것 같다. 그것은 생존이다. 노동자들은 살아남으려고 노력하라는 오래된 임무에 전념하고 있다."
: 그런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공장 톱니바퀴가 되어버린 3개월동안 1+1 상품 행사나 스티커 한정판을 구상하는 사람들에게 꿈도 없냐는 조롱을 하기 전에 '생존'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라고 한다.
우리는 먹고 살기 위해서 기꺼이 톱니바퀴가 된다.
"이 모든 제품의 제조와 홍보는 게임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력으로서, 한때 원시 공동체 전체의 운명이 걸려 있었던 수퇘지 사냥만큰이나 심각한 것이었고, 따라서 그만큼 존중해주고 위엄을 부여해줄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독특한 문명인가. 엄청나게 부유하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작고 또 아주 작은 의미밖에 없는 것들을 팔아 부를 늘리는 문명, 돈을 쓸 만한 가치 있는 목적과 돈을 버는 메커니즘 - 종종 도덕적으로 경멸스럽고 또 파괴적인 메커니즘 - 사이에서 갈등을 일으켜 분별력 있게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문명.
... 반면, 자기중심적이고 유치한 나라들은 도넛과 6천 가지 종류의 아이스크림 덕분에 산과 병동과 두개골 스캐닝 기계에 투자할 자원을 갖추고 있다. ... 상업적인 사회는 종종 비도덕적인 정책을 펼치고, 이상을 무시하고, 이기적인 자유주의에 빠져들지만, 그럼에도 물건이 많은 상점과 돈이 그득한 금고를 갖추어 신전이나 고아원을 건설할 자금을 댈 수 있다."
3장의 주제는 명확하다. 부품화 된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마르크스 말대로 소외되었지만, 이러한 자질구레한 상품을 판매하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얻게된 부, 그 부를 활용해 얻은 우리의 복지는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결국 인간의 1차적 욕구를 해결하는 가장 단순하고 유치한 과정을 통해 그 생산자인 인간은 선사시대 때부터 지속해오던 '생존'게임을 해결하는 것이고, 그 사회적인 결과물로 얻는 것이 전체 사회 구성원이 좀 더 살기 좋은 사회라는 것이다.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이러한 노동 현장의 소외를 완전히 바꾸는 것은 이제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진다.
사람은 그렇다면 어디서 자신의 삶의 가치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 그래서 다들 여가 생활에서 창조적인 활동에 목말라 하는 것일까.
또한 이러한 자발적 부품화의 약속은 전체적인 사회의 복지 증감인데 후진국일수록 윗선에서 그것을 가져다 먹어버리는 것이 결국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의 의미를 빼앗아 버리는게 아닌가 싶다. 무척이나 끔찍한 일이다. 수천만명의 삶의 의미를 빼앗아 버리는 것은. 우리나라도 그런 것이 아닐까.
작가의 마지막 말에 모든 것이 담겨있다.
"...나는 우리 노동의 진부함을 생각하며 희미한 절망감을 느끼다가도, 거기에서 나오는 물질적 풍요를 존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겉으로는 유치한 게임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이 우리의 생존 자체를 위한 투쟁과 절대 거리가 멀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3장에서 '일'은 인간으로부터 생산품에 대한 소외를 주는 고도로 분업화된 것, 그 동전의 한쪽면은 풍요를 다른 면은 노동에서의 인간 소외를 보여준다.
4. 직업 상담
알랭 드 보통의 다른 책 <불안>에서도 나왔지만, '일이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믿음'은 보편화된지 얼마 되지 않았다.
우리를 끊임없는 불행 속에 빠뜨리는 이 믿음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스스로를 행복하지 않다고 느끼는지.
그래서 나온 직업이 '직업 상담사'이며, 저자는 그를 방문하고 그에 대해 묘사한다.
처음의 묘사가 참 사람좋고 진심어리고, 따뜻한 이미지라 직업 상담에 대한 믿음과 희망을 가질 뻔 했다.
그러나 의도된 연출같이 마지막에는 그러한 직업상담사들이 받는 보수가 적은 까닭을 알 수 있었다고 맺는다.
그래도 상담을 통해 한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조언을 해주는 것이 직업으로 자리 잡았다는 것은 내 생각엔 멋진 일이다. 그렇게 내면을 들어다 볼 여유가 우리 사회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인간이 보다 정신적 차원에서 만족을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니체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우리 각자가 진정한 나 자신이 되도록 돕는 일이었다."
'나는 할 수 있다!' 시크릿 식의 교육이 저자를 불편하게 만드는 데, 그 이유를 사회가 과거와 달리 '자신의 의지'로 성공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이 실제로 개개인에게 향하기 때문인 것 같이 쓰여져 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적어도 나는 그래서 그런 시크릿 류 자기계발서가 역겹다.
알랭 드 보통 본인의 적성검사가 '중간급 행정 및 영업직에 적합하다'로 나왔을 때, 난 코웃음을 쳤다.
그럼 그렇지, 엉터리 적성검사 같으니라고. 그런데 저자는 바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참 부드럽게 말한 달까...
"솔직히 미래에 대한 의심을 진정시키고 싶은 마음에 이 보고서의 결론을 그대로 따르고 싶은 욕망이 생기기도 했다. 동시에 이 보고서는 나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지는 못했으며, 사실 가만히 생각해볼수록 직업 카운슬링 전체의 한계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존경받는 직업 가운데 하나여야 할 일이 여행사 정도의 지위라도 얻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으니.
그러나 어쩌면 이 일이 이렇게 무시당하는 상황은 상담사들이 결국은 인간 본성을 거의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적절하게 반영한 것일 뿐인지도 몰랐다."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짓는다. 사람의 인생에 있어 정말 중요한 일임은 모두가 알고 있지만, 정작 상담사들이 전지전능하게 답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 그래서 그들의 위치는 지금 그자리라는 것을.
"모두가 일과 사랑에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너그러운 부르주아적 자신감 안에 은밀하게 똬리를 틀고 있는 배려 없는 잔혹성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그 두가지에서 절대 충족감을 얻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충족감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는 뜻일 뿐이다. 예외가 규칙으로 잘못 표현될 때, 우리의 개인적 불행은 삶에 불가피한 측면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저주처럼 우리를 짓누르게 된다.
... 우리가 경솔하게 결혼을 하고, 야망을 실현하지 못한 것에 대해 집단적인 위로를 받을 가능성을 부인해버린다. 그 결과 우리는 어떻게 해도 진정한 나 자신이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나 혼자만 박해와 수모를 당한다는 느낌에 사로잡힐 수 밖에 없다."
그렇다. 그의 <불안>에서도 나오고 내가 크게 공감한 것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계란 넌 안돼- 하는 성공과 성장의 제한점이 아니라, 실제로 사람마다 상황과 타고난 것이 다를 수 있는데 마치 성공한 자들이 성공하지 못한 대다수에게 '노력'이 부족해서다, '너 탓이다' 하는 식의 말을 하는 것은 정말 부조리하다고 생각한다. 신의 시대에서는 '그건 네 탓이 아니란다' 하고 체념이라도 했다면 이 시대에서는 '그것도 못이겨내면 너는 루저다'하는 개개인에 덮어씌워지는 형벌이 주어진다.
4장은 '천직'의 대두와 그로 인해 오는 불안감, 결국 그런 것을 찾지 못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을 그려낸다.
5. 로켓 과학
독후감이 점차 길어지고 있다. 이러다가 책을 베껴올렸다고 저작권 시비에 걸릴까 두렵다.
그러므로 5장부터는 좀더 간략하게 정리할테다.
이 장에선 두가지가 강하게 기억이 남는다. 하나는 원시부족의 후손들의 낙후된 상황과 그 옆에 자리잡은 선진국의 말쑥한 로켓기지. 또 하나는 전세계 각지에 - 특히 제3세계에 - 흩어져있는 위성기지국의 존재이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기아나 란 작은 나라에 로켓 엔지니어들이 온다는 건 참 기이하다. 게다가 거기서 발사한 위성은 일본의 와우와우TV, 이 책이 나올 당시에는 처음 만들어진 방송국이겠지만 이제는 원래 존재했던 것 처럼 존재하고 있을 터이다.
전 장에서 인간 내면에 관한 단어와 영국 가정집을 묘사하는 단어가 주를 이뤄 전체적 분위기가 따뜻하고 몰랑몰랑 했더라면 여기서는 이공계인 나도 직관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온갖 과학용어들이 난무한다.
"헤어네트를 쓴 여러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현재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에고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
갈수록 이는 심해지고 있다. 저자는 과학자도 아니면서 이를 어떻게 정확히 통찰해냈는지, 참 감탄이 절로 나온다.
모든 학계에서 협업이 일반화 되고 논문은 공동저자수가 늘어나는 추세이다. 네이쳐나 사이언스 지에 가려면 정말 여러 학교나 조직이 오랜 기간을 들여 한 가지의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
나는 명예적인 측면에 욕심이 많아서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고프다는 막연한 무의식에 진로를 결정했는데, 어느 날 도저히 견딜 수 없어 뛰쳐나온 뒤 깨달은 것은 내가 좋아하는 과학자들은 다들 대중서를 잘 써서 유명해진 사람들일 뿐이었다는 것이다. 진짜 과학자가 되려면 저렇게 큰 프로젝트의 일부가 되어도 관계없이 과학하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새로운 지식 창출에 기쁨을 느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버티지 못한 것일 거다.
이 장에서 나오는 인디언들의 우주관은 너무도 동화적이어서 아름답다. 그러나 바로 대비되는 과학자들의 사고체계를 보면 역시 내가 대학생때 내린 결론에 도달한다.
더 배운다고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디언의 동화적인 사고에서 더 행복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배우고 똑똑해져야 한다. 왜냐면 똑똑하고 자연과 환경과 사회를 주무를 줄 알게된 사람들이 우리를 공격하면 스스로의 삶을 지켜낼 줄 알아야하기 때문이다. 내 삶을 지키려면, '생존'하려면 결국 강해지는 수 밖에 없다. 인간에게 강함은 머리에서 나온다.
"이것은 보는 사람의 경향에 따라서 영, 야훼, 거룩한 삼위일체, 마와리의 화신, 와이와이 우주의 전능한 창조자이기도 했다. ... 그러나 현대의 신의 모습은 가장 세속적이고 이교도적인 기계들이 만들어내고 있었다. 과학은 우리에게 신들을 깔보라고 가르친 것이다."
로켓 발사의 장엄한 광경을 묘사한 뒤 느끼는 허무함과 경외감이 이렇게 나타났다. 현대는 어찌보면 동화가 사라진 곳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재고, 측량하고, 설계한다. 그 결과물이 이 시대의 가장 경이롭고 위대한 것들이다.
"이제 로켓의 지휘권은 쿠루의 엔지니어들로부터 지구를 둥그렇게 둘러싸고 있는 위성 추적 기지국들로 넘어갔다. 그러나 막상 이 기지국이 있는 나라의 주민은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다. 첫 번째 기지국은 대서양 한가운데, 어센션 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곳의 작은 건물에는 한 달 전 배를 타고 프랑스에서 온 기술자가 한 사람 있었다. ... 그 뒤에는 통제권이 가봉의 리브르빌 북부에 있는 외로운 추적 설비로 넘어갔다. 그 다음에는 케냐의 말린디에 있는 기지국으로 통제권을 넘겼다. 이 사슬의 맨 마지막은 오스트레일리아 사막 서부에 있는 등대였다."
우리 일반인들은 모르는 지구의 모습이 얼마나 많을까. 엄청나게 많겠지만 나는 그것이 인간의 힘에 의한 것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구 곳곳에 심겨진 선진국들의 위성기지국들 이름을 보고 경악했다. 국가단위의 강함은 이 정도구나. 케냐와 가봉의 주민들은 TV 조차 보지 못하는데 위성기지국 옆에 사는 것이다.
그 곳에 지어주는 대신에 그 나라 정부는 무엇을 받았을까? 그것을 자국 국민들이 TV를 볼 수 있도록 할 수는 없었을까.
확실히 인간 전체 집단의 기술은 경이로울 정도이다. 인간은 이제 스스로의 결과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우주의 작동 방식을 터득한 이 새로운 주술사들에게로 나의 충성심이 이동하는 것을 느꼈다.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생물들인가! 이들은 얼마나 놀라운 지평을 열어젖혔는가!
...
자연은 19세기에 걸쳐 숭고한 느낌을 자아내는 주된 촉매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기술적 숭고함의 시대로 깊이 들어왔다. 숲이나 빙산이 아니라 슈퍼컴퓨터, 로켓, 입자 가속기가 가장 강렬한 경외감을 자아내는 시대인 것이다. 우리는 이제 거의 우리자신에게만 노라고 있다."
"반면 자연은 피를 흘리고 죽어가면서 우리 문 앞에 당도한 예전의 원수처럼 우려와 동정의 대상이 되었다.
... 회로판에는 존중심을 느끼고 빙하에는 동정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렇다. 보존 생물학을 배울 때 교수님이 말하신 게 아직도 기억난다.
테디베어라는 것은 현대에만 가능한 것이었다고. 과거 조상들에게 곰이란 지극히 두려운 존재로 '귀여움'과 동치될 수 없는 존재였다. 북극곰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포식자이다. 범고래는 또 어떤가!
그들은 이제 우리에게 불쌍한 존재, 돌봐줘야하는 존재, 귀여운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이제 자연을 가지고 노는 존재가 되었다. 여전히 우리가 모르는 부분이 많지만, 그것은 시간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똑똑하고, 정확하고, 맹목적이고, 도덕적으로 혼란을 일으키는 동료 인간들 외에는 달리 딱히 숭배할 대상이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선망, 불안, 오만의 느낌들과 씨름을 하게 되었다."
5장은 현대 과학 발전에서 오는 인간 '일'의 경이로움. 그리고 그 사이에 '믿을 것'의 부재에 관한 것이라 생각한다.
6. 그림
과학자들 다음에는 화가라니. 극도로 대비되는 존재를 통해 직업의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것만 같다.
나는 저자의 사랑에 관한 에세이에서 나온 섬세한 묘사에 반했었기 때문에 이번 장은 참 읽기 좋았다. 화가의 일상과 화가가 그리는 자연물들. 그런 것들이 어떻게 이런 언어로 묘사할 수 있었을까 - 감탄사가 절로 나오도록 아름다운 장이었다.
방금 전까지 자연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렸던 인간은, 이번 장에서 자연물 하나하나를 존중하고 경대하는 존재로 비춰진다.
"그 제멋대로 뻗은 가지들, 수천 개의 빳빳하고 작은 잎들, 인간 드라마와 아무런 직접적 관련을 맺지 않은 그 놀라운 상태."
"그림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이냐고 묻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인다.
그의 그림은 우리가 이미 본 것을 눈여겨보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 다만 우리가... 자연의 의미를 생각해보도록 자극한다."
"그러나 이따금씩, 깊은 밤에, 다른 가족이 잠들었을 때, 수전은 그림 앞에서 몇 분 더 미적거리며 자신이 그 인격과 미묘하게 일치를 이룬다는 느낌을 받는다. 더불어 그녀 자신의 역사와 인간성이 다시 확대되어 그녀 안에서 제자리를 찾는 느낌도 받는다."
"평소의 우리 모습보다 더 우아하고 지적인 대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기꺼이 희생하는 인간 본성의 비실용적 측면을 보는 듯하다."
크게 더 덧붙이고 싶지 않다. 예술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주관적인 생각일 따름이고. 나는 거기에 동의할 뿐이다. 저자가 너무 편협된 사고로 책의 흐름을 이끈다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나와 어느정도 일치하여 읽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그것은 최근에 불었던 성인들의 그림 색칠하기 교본 열풍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일테다. 우리가 일로서 자아를 찾을 수 없는 운명이라면, 우리의 운명은 비생산적인 곳에 안식과 위안을 준비해두었을 것이다.
이따금 그 선물 조차 볼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만이 받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특히 돈만 아는 사람들에게서.
6장에서는 물질 외 가치를 위한 '일'과 그를 통해서 얻는 인간의 '안식', 그 일들의 '가치'를 보여준다.
7. 송전 공학
달리 할 말이 없다. 이 장에서는 발전소부터 런던까지 이어지는 송전탑을 따라 걷는 여정이 나온다.
2장과 비슷했다. 우리가 살면서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해서 나한테 오는가.
그런데 2장은 그 여정에 초점을 맞추고 그 사이에 숨겨진 사람들의 '일'을 보여주었다면
7장은 송전탑 매니아와 함께 걸음으로써 현대 산업 구조물의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를 준다. 즉, 우리가 받아들이기 싫어하고 흉물스러워하는 산업물들 - 송전탑, 발전소 등등 - 이 아름다움을 지닐 수도 있지 않냐는 시각이다. 그들은 이제 우리 사회의 일부이고 그렇다면 그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 안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도 있지 않는가.
"소비자들이 전류에 관하여 어떤 생각도 할 필요가 없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누구도 잿빛 강철 철탑이 풍경을 가로질러 저 머나먼 남서부 해안으로부터 달려온다는 사실을 생각할 필요가 없게 해주는 것이다. 그 남서부 해안의 조약돌 해변에서는 지금도 바위 덩어리처럼 보이는 발전소가 해협에서 밀려오는 수많은 파도와 바위를 깎아내는 힘을 지닌 바람에 맞서며 쉬지 않고 음산하게 윙윙 소리를 내고 있을 것이다."
7장에서는 우리의 '일'의 결과물 안에서 용도 이외의 가치를 찾아본다.
8. 회계
회계사들의 힘든 삶과 그들의 직업이 향후 로봇에게 대체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회계사들은 돈을 정말 많이 벌고 있다. 그들은 사실 현대 문명에서 숫자정리만으로도 '돈'이라는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이다.
내가 평소에 본직과 비본질적인 직업을 나누는데 회계사는 단연 나한테선 최고의 비본질 직업이다. 물론 그들의 일의 중요성을 격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다만 내게있어 본절적인 일이란 무언가 세상을 더 낫게 만들어 결과가 눈에 보이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본직절인 직업이다. 그리고 특히 그 일의 결과가 사람들의 기본권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회계사는 사실 아예 존재하지 않아도 지구가 돌고 사람이 사는데 크게 지장이 없다. 불편할 뿐.
현대사회는 불편함을 줄이는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내게는 '없어도 사는데 지장이 없는 것'은 다 비본질로 치부된다. 나만의 견해인 것이다. 회계사는 부르주아적 사회에서 인정받는 직업이다. 이번 장을 읽기 전에 이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쳤다.
"아마 기차 사고라도 나야 열차 안에 누가 있었는지, 통로 건너편에 국가 경제의 어떤 작은 부분들이 덤덤하게 앉아 있었는지 비로소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대개 호텔, 정부 부처, 성형외과, 과일 묘목회사, 카드 회사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겠지만."
: 이 부분을 읽고났을 때 일기를 썼다. 사람은 모두 이름을 남기기위해서 혈안이라고. 그렇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알리기 위한 것이 삶의 과정인 것 같다고. 결국 사람들이 날고 기어 봤자 그냥 어느 회사 어느 직함으로 끝나는 존재라면 너무나 허무하다. 최소한 나에게 있어 의미있는 삶이란 자신의 이름으로서 인지되고 사회에서 활동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특히 성공이란 그런 것 같다. 대다수의 많은 시민들은 결국 이름이 사고가 났을 때에나 짧게 등장하고 사라진다.
"역사는 영웅담을 길게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결국 우리 가운데 몇 사람만 먼 바다에 나가고 다수는 항구에서 밧줄을 헤아리고 닻의 꼬인 사슬을 풀지 않는가."
그래서 저자는 회계사들을 찾은 것 같다. 유명한 영웅들의 이야기는 시중에 많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일'의 보편적인 측면이 아니다. 일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오히려 가장 보통의 사람들의 범주에서 찾는 것이 옳다. 그리고 회계사는 그 범주내에서 성공적인 집단이다.
"회계가 세상을 보는 특수한 관점을 제공한다는 점은 분명하다. 회계사는 나에게 책을 어떻게 또는 왜 쓰느냐고 묻지 않고, 어떤 책의 세금을 몇 년에 걸쳐 낼 수도 있느냐, 아니면 출판할 때 전부 내야 하느냐고 묻는다.
... 더 인상적인 것은 그들에게 지속적인 유산으로 남을 만한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욕망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 그들은 낯선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싶은 야망도, 둔감하고 덧없는 미래를 위해 자신의 통찰을 기록해두고 싶은 야망도 없다."
"그러나 일을 하는 사람이 단지 겁에 질리거나 체념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수준의 만족감을 느껴야만 제대로 해낼 수 있는 일들이 등장하면서 고용의 규칙을 새로 써야 했다. .. 구속력 있는 법률 문서를 작성하거나, 힘찬 모습으로 설득력 있게 콘도를 팔아야 하는 사람이 찌무룩하거나 원한에 차서는 혹은 병적이거나 분노에 차서는 많은 이윤을 낼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피고용자의 정신적 복지가 관리자들의 최고의 관심사가 되기 시작했다."
그렇다. 우리나라 고용주들은 아직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 앞으로 한국의 향후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노동자의 정신적 복지가 될 것이다.
"권력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재구성되었을 뿐이다. 사장이 자신의 앞선 위치를 보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평직원의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대기업들이 예전 왕족의 지위를 누리는 현실을 보아라.
"사장은 또 큰 소리로 명령을 내리는 권리도 포기할 수 밖에 없다."
: 이것도 마찬가지.
저자 특유의 어투로 사무실 광경이 묘사된다. 그 속에 느껴지는 사무직원들의 삶.
8장에서는 현대 사회의 가장 보편적인 화이트 칼라 직종의 하루와 사장부터 직원에 이르는 구성원들을 지켜본다.
보통사람들의 '일'이란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큰 의미를 갖지 않고 벽돌쌓기와 같은 바쁨으로 이루어진.
9. 창업자 정신
최근 일어나는 창업 열풍을 보면 코딩이 대두된 뒤로 열린 시대는 가히 창업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을 기대하고 이 장을 흥미롭게 시작했지만, 웬걸, 이것은 그 시대 이전에 쓰여진 책이다.
그 전에도 창업자들이 존재해왔다는 나에겐 놀라운 사실을 알려줄 뿐 아니라 방식이 다름에도 창업자 마인드의 정수를 꿰뚫고 있는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했다.
"그러나 창업자들이 처한 환경은 까다로운 재정적, 법적 현실을 냉정하게 인식하고, 다른 인간들이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것을 요구한다. 상상력과 현실적 태도 사이에서 절묘하게 그 어려운 균형을 잡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균형이 드물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어디선가 용기를 얻어 창업의 길로 나서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이 매우 불길하게 느껴진다."
"옛날 사회는 ... 미래를 한번 걸어보라는 식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가능성을 무작정 강조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평범한 삶은 실패한 삶과 똑같다는 식의 잔인한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여기서 저자는 스스로도 사업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데 '음식자체 보다는 우정이나 대화의 기술에 관한 지침을 주는 데 초점을 맞춘 레스토랑'은 아마 그 후 그가 세우게되는 인생학교의 모토가 된 듯 하다. 이 책을 쓰면서 생각해낸 건지, 원래 그런 생각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창업자들과의 만남이 그 스스로도 뭔가 사업을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을 심어주는데, 키워주는데 긍정적 영향을 미쳤으리라 생각된다.
"비록 벤처 캐피탈의 실용적인 언어로 자신의 노력을 합리화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속 깉은 곳에서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바꾸고자 하는 ...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재정과 산업으로 이루어진 커다란 인공물, 우리가 종종 지구의 자연적인 특징들만큼이나 불가피하다고 가정해버리는 인공물을 먼데서 이루어지는 알 수 없는 과정의 산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대체로 비슷한 사람들, 운명은 자신이 만든다고 믿는 대담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이 노력을 기울인 결과물로 보았다."
"그는 어떻게 일들이 짜맞추어지는지 알았다. 어떻게 슈퍼마켓의 자금을 끌어오고, 어떻게 52층 마천루를 짓는지도 알았다. ... 그는 어떤 풍경을 내다보든 그것을 만든 존재는 신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적어도 이런의미에서는, 진정한 어른이었다."
내가 만난 부자, 돈을 벌줄 아는 사람들, 돈을 이른 나이부터 또래집단보다 스스로 많이 벌어들인 사람들은 모두 이런 사고방식을 가졌었다. 나는 그 대화 속에서 내가 일반적으로 여기던 사고방식을 가지지 않은 이들에게 놀랐었고 내가 왜 부자가 아닌지도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강남 거리를 다니면서 각 빌딩이 얼마고 주인은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창업자들을 잘 꿰뚫어 본 것은 여기에도 나타난다. 내가 만났던 창업자들은 대부분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이 정력적인 사람들이 설정한 목표가 ... 실제로 보통사람들이 어떤 식을 결정을 내리는지 이해를 못하기 때문에 빛이 바랜다는 사실도 놓치지 않았다."
"이런 허점은 ... 고객 부족과 즉각적인 파산이라는 벌을 받게 될 터였다.
반면 보통사람들의 심리를 파악하는 보브 경의 능력에는 흠 잡을 데가 없었다."
그렇다.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람들은 보통사람들이 어떻게 돈을 써대는지 아주 잘 파악한다. 워렌버핏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이러한 현실적 감각과 관료체계의 절차를 꿰뚫고도 살아남으면서 유토피아적인 현실을 꿈꾸는 소수의 창업자들은 영웅이 되는 것이다. 저자 스스로도 창업을 해서 돌아오겠노라고 하지 않는가.
사람이란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이룩해내려는 본성을 가진 것이다.
9장에서 일이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창출해내는 가치로 나타내진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들, 그리고 실패하는 사람들이 놓치는 것들이 소개된다.
10. 항공 산업
사실 마지막 장인데 너무 재미가 없었다.
대체 왜 항공산업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나 싶었다.
근데 마지막에 가서 이해했다.
"나는 갑자기 심오한 개달음을 얻은 듯한 충격을 받았다. 이 에어쇼는 지금 이 순간 전 세계에서 열리고 있는 각 산업 관련 행사 수백 개 가운데 하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떠오른 것이다."
정말 우리는 얼마나 작은지, 이 거대한 사회는 어찌나 크고 넓은지.
앞서 장황했던 에어쇼의 3일간 여정에 압도당한 독자는 이 문장에서 뒤로 쓰러질 것 같다.
그리고 그 모든 박람회 속에 등장하는 우리는 다 같은 인간이다-라는 것을 디스코 춤으로 보여주는 듯 하다.
갑자기 그 다음에 길을 잃은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놀랍게도 항공기의 무덤에 다다른다. 실제로도 우연인진 모르겠지만(...)
그의 다른 책 '불안'에서 나오듯 하나의 문명에 경이를 보내는 순간에는 폐허를 감상하는 시도들이 포함된다. 항공기들의 최후는 현대 사회에서 나오는 폐허들에 적합할 것이다.
"비행기가 얼마나 빨리 나이를 먹는지 정말 놀랍다. 여기 모인 비행기들 가운데 가장 늙은 것이 생산 라인에서 나온 지 50년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도 벌써 그리스 신전보다 훨씬 나이가 들어 보인다."
현시대의 박람회에서 분주햇던 사람들이 만든 것은 겨우 50년 뒤에 매우 진부한 것으로, 역사의 뒤안길에 사라지게되는 것인 매우 빠른 변화 속에 진행되는 현실이다.
"할 일이 있을 때는 죽음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금기라기보다는 그냥 있을 수 없는 일로 여긴다. 일은 그 본성상 그 자신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을 요구하면서 다른 데로는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한다. 일은 우리의 원근감을 파괴해버리는데, 우리는 오히려 바로 그 점 때문에 일에 감사한다."
"우리의 하찮음과 약함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뻔하고, 너무 잘 알려져 있고, 너무 지루해서 되풀이할 필요가 없다. 흥미로운 것은 우리의 과제가 넓게 보면 분명히 말이 안 되는 것임에도, 확고한 결의와 진지함으로 그 과제에 다가간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를 과장하고자 하는 충동은 지적인 오류이기는커녕 사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생명력 자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고 현재르 ㄹ역사의 정점으로 보는 것, 코앞에 닥친 회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묘지의 교훈을 태만히 하는 것, 가끔씩만 책을 읽는 것, ...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결국은 생활의 지혜일지도 모른다. 현자들이 가르친 대로 죽음에 대비하는 것은 죽음을 지나치게 존중하는 것이다.
.... 죽음이 우리르 기습한들 어떠랴. ... 우리의 모든 기획의 궁극적인 운명을 직접 목격한다면, 우리는 바로 몸이 마비되어 버릴 것이다.
... 우리의 가없는 불안을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성취가 가능한 몇 가지 목표로 집중시켜줄 것이다."
10장에서 우리의 일의 궁극적인 결말은 아무것도 없음을 보여준다. 결국 일이나 우리 인생이나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없는 '무'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바로 눈 앞의 즐거움과 괴로움에 집중해 그 사실을, 그 사실이 주는 불안을 잊게 해준다. 그것이 일이 가지는 진짜 의미 아닐까. 10장에서 일의 궁극적 의미를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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