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

투쟁이라는 단어 별로 안 좋아했는데
소수자로서 살아가려니 어쩔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듯.


방금도 한 길가에 횡단보도 한 가운데 떡하니 차를 세우고 누구 보란 듯 창문으로 쓰레기를 탁 버리는 인간이 있었다.

안그래도 트럼프와 단기적 이기주의에 가득찬 인간들을 생각하느라 속이 부글부글한데 눈앞에서 딱 그런 사례를 보니까 열불천불이 났다.

파란불이 딱 켜지자마자 어떻게할까 고민할 시간도 없어서 일단 차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가서 아주 가까이 가서 내가 있는게 보이도록 한 뒤에 쓰레기를 주워 건넜다.

못봤을 수도 있겠다. 두명의 남성들은 아주 시끄럽게 대화중이었으니까. 봤어도 웃긴 일로 생각하고 넘기거나 농담따먹기 대상이 됐을 수도 있다.
안다 나도 그리 멍청이는 아니다.

착한 일 했다고 칭찬 받으려고 그런거도 아니다.
인정받을 필요도 없다.
나는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이다.
이게 내가 세상에 분노하는 방식이다.
나는 너희와 다르고 너희같은 삶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정말 속 시원해지려면 딱 주워서 들고 그 반 좀 못되게 열린 창문에 대고 나지막히
"아저씨 길에 쓰레기 버리는거 아니에요-"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 그럴 용기는 안나나보다. 다음엔 그래야지.



트럼프와 박근혜
그들의 지지자들을 보면 인간이란 것에 회의감만 들고 희망이 전혀 안보이고 갑갑할때가 많다.
가까운 곳에서도 인간이란 존재는 저만 알고 자기외의 사회에는 관심이 없고 타인의 고통에는 철저히 무감각한 양태를 보였으니까. 이참에 그 대 전제를 제대로 체감하는 셈이다.

오늘따라 대학생때 했던 과제가 생각난다. 잊고있었는데 떠올려보니 다른 과제들과 달리 조사했던 기억도 같이 팀플했던 멤버도 또렷이 기억난다. 더 또렷이 기억나는 건 우리 조의 발표 주제와 결론이었다.

우리는 이타주의가 자연계에 존재하는가를 조사했고 결론은 현재까지 없음이었다.
그러나 그 결론은 열린 결론으로 두었다.
아직 없고 앞으로 있을 수 있다고.
우리가 모든 자연의 사례를 보진 못한거라고.
아니면 생물이 진화 중에 있어 아직 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일 수 있다고.

가능성이 있다면 틀린게 아니니까.

내가 보기엔 이타주의가 거대 집단 사회에서는 효율적이다.
자원이 고갈되지 않고 집단이 작아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본다.


이게 왜 떠올랐을까.

정말 되돌이켜보니 나는 다양성과 존중 인권 이타주의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와 같은 주제에 어릴적부터 관심을 가져왔다는 걸 새삼 느꼈다.


현실은 때론 우리를 이토록 좌절하게 만든다.
여성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가 접하는 것들은 성적대상화와 불안 편견 그리고 마녀사냥이다

인종주의는 어떤가
식민주의 이후로 나아지긴 한걸까

국제개발을 위해 일하는 내 선임이었던 분은 어릴적부터 작은 일에 집착하고 서로를 시기 질투하고 싸움을 만드는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본인은 본인이 큰 세상을 본다고 여기는데 내가 봤을땐 그야말로 협소하기 이를데 없는 세상에 살고 계시다.

트럼프 대선의 결과를 미국 전역 지도로 보면 알겠지만 이것이 다수의 생각이다.
나만 잘살면 된다는 이기주의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서 남이 필요할 수 있음은 모르는 단기적 시각
꼬리표 매겨져 정신적 신체적으로 학대 당하는 사람들은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는 무신경함
무지
무관심



뭐가 세계시민의식인가
그건 오히려 첨단의 끝에 태어난 얼마 되지 않고 여물지도 않은 개념이다

이것이 메이저고 다수의 논리다

이것을 이해불가라고 하고 싸잡아서 관심을 끊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실제로 옳고 해도- 일을 행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
바로 오늘날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당신이 관심끊고 불평이 쌓인 다수가 투표로 민주주의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소수의 목소리를 묵살해버린다.


그들을 미개하고 무지하고 저열한 욕망에 갇혀있다고 매도하는걸로 끝내면 안된다.

진짜 자신이 그 욕망을 체험하고 얼마나 그것이 크고 거센지, 고집세고 꺾을 수 없는지까지 경험하고
그 배경은 무엇이고 그들은 무엇에 반응하고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까지 파악한 뒤에 우리의 포지셔닝을 해야한다.


물론 오바마는 그 정도로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했다
결국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말이 맞긴 할테다

그래도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도 모르고 자기 주위의 선량한 목소리만 들으면 상아탑의 골방학자와 무엇이 다를까

그런 이들은 이번 선거로 반성 좀 해야한다



인간은 지속적으로 남 위에 서려하고
욕망을 채우려 하고
타인을 의도적이지 않더라해도 끝없이 고통에 빠뜨린다

문학과 역사를 보면 우리가 수천년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걸 쉽게 알 수 있다


우리가 짐승이라는 것은 우리의 태생이다
절대 바뀌지 않고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그러나 체념해선 안된다


철학자들이 인류가 동물과 다른 이유는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이라는 말을 이 대목쯤에서 하는데 나는 그런거 같진 않고

그보다는

나 자신 나 개인 나라는 한 사람을 똑같은 이기주의 선상에서 볼때

자신의 가치관에 의거해서 타인과 사회에 더 나은 삶을 줄수 있는 신념을 지키고 행동할때
인간 개인은 고통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만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인간은 이기적이란 대 전제를 깔고 시작하는게 더
쉽다

아닌 척 하다가는 터진다 트럼프때처럼

오히려 내면의 이기주의을 인정하고
나 자신이 더 나은 삶의 의미를 지니도록
남을 위하는 것을 도구로 쓰면 사회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본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회에 남에게 피해를 아무렇지 않게 끼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유난히 다양성 이슈가 떠오르고 인터넷의 발달로 약자와 소수의 목소리가 커지는 요즘이다
그와 동시에 고령화와 난민 증가로 이기주의와 혐오가 놀랍도록 퍼지는 시대이다

나는 울화통이 터지거나 절망스러울 때마다 내가 유태인 수용소에 있다고 생각해본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라는 책으로 나는 삶의 전환점을 얻었다
나치의 수용소
태어나는 것 자체로 이미 죄를 저질렀다고 여겨진 이들에게 가스실 외에 무슨 가능성이 있겠는가?
완전한 절망과 지독한 현실
배고픔과 추위는 고통에 들어가지도 않을 만큼 끔찍한 상황
아마도 전세계의 모든 전쟁 피해자들이 겪고 있을 그런 참상

그 속에서 살아남은 저자가 말한다
그 상황에서도 인간은 "선택"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고

친구를 고자질 할지 말지
내 빵을 나눠줄지 말지
기도를 할지 말지
모든걸 포기하고 총살 당할지 말지
끝까지 살아남으려 애쓸지 말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슬퍼할지 고마워할지

일기를 써서 남길지

아첨을 해서 더 나은 죽을 먹을지

동료를 배신할지

대신 죽을지



아마 죽은 사람들은 말이없겠지만

우리는 어차피 다 죽는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이 자신이 바라는 모습으로 살다가 죽는가 하는 것이다

삶은 고통으로 차있고 절망스럽다
바뀌지 않을 것이다
형태가 달라질 뿐 인간은 끝없이 충돌하고 싸울 것이다
그 안에서 다만 우리가 우리 자신의 의미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삶에서 다가오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라는, 되고자하는 스스로의 모습에 가까운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여부이다.

나는 공공장소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사회의 시민이 되길 꿈꾸고 바란다
그리고 내 후손들에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진짜 알려지지 않더라도
내안의 나는 계속 지켜보니까

오늘 나는 쓰레기를 주웠다.


이게 내가 살아가면서 내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내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 투쟁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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