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모임

오늘 대학 친구들 모임이 있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요즘 현재의 일상을 구성하고 있지 않은 '외부인'은 다 경계하는 마음인지라 영 내키지가 않았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도 엄청 재밌다거나 뭔가 했던 기억이 잘 안나서리...요즘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하는 거 아니면 돈이나 시간이나 쓰기가 아깝다.


그래도 여러번 튕겼었고 요즘은 내 마음에 여유도 자신감도 꽤 자라난거 같기도 해서 + 빠질 핑계도 없으므로... 참석 결정



어제 밤부터 내 마음 속에 온갖 부정적인 상상이 떠올라서 나를 괴롭혔다. 나한텐 항상 원치 않는 미래가 오는게 스트레스다. 


만날 멤버들이 예~전에 했던 온갖 부정적인 단정적인 말들, 걔는 참 인생 쉽게 살아, 걔는 너무 낭만적이야, 너는 차라리 이런거나 하는게 낫지 않아? 너는 딱 그거네

이런 말들. 내 돈과 시간까지 줘가며 들으로 가야해? 이런 생각이 계속 들고 화까지 나서 오늘 가서 싸우다가 친구 잃으면 어떻하나 까지 생각하느라 어젯밤 침대에서 잠이 안왔다.


내가 좀 이렇다. 온갖 부정적인 상상으로 나를 괴롭히느라 초딩때부터 밤에 불면증 증세가 있었당



어쨌든 찡찡대기도 하고 메뉴 선정도 맘에 안들고 돈도 아깝고 그랬는데 오늘 회사에서 좋은 도시락데이인게 떠올랐다.


친구모임만 없었어도 그걸 기대하면서 상당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까 모임 전의 내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좋은 생각부터 하기로 했다.


오늘 아침엔 좀 일찍 일어나서 집앞 시장 열었나 하고 가보니 한 과일가게가 열어서 들어갔다.

완전 ㄱ 자로 허리가 굽은 할머니가 하시는 가게였다. 체리를 한 다발 샀는데 첫손님이라고 한 뭉큼 더 얹어주시더니 감사합니다! 하고 돌아서는 나에게 기다려보라면서 천도복숭아도 하나 주셨다!!


복숭아는 정말 의외였어가지고, 그리고 그런 따뜻한 '덤'이 내 삶에 살짝 비집고 들어온게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불쑥 할머니 팔을 잡고 - 할머니도 스킨쉽에 조금은 놀라신듯 멈칫 - 오늘 좋은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하고 나왔다.


도시락 데이에 뭘 싸갈수는 없는 상황이고 얻어먹기만 하긴 미안해서 사려던 체리였는데 역시 남을 위해서 행동할 때 나도 더 많이 받게 되는거 같다. 정말 이런 아침은 '축복받은' 아침이다. 기분이 간만에 날아갈거 처럼 좋아졌다. 남을 돕다가 또 다른 남이 나를 도와주는 그런 행운이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 이어지는 듯한 날이면 세상은 참 아름다워 보인다. 그러고 회사에서 열심히 체리를 씻어서 예쁘게 쟁반에 담고 점심에 공개! 별로 생각보다 반응은 무관심에 가까웠지만 (물론 뭘 이런 비싼걸 사왔어요~ 이런말은 많이 들었다) 내가 할머니꼐 받은게 그보다 크고 소중해서 다른 빈말이나 인정욕구는 크게 들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분들이 싸온 도시락반찬이 너무 맛있어서 집중해서 먹느라 별 생각도 안들었다.


즐거운 점심을 보내고 그 전에는 또 일이 재밌는 파트라서 집중해서 하느라 ( 엑셀 수식 정리하는건데 난 이런게 좋음... 회사에서 벌써 엑셀변태라는 별명이 .....) 저녁 생각은 1도 안들었다.



오히려 학원 가서야 아 맞다 교통편도 안알아봤네, 하고 그제서야 네이버 지도를 켰다.



버스에 앉아 가면서 막히지도 않고 비도 안맞고 심지어 금요일 퇴근시간에 버스 자리가 나서 앉기까지 했는데도 그다지 감사한 마음이 안들고 또 부정적인 생각님들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열심히 폰질로 잊어보려했으나 요즘은 포켓몬고 빼고 다 재미없는데 포켓몬 고는 여전히 먹통이다.


그냥 멍하니 창밖을 보다가 내 몫으로 손수건에 싸온 체리를 암냠냠 먹었다.


빨간머리앤을 생각하며 체리를 한알 한알 천천히 먹었다.



가만히 생각들이 떠오르게 그냥 두었다. 그냥 가만히 있었다.

창밖에 사람들을 봤다. 이태원 거리를 지나면서 지난 시절을 추억했다. 하늘을 바라보다가 또 다른 생각도 하다 그랬다. 그러다 문득 아, 내가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고 있었구나, 그 친구들이 대기업 다니는 애들이라는 거 하나만으로 꼬리표를 붙이고 선입견을 가지고 대하는건 오히려 나구나, 부정적인 생각이 가득한건 그들이 아니라 나 자신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는 참 어렵다. 그렇지만 하다보면 가끔 된다.


그런 생각이 들자마자 미래를 부정적으로 걱정하기를 그만뒀다. 물론 그 목소리를 검게 스멀스멀 올라왔지만 내 생각의 중심을 약간 오른쪽 뒷편으로 당겼다. 그 어두운 흐름에서 약간 비켜가게. 



만나면 정말 할말 없을거같다. 내 개인 신상만 털어가면 어쩌나.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바라보면? 


이런 생각들이 계속 들었지만 용기를 냈다. 에이, 까짓거 그러면 이렇게 반응하지 뭐, 하고 특히 요즘 회사에서 만난 긍정킹이고 배째라 마인드가 아주 강하신 멋진 분들을 생각했다.



다른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해서 한두명과 더 단둘이 얘기할 시간이 생겼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나중에 다들 모여서 얘기하는데 다들 예전과는 달리 개인 신상도 캐묻지 않고 단정적으로 말하지도 않고 조심스러운 선은 지키면서 화기애애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 물론 너무 깊이 얘기하지 않으니까 - 서로 사리니까 - 아주 깊은 대화는 좀 힘들었던거 같고 - 그만큼 자주 만나지 않았긴 했으니까 - 중간중간에 정적이 흐른 적이 꽤 생겼다 - 예전에도 이래서 왜 만나야하지? 하고 의아함이 들긴했었다 - 그래도 생각보다 괜찮았음



다들 한두살 더 먹고 어른이 되가서 그런거 같다. 다들 사회생활하고 사랑을 하고 자신의 삶을 책임지고 하니까 타인을 함부로 재단하고 꼰대노릇하지 않게 되는 것같다. 특히 예전엔 자기가 세상 최고라고 생각하던 사람들도 사회에서 꼬붕 노릇하면서 개박살 나면 정말 약자를 이해하게 되는 거 같다.

(이게 삶의 매력이지, 정말 멋져)



내 친구들이 꼰대라는건 아니지만 그 전보다 더 부드러워진듯 했다.


별 걱정없이 먹고 얘기하고 들었다. 나도 전보다 더 많이 들어주고 덜 깐죽거렸던거 같다(그랬다면 다행)



이런게 어른됨이라면 나는 환영이다! 하는 것을 꼭 일기에 적고 싶었다.



어른이라는 거가 재미없다면 재미없을수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어른이라는거는 상당히 재미있는 일이다.

솔직히 아이때보다 더 재밌는거 같다.


한계가 무한소 수준으로 없어지고, 서로의 삶에 덜 간섭하는게 참으로 좋다. 부모든 친구든 옆집 할아버지든 그 누구든 내 삶에 간섭하는건 아주 어린 시절부터 매우 싫었다.


내 삶은 내가 책임진다고 말할 수 있게 된것이 좋다. 책임을 지기 싫어서 간섭받는 거보다 내가 십자가 모두 짊어지더라도 내 멋대로 살 수 있는게 좋다.


어른이 되더라도 - 년수가 차서 나이를 먹더라도 - 정신적으로는 꼰대가 되는 사람들도 많을거다. 다행히 내 친구들은 안그래서 참 좋았다.



집에 돌아오면서, 그것봐, 너 삶은 너가 좋아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거만으로 채워도 된다니까? 아무도 안물어보고 안궁금해하고 뭐라고 하지 않아! 하는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래, 엄빠가 맨날 남 얘기하지만, 결국 그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나에대해 1도 모르는 사람이 될거다. 오로지 '나'! 나만이 중요하다. 내가 삶에 만족하지 못하면 그게 쓰레기 같은거다.


나를 위해 더 열심히 살자! 하는 확신이 들게 되서 기뻤다.


오늘은 여러모로 운이 좋고 잘 풀리는 만족스러운 하루다. 이런 하루라면 후회없다.


또 한가지 더,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 걱정하는 것을 중간에 스스로 깨닫고 그만두려고 노력한 것이 실제로 내 걱정이 한가지도 일어나지 않음을 보면서 안도감으로 다가왔다.


아까 그것봐 하고 말했던 목소리가 이런말도 해줬다.

걱정 안해도 괜찮다니까. 나를 믿어. 너가 잘 살면 남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없고 비난 받아도 상관없어. 너무 걱정하지마. 


예전에 삶의 방향을 찾아 헤맬때 부지런해지기, 남 신경안쓰기, 자학하지 않기 라는 세가지 과제를 부여받았었다.


지금까지도 노트북 배경화면에 떠있어서 삶의 나침반처럼 새기고 있어왔는데

오늘의 나는 이 세가지를 어느정도 성취하고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줘서 매우 자랑스럽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시장 들려서 출근했는데 내가 1빠로 도착했던거, 요즘 회사 매우 일찍 잘 가서 거기선 내가 아침형 인간 이미지 라는 거 ㅋㅋㅋㅋ

남 신경 안쓰도록 스스로를 잘 잡아줄 수 있는 목소리가 꽤 자라났고 또 명상효과인지 스스로 객관화시켜서 남 신경쓰는 스스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또 남 신경쓰다가 안써도 된다는 걸 오늘 또 깨달은 점.

내일의 김경민은 더 스스로를 위해, 남 신경안쓰면서 용기있게 나아갈 수 있을 거같아서 기쁜 것.

자학하지 않기는 이런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예전같으면 여러가지로 자학했을 텐데 요즘은 덜하려고 노력하는 것, 오늘도 체리 사간 것에 대해서 반응이 없어서 자책하거나 계속 후회했을 수도 있는데 쿨하게 할머니의 천도복숭아와 스스로의 만족으로도 충분히 보상을 받은 것. 

지금 일기도 그렇고 스스로에게 계속 칭찬해주는 것!


또 오늘 집에와서 샤워하면서 여러가지 단상이 마구 떠올랐는데 다 꽤나 밝은 컬러여서 갑자기 따스한 물로 샤워하다가 온몸에서 힘이 넘쳐 흐르는게 느껴졌었다! 자신감도 넘치고 내 인생이 너무 사랑스럽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거같고 내 미래는 밝고 아름다울 거 같은 확신이 들었다!!


오늘 하루가 너무 좋았고 그런 하루를 후회없이 잘 보낸 내가 너무 맘에 들었다.


스스로를 맘에 들어하기, 이게 바로 자학하지 않기의 궁극적 목표 아닌감?ㅎㅎ

한번 맘에 들어하면 더 노력해서 더 멋진 나가 될 에너지가 채워지는 것 같다. 선순환, 선순환.


그래서 그 세가지를 얼추 채워나가는 나가 참으로 맘에 든다고 또 칭찬 일기를 써준다.



일기 쓰는게 참 귀찮아서 요즘 간헐적으로 쓰게되긴 하는데

이건 꼭 남겨서 나의 장기기억에 넣어두고 싶었기 때문에 빠르게 쓸 수 있는 블로그에다 쓴다.



오늘 만났던 친구들에게 다들 행복한 저녁이 있길, 즐거운 주말이 되길.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을 받고 배려를 받고 내가 배려해주고 좋은 말을 해주고 선물을 준다는 것은

정말 행복한 일이다.



자신이 맘에 드는 하루는 더욱 행복한 일이다.


올해 말에는 더 멋진 어른인 내가 되길.



그래, 아까 샤워하고 나서 거울을 보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어른이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화자찬? 넘치도록 할거다. 나는 나랑 평생갈 동반자거든. 나는 내가 칭찬 좋아하는거 아니까 살아있을 때 많이 많이 들을 수 있도록 해줄거다. 내 기를 펴줄거고 내 날개를 펴줄거고 힘들 때 기운을 북돋아줄거다.


마음을 달래줄 때 좋아하는 노래를 듣게 해줄 거고 속상할 때 일기를 쓰게 해줄 거다. 외로울 때 하늘을 보며 산책할 수 있게 해줄 거고 스트레스 받을 때 고래고래 소리도 지르게 해줄거다!


그런 내가 내가 원하는 나이고


나는 쫌 그런 어른이 된거같다. 하핫



간만에 행복! 만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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