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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 Grand Bleu



그랑블루

누구나 유년의 기억은 더 애틋하고 소중히 기억되는 법이다

젊었던 어머니는 그랑블루 포스터를 내 방에 걸어주셨다. 아직 뛰노느라 바쁜 어린아이일 뿐이라 엄마가 비디오테이프로 몇번이나 보시던걸 같이 본 것은 같으나 기억나는 것은 오직 푸른 바다와 돌고래가 멋지다는 것 뿐이었다.

엄마는 그랑블루를 여전히 좋아하신다.

모처럼 자식들이 그랑블루 리마스터링 소식을 듣고 엄마를 모시고 극장을 찾았다.



저마다 누구나 자신만의 감상평이 있을게다.
엄마도 동생도 그랬다.


나는 나의 느낌이 있었다.
나는 처음 흑백장면에서 바다를 스치는 카메라 앵글과 내 가슴에 방망이질을 하는 ost를 듣고 바로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바다에 가지 못하고 있다-앞으로도 가지 못할 것 같다-저 푸른 맑고 아름다운 바다를-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났다.

참 신기한 것이 사람의 일이다.
이 글을 쓰면서 내가 가장아끼기에 머리맡에 두는 인형이 고래인형임을 자각했다.

어머니가 걸어둔 액자, 어머니가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그랑블루는 원래부터 내게 남다르다.

그러나 다시 본 그랑블루는 더욱 남달랐다ㅡ
약 6개월간 남태평양에서 머물며 외국친구들과 옷을 던지고 바로 바다에 풍덩 뛰어들며 지낸 기억들이 나를 자크의 눈빛에 다 가까이 이끌었다.

그 맑디 맑은 바다
내가 얼마나 물을 좋아했던지 그 지역출신 아이가 '너는 정말 물을 사랑하는 구나' 했을 정도였다ㅡ2시간 바다수영뒤에 지쳐서 쉬겠다는 그 친구에게 혼자 더 해도 되냐고 물은 뒤에.

그렇게 체온이 수온만큼 떨어지고 주위에 인적이 드물때까지 바다에 있다가 문득 움직임을 멈추고 떠서 내해쪽을 바라보면 파도와 끝없이 어두워지는 푸름과 거대한 고요. 그 모든 것이 나를 둘러싸고 내몸을 울렁이게 하는 것을 느끼자마자 공포와 경외가 엄습했더랬다.

얕은 연안에 움푹파인 곳에 들어갔다가 바위만한-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딤채냉장고?-거북 두마리와 맞닥뜨린 적. 그 손 두어뼘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보던 순간.

수영장에 스쿠버 장치를 메고 수면을 바라보면서 공기방울로 장난을 치거나 수면으로 올라갈수록 커지는 그 기포를 조용히 그리고 아늑하게 바라보던 것.

바다 바닥을 오리발로 뒤뚱뒤뚱 걷던 일과 동료들과 유영하며 바다를 누비던 것. 그리고 물 속에서는 정말 3차원적인 움직임이 가능하다는 것(이것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 같다. 누가 다가오는 것이 내 앞 옆 뒤 가 아닌 위 대각선 아래 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낀다면 될까). 좁은 협곡에서 올려다본 은빛산호군락과 빛무리같던 열대어들의 군무. 이따금 고래의 노래를 들을수 있다던 그 바다. 우리의 움직임에 놀란 베개만한 형광청록에메랄드빛 불가사리가 미끄러지듯 다리를 놀리던 것. 곰치들의 얼굴. 아치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온 뒤에 eel과의 놀람에 찬 조우. 내 머리 한참 위를 유유히 지나던 가오리. 청소물고기를 기다리는 커다랗고 형형색색이던 물고기들. 아름다운 뱀장어들과 기괴한 얼굴의 물고기들. 더 먼바다에 이제 위험해서 가까이 가지 못하지만 수백의 물고기들이 여러 종이 섞여 떼를지어 함께 다니는 것. 내가 정말 좋아하던 white spotted toby가 온 몸을 부풀리고 양 지느러미를 왱왱거리던 것.

그런것들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그래서 눈물이 났다.

그때 함께 바다를 사랑하던 두 친구가 마치 자크와 엔조와 너무도 닮아서, 그래서 그리움에 더 그랬던 것이 틀림없다.

첫 수영때 어설픈 시도에 죽을 뻔하여 바다를 미워할 뻔했지만, 그 뒤로 여러번 쉬지않고 바다를 찾았던 것이 나중에는 내 스스로 물갈퀴 없이 맨몸으로 뛰어들게 만들었다.

섬에서 자라서 서핑을 숨쉬기처럼 하는 자크같던 그 친구는 그만큼이나 천진난만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강하고 누구보다 오래 물속에 있었거 그 친구덕에 아름다운 바다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엔조같던 다른 친구는 욕심도 많고 떼쟁이에 철부지지만 누구못지않게 바다를 사랑하고 사랑했다. 함께 잠수했다가 발견한 보석만큼 귀한 고둥 두개를 나를 보여주고 해수면으로 올라와 멋지지않냐며 외치더니 다시 들어가서 찾지를 못하던 그녀석. 돌고래와 반드시 수영하겠다고 물갈퀴를 끼고 고집부리더니 바다로 들어가던 그 친구는 정말 그의 사랑만큼 많은 경험도 했다.

엔조와 자크처럼 우리는 철없이 굴기도 하고 낙천적이고 여유롭게 돌아다니기도 하곤했다.



나는 지금도 수영하면서 산호를 밟지 않았던 것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에 대해 공부하고 알게되면서 바다생물들과 우리가 공존함을 더 새기고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했다.

나를 얼싸안던 야생 바다거북들과 해변에 누워 눈을 껌뻑이다 티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잠에드는 바다표범이 그립다.

특히나 마지막 여행에서 돌고래의 해안에서 직접들었던 그들의 소리와 그들의 움직임이, 이 영화가 나를 추억으로 이끄는게 틀림없다.

바다는 너무도 아름답다.
바다의 아름다움을 아는 사람은 절대 그것을 잊지 못한다.
난 그래서 엔조와 자크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자크의 말대로 아래에 있으면 그곳이 더 좋다.

나는 물론 자크와 엔조에 비할바는 못된다.
나는 회색빛 도시도 어느정도 좋아하고
수영을 못한지 벌써 일년이 되지만 가슴아픈 것외에는 견딜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 속 두 남자의 순수한 마음과
그 너무도 아름다운 푸른 바다와
환상적인 생물인 돌고래의 존재 그 자체가
나를 마치 환각에 빠진마냥
바다에 당장 가야한다고
나도 바다에 들어가야한다고
바다를 원한다고!
외치게 만들고 있다.



그랑블루는 아름다운 영상미와 두 남자의 우정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조안나의 사랑하는 사람을 이해하려는 진정한 사랑. 바다에 사랑하는 사람을 모두 잃고 가족없이, 타인과의 유대감형성이 적은 삶 속에서 큰 자크의 내면적 불안함. 이름 그대로 이 것은 거대한 우울(블루)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게 더 다가오고 내가 생각하는 진짜 그랑블루의 이름이란
자크와 엔조, 그들을 둘러싼 그 모든 상황-사랑, 가족, 경쟁, 우정, 우울, 두려움 등-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들의 바다에 대한 순수한 사랑이다. 바다를 향한 그들의 마음이다.바다는 그 푸르름으로 마치 운명처럼 가혹하면서도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으로 다가온다. 그들은 그것을 받아들임을 넘어서 바다를 온몸으로 좇고 뛰어든다.

마지막에 자크가 줄을 놓을 때 그가 어떤 표정을 짓던가 말이다.

그 바다에 대한 사랑을 전혀 모를때 봤던 영화를,포스터 속의 돌고래가 아닌 야생의 바다 돌고래들을 보고 거친바다를 느끼고 수영하고 또 하고 물에 산 뒤에 보게되니 너무도 다르다.

바다는 정말 아름답다.
둥근 보름달이 떠 빛으로 가득찬 바다로 달려가고싶은 밤이다.
그러한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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