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1# Madrid->Somport <01. 마드리드에서 까미노 준비>

 

 

누군가 내게 그날그날  느끼는 감정을 적어보라고 한 적이 있다.

마드리드에서 기차에 올라탄 순간 내 감정은 바로 '무서움'... 


'아니, 내가 진짜 남의 동네에서 뭐하는 거지??'

 

 

 

 

 

 

 

 Day 1#     Madrid -> Somport

 

 

 

 

  

 

 내가 탄 기차는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선을 낀 피레네 산맥으로 향하고 있었다. 


좁은 열차칸 안 건너편엔 주먹 꽤나 쓸 것같은 옹이진 얼굴의 스페인 노인 둘, 치즈 광고에서 소젖짜며 나올 것 같은 금발의 통통한 여자 하나가 보였다. 감히 일어나서 보진 않았지만 그 칸에는 '일상적'으로 열차를 탄 스페인 사람들 다수, 그리고 그 풍경과 너무도 어색하게 커다란 산악배낭과 검은 머리에, 심지어 그 동네에선 보기 힘든 커다란 안경을 쓴 동양인 여자애가 하나가 있었다. 나는 오랫만에 이방인이 된 느낌에 매우 쫄아 있었다.



 낮은 저음의 스페인어로 중간중간 대화하는 소리가 내 머리 위에 떠돌았다.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뭔가 '올해 경기에서 누가 이긴줄 알아?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러게 내가 뭐랬나? 자네는 내 말은 하나도 안듣지!' 라는 내용이면 적절할 것 같았다.





(난생 처음 도착한 스페인, 처음가보는 마드리드, 하지만 둘러볼 시간도 없었다. 유심칩 기다리면서 있던 광장에서 뭔가 시위하던 스페인 사람들과 개의치 않고 돌아다니는 평화로운 주민들)





이번 일정은 오로지 딱 1주일 동안 아라곤길을 걷는 것이기에 계획한대로 첫날은 마드리드에서 출발지인 Somport로 가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리고 사전조사한대로 마드리드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세 가지!



- 1주일 용 선불 유심칩 구입하기

- 순례자의 증표인 끄레덴시알(Credencial) 구하기

- Somport 까지 해지기 전에 도착하기



였다. 오전이 다 지나서 도착했기 때문에 사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특히 Somport는 듣보잡 깡촌이기 때문에 기차가 하루에 몇대 없었고 불친절한 스페인 기차 티켓팅 홈페이지는 영어가 지원되지 않았다......ㅠㅠ


출발 전 세가지를 오후 내에 다 해결할 수 있게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1) 우선 스페인어가 가능한 학교 친구에게 부탁해서 기차표를 미리 끊어놓았다. 친구 말이 버스보다는 기차를 갈아타는게 가장 빠르며 가격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목적지인 Somport 로 가기 위해서 마드리드(Madrid) -> 사라고사(Zaragoza) ->...........-> Somport 로 여러번 환승이 필요했다


Somport(쏭뽀흐 라고 읽음)는 피레네 산맥에 스페인과 프랑스 접경지역에 위치하는 아주 시골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Somport 


쏭뽀흐를 검색하면 나오는 위키백과에서도(불행히 한국어는 없다...내가 나중에 번역해야겠다) 접경지역으로 나오며 까미노 길에 대한 설명이 주다.. 즉 여기는 마을같은게 아니다. 쏭뽀흐에 딱 도착하면 단 하나뿐인 여관이 나오고 표지판이 여럿인데 하나는 '이 뒤부터 프랑스 입니다' 이다. 군인도 철책도 없고, 나도 '그냥 해볼 수 있으니까' 괜히 그 앞에서 국경을 여러번 걸어서 넘었다들어왔다 했다.




2) 끄레덴시알을 발급해주는 곳은 여러 군데 인데 많은 사람들이 순례길을 시작하는 Camino Frances (프랑스 길)의  Saint-Jean-Pied-de-Port (생장 드 피예드 포트) 에서 주로 많이들 발급 받는다. 또는 스페인에 있는 주요 성당이나 알베르게에서도 발급 받을 수 있다.


나는 메인 루트인 프랑스길이 아닌 스페인 아라곤 지방을 출발하는 까미노 아라고녜스 가 목표였으므로 당연히 생장뭐시기~에서는 받을 수가 없었다. Somport에서 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찾아봐도 잘 안나오기 때문에 우선 마드리드에서 발급 받기로 계획했다.


마드리드에서도 발급 해주는 곳은 다양한데 한국분께서 운영하시는 한인 알베르게에서도 발급이 가능하다 (무려 온라인으로도!)


http://caminocorea.org/?page_id=3124

(-> 여기 가보면 끄레덴시알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읽을 수 있다.)



끄레덴시알이 있어야 순례자를 위한 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서도 묵을 수 있고, 끄레덴시알에 '도장'을 받아야 순례의 증거도 남는다. 그래서 출발 전에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나는 짧은 시간 안에 마드리드 관광도 할 겸 알무데나 대성당에서 발급 받기로 혼자 정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드리드에 사시면서 주말에 짬내서 까미노 순례를 하셨던 한국 분이 알무데나에서 발급을 받은 적이 있다는 글이 나왔다. 나도 그럼 받을 수 있겠지!(하고 단순하게 생각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게다가 알무데나 대성당은 마드리드 왕궁 바로 옆에 위치해서 반나절 밖에 못있는 마드리드지만 중요 관광지는 눈으로 찍을 수 있겠구나 했다! 




3) 1주일용 선불 유심에 대해서는 검색을 하다가 알게되었는데 아주 친절하게 설명된 블로그들이 많다.

아마 내가 그 당시 본 건 이거인듯!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n_r0316&logNo=110169866136


문제는, 이 사람 블로그 만큼 보다폰 직원들은 친절하지가 않았다........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한 뒤 기차 출발 전까지 유심을 발급받고 또 끄레덴시알을 받기까지 몇시간 밖에 없었다. 


재빨리 지하철 티켓을 끊고 먼저 오래 걸릴 수도 있다는 (스페인의 느린 일처리가 여러 블로그에서 언급되었었다) 말에 솔 광장(Puerta del Sol)에 갔다. 



광장은 넓었고 사람들이 많았는데 여느 서유럽의 광장들과 별 다를 것 없어보였다.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광장들이 떠올랐다. 여기가 좀 더 넓찍했지만.


맨 위의 사진이 솔 광장, 보다폰 매장은 금방 발견, 바로 들어가서 블로그 말대로 순번표를 뽑았다. 걱정한 것과는 달리 직원 중에 영어가 가능한 분이 있었고 나는 위층에 올라가서 기다리게 되었다. 사람이 엄청 많은 건 아니었지만 모든 창구에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긴했다. 나는 일단 느긋하게 기다리다 정 안되면 나가야지 하고 아예 작정했다. 


창밖에는 광장이 보였는데 사람들이 그냥 많은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시위 중이었다.

무슨 꽃 같은걸 머리에 쓰고 동그랗게 강강술래 같은 걸 하길래 이벤트인줄 알았지. 



그렇게 시간이 계속 지나고 

또 지나고


지나고 또 지나고 나는 이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왜냐면 원래 그 다음 목적지인 알무데나 성당은 꽤나 가까워서 구경할 겸 걸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아마 뛰어가야할듯....!




결국 보다폰을 포기하고 (느린 일처리에 한국을 그리워하며) 알무데나로 이동했다. 




알무데나로 이동하는 길을 아름다웠으나

나는 파워워킹으로 빠르게 통과


다행히 목적했던 Opera 역이 보였다. 


거기서 왕궁으로 꺾어들어가니 길게 늘어선 관광객 줄이 보였다. 



왕궁은 진짜 '아 저게 왕궁이군' 하고 빠른걸음으로 지나친 다음에

(마음이 급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ㅠㅠ 내 계획은 보다폰매장직원님들이 사뿐히 즈려밟아주심)


알무데나 성당에 다다랐는데.......문제는 입구에 들어가니 그냥 성당이다.

뭔가 여기로 들어가는거 같지 않은데 ㅠㅠㅠㅠㅠ 거기서 한참 뺑뺑 돌다가

뒷길을 발견해서 가보니 인포메이션 같은거가 나왔다. 


나는 스페인어고자일 뿐이고

끄레덴시알이 맞는 발음인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외쳐!


몇몇 영어하는 직원이 이 쪽이 아니고 다른 쪽이라고 알려줘서 고맙다고 하고 나왔지만

여전히 어딘지 감이 안왔다. 그냥 이건 관광명소인거같은데 ㅠㅠ


물어물어 뭔가 사무소 같은 방들이 이어진 곳에 들어왔다.

그 안에서도 한참 헤매고 있는데 어떤 자유로운 복장의 (마치 개량한복같은....) 한 아주머니가 자기도 방금 안에서 끄레덴시알을 받고 나오는 참이라고 웃으며 어딘지 가르쳐 주셨다! 할렐루야!




신부님 방에 노크를 하고 들어가니 약간은 엄격하면서도 인자한 인상의 신부님이 계셨다.

물론 말은 안통해서 끄레덴시알 끄레덴시알 하니까 끄덕이시면서 많이 해보신듯 뭔가를 적으신다.


말이 안통해서 그런지 아님 내가 너무 긴장하고 당황해서 그런지 엄격해보이는 모습이 뭔가 무서웠다.

게다가 내가 오기 전에 상상한 인자한 할아버지 신부님의 따스한 미소와 환대하는 까미노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내 이름 물어보시는데 (신부님도 영어가 안되서 대충 감으로 대화함) 내 세례명도 일부러 말했는데 그냥 약자로 후려치심 ㅎㅎㅎ



어쨌든 임무완수하고 나름 감사의 표시로 그라씨아스~Gracias~ 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이제 좀 여유를 찾아 왕궁 담벼락에 붙어서 사진도 찍고 그랬다. 




: 문제의 알무데나 성당

가보면 정말 어디로 들어가야할지 감이 안온다. 성당에서 끄레덴시알을 발급받고자 한다면 성당 정문이 아니라 뒤쪽의 성당사무소에 들어가야한다.




: 철창 사이로 찍은 왕궁의 한켠, 왕궁이라 그런지 금박이 간간히 보인다. 프랑스같은 느낌은 없지만 아직 왕이 존재하는 국가인거 자체가 매우 신기했음.

내가 있던 기간에 당시 왕이었던 후안 카를로스1세가 왕위 양도, 국왕 즉위식이 있었다.










이렇게 마드리드에서 마음먹은 것 중 한가지만 완수하고 기차를 탔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고 폰이야 뭐, 정 안되면 없이 걸으면 되니까!

인터넷은 어차피 못할 생각이었고 폰이 없어도 괜찮도록 정말 필요한 자료들은 다 인쇄해서 가지고 왔었다.

없으면 어찌어찌 되겠지~ 하는게 여러번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인생교훈이라

초짜처럼 당황하진 않고 그냥 맘 편히 기차에 올랐다.





혹시나 이 글을 참고해서 마드리드에서 까미노 준비를 하실 분들을 위해 정리하자면


1) 마드리드 알무데나 성당에서 끄레덴시알 발급이 가능하다. 다만 스페인어를 못할 경우 성당 정문이 아닌 뒤 쪽 사무소로 들어가야함을 알려주고 싶다. 

(정문으로 들어가도 될수도 있는데 나는 일단 말이 안되서 모르겠음)



2) 솔광장 보다폰 매장에서 유심칩을 발급받으려면 최소 두세시간의 여유를 가지고 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중에 깨달은거긴 한데 굳이 솔광장 매장을 갈 필요없다. 말이 안 통해도 유심칩 구매는 가능하고, 솔광장엔 관광객이 많아서 무조건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나중에 기차 환승을 위해 잠시 들른 사라고사(Zaragoza) 쇼핑몰에서 5분만에 샀다.......




기차가 출발했다.


기차역에 가득찬 유럽사람들을 보니 다시금 두근거렸다. 나는 지금 스페인이다!





다음 글에서 첫날의 남은 여정, 진짜 까미노의 시작을 향한 과정을 적어보겠다.






Camino Aragones Day 1# Madrid -> Somport

일어서자 걷자 숨쉬자 눈 뜨자 by 테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