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26. 00:45 생각 기억 느낌/나 관찰일기
일기가 밀리고 있다. 왜냐면 생각은 핵폭발처럼 터져나오는데 그게 넘 순식간이고 다 담기엔 손과 발과 뇌가 귀찮아 하기 때문에 안쓰고 미루기 때문이다.
그래도 꼭 써야겠다. 나란 인간을 위해 꼭 기록을 남겨야 겠다 하는 날이라던가
아니면 오늘 처럼 (오늘은 전자도 포함되지만) 속이 아주 답답하고 터질 것같아서 글이든 뭐든으로 풀어 놓지 않으면 짜증과 화가 솟구칠 것 같은 - 나는 보통 bad feeling이 전부 분노로 치환되는 타입의 사람이라서 그렇다 - 그런 날이면 꼭 귀찮아도 핵심만 쓴다.
사실 그 상태로 아직 미완성이라 비공개 걸어둔 - 완성되면 공개하려고 했던 - 글이 지금 하나 걸려 있는 상황인데 그거 올리기 전에 일단 이걸 써야지 싶어서 쓴다. 생각날때 적어야지.
오늘은 참 여러 감정을 느끼는 날이다.
대부분의 내 인생에 크리티컬한 감정의 구슬이 들어온 날들은 거의 대부분이 인간관계에 관한 일이 있는 날이다. (그거 외에는 여행, 서핑, 스쿠버다이빙, 스노쿨링 밖에 안떠오름)
오늘도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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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보통 타인에 의해서 보여지는 것과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평가하는게 무척 다를 때도 있지만, 같을 수도 있다.
정말 예쁘게 생겼는데 스스로 한참 모자라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진짜 존재한다.
나는 객관적으로는 어떤진 모르겠지만
스스로는 대인관계가 매우 서툴며 타인에 대한 감정이 비정상적인 반응을 기본 셑으로 가지고 있다고 여긴다.
평범한 순간들에는 거의 잊고 있지만 결정적인 '감정의 동요'의 순간들에 있어서
내가 봐도 난 별로 보편적인거 같진 않다.
나는 남들이 놀랄 때 침착하고, 남들이 웃을 때 웃기지 않고, 남들이 슬퍼할 때 슬프지 않고, 남들이 화낼때 그럴수도 있지 한다.
물론 매우 보편적인 감정에는 공감을 쉽게 한다. 또는 나로서도 아직 이해를 다 못했지만, 문학이나 미디어 속의 주인공의 감정에는 매우 쉽게 공감을 한다. 나는 어쩌면 너무 단순해서 보편적이지 못한지도 모르겠다.
중고등학교는 사람이 그룹, 사회라는 단체 생활 속에서 인간관계를 어떻게 맺을지 체험하는 가장 좋은 교육장소이다. 이곳에는 힘을 쥔 자, 야비한 자, 거짓말 하는 자, 아첨꾼, 사기꾼, 배신자, 겁쟁이, 방관자 등 온갖 사회의 이면이 다 담겨 있다. 적어도 내가 자란 곳은 충분히 그랬다.
보통 아무리 무난한 곳이더라도 그룹 속에서 각자의 역할을 맡게 된다.
내가 맡은 역할은 대부분 어수룩하거나 엉뚱한 면으로 타인을 웃기는 역할이었다. 어릿광대랄까.
근데 정말 웃긴 것은 나는 이 상황이 매우 객관적으로 느껴졌고 사실 그들이 웃는 이유를 전혀, 현재까지도 전혀, 이해할 수도 알 수도 없을 뿐더러 그 모든 상황에서 나는 매우 진지했다.
그냥 남을 웃게 만들면 다 좋은거 아냐? 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도 거의 그렇게 넘어간다.
근데 사람이란게 사회적 동물이 맞다.
사람은 감정을 공유하면서 친밀감을 느낀다.
그렇게 남을 웃기는 것? 내가 의도하지도 않았을 때?
너네는 웃기겠지. 나는 웃기지 않다. 그건 나에게는 오히려 마음의 장벽이 느껴지게만 만든다.
난 그들이 웃을 때 '그들'로 느낀다. 그 곳에는 '우리'란 없다.
나도 나를 웃겨주는 사람, 나와 함께 같은 것으로 웃어줄 수 있는 사람을 항상 갈구한다.
그런 사람은 정말 드물다.
그것이 나를 슬프게하고
나를 외톨이로
비정상적인 인간으로 느끼게 한다.
지금은 사람마다 정말 다 다르고 웃음의 역치와 포인트의 방향도 다 - 다름을 알지만
어쨌든 당신들이 나로 하여금 웃을 때 나는 전혀 유쾌하지 않다는 말을 해주고 싶다.
그게 즐겁니?
이런 상황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나에게 빈번히 이뤄지고(나란 사람이 엄청난 허당인건 인정)
그때마다 정색하기보다는 적당히 웃는 척하는게 아주 어릴 때부터 습관화되어서
감정소모에 대한 에너지가 너무 크게 들고
결국 내게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그들로 분류된 순간 나에게 그들의 가치는 떨어지고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감정소모는 더 스트레스다
오늘 오랫만에 집단 생활을 하면서 - 겨우 몇시간이었지만 - 이 기분이, 내 인생 전반에 걸쳐 항상 존재했던 이 기분이 확 올라와서 무척이나 기분이 안좋아졌다.
그리고 이 기분의 과거 흔적을 들여보다가 내가 두번째로 다녔던 회사에서 퇴사하기로 했을 때 대머리 팀장님과 이런 얘길했던 기억이 난다. 그분도 나 못지 않은 타인감정 무감각자였는데, 그분은 내게 왜 남이 웃을때 괜히 같이 웃어줘서 힘들게 사냐고 했다. 내가 안웃기면 웃지 말라고했다.
지금은 그렇게 살려고 하고 있다.
사회성 이딴거 보다 내 스트레스가 훨 중요하다.
니네한테 잘보이려다가 내 수명 깎이면 나만 손해다.
난 안 웃을 거다.
웃는 것이 스트레스다.
난 내가 웃길때만 웃을거야. 멍청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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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런 중고등학생의 사회 생활 체험 전 - 가족과 친척이 가장 큰 사회였을 때부터 제제같았다.
제제 말이다.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나는 그 책을 참 싫어하면서 좋아한다. 왜 싫어하냐면 나의 어두운면이 그대로 보이는 듯해서.
제제는 악마라고 불리던 것 같았다. 나도 어린 나 자신을 악마라고 불렀다.
나의 말과 행동으로 친척들간에 싸움이 일어났던 날
엄마는 나를 매우 혼냈다.
그때 엄마와 이모는 거의 크게 싸웠던거 같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기억 안나지만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금에서는 아, 그말은 상처줄 수 있는 말이다. 싶다.
이젠 사람들이 모두 사실을 다 남입에서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할말과 못할말은 그것의 진실여부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감정과 대화 분위기에 훨씬 좌우된다는 것도.
내가 그런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 아무 상관 없단 것도 말이다.
나 자신도 주관적으로 나에게 듣기좋은 말만 좋아하는 것은 인정한다.
그래도 내가 말을 할 때 나는 그것이 어떻게 들릴지 정말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것이 내가 타고난 성격인건지
아니면 자라면서 키우지 못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위에 글에 쓴 대로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것도
타고나기를 그렇게 타고 난 것인지
아니면 내 부모와 환경이 내 감정을 최대한 억누르고 나 본인 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깊숙히 넣어놓고 자물쇠를 걸어 놓은 건지 알 수 없다.
후자처럼 말한 이유는 내가 정말 강하다고 아무렇지 않다고 느끼는 일들에 - 특히 부모님 관련 -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눈물이 뚝뚝 흐르기 때문이다.
정말 내가 사이코패스였다면 몸도 반응하지 않았을 성 싶다.
하지만 후자더라도 타인의 감정에 공감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에라, 모르겠다. 전자 후자 모두가 영향을 끼친걸지도.
지난 사실만 요약하자면
나는 타인에 대한 고려 없이 말을 툭툭 잘 던진다. 동시에 돌직구를 잘 던지고 말로 상처를 입힌 경력이 매우 많다.
그래서 나는 후폭풍으로 혼이 난 적이 많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깨먹은 적이 매우 많다.
그런 경우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과 대중과 어른들은 그것이 나의 잘못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데 그게 왜 잘못인지 거의 대부분 이해하지 못했다. 더 정확히는 공감을 하지 못했다.
정확히 뭐가 잘못인지 잘 알지 못한채 주변으로부터 내가 잘못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아마 진짜 내가 잘못이겠지만 내가 잘 알지못하므로 그냥 나는 내 자신을 사릴 수 밖에 없게 된다.
나는 괜히 사과하는 말을 덧붙이고 남들에게 상처줄까 걱정하는 말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웃긴건 그래놓고 또 내가 던지는 말은 전혀 달라지지 않아서 사람들은 내가 더 일부러 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을 거 같다.
이런 얘길 친구들한테 하게 되면 나를 떠나거나 나를 이상하게보거나 나를 마치 지적장애인 - 천재수학자인데 사회생활력 결핍인 것 같은 - 처럼 '타인화' 시킨다.
그들은 이것을 전혀 공감해주지 못하고
그들은 나를 타인화 시키고
불쌍하게 여기거나 낮추어본다.
내가 왜 불쌍하지?
나는 그 시선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다
나는 그저 소수일 뿐
그들과 다르다고 내가 잘못된 사람 취급 받는 것이 정말 매우 싫다.
제일 싫은 것은 정말 어릴 때부터 이 대접을 받아왔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계속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 '너 이건 비정상적인거 같아' '너 진짜 또라이다' '너는 사이코패스같아' '너는 불쌍한 존재다' '너는 모자라다'
이런 부정적인 목소리가 계속 들린다는 것이다.
사실 내가 서투른 공감능력으로 실제로 실수를 하긴하더라도
100에 1는 기억할까말까일거다.
근데 나는 그걸 혼자서 - 과거에 워낙 혼난 기억이 가득해서 - 계속 곱씹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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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이해도도 낮고 동질감도 못느끼는 나인데
아이러니한 것은 내가 가장 쾌감을 느끼는 것 중 하나가 타인에게 인정받고 주목받고 사랑받는 것이란 점이다.
내 이름의 한문 의미 답게 나는 중심에서 주목받고 소중히 여겨지는 것에 거의 강박처럼 매달린다.
그냥 자동적으로 어떠한 그룹에서 내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나 외의 사람이 중심이면 계속 그 사람이 머릿속에 박힌다.
이 때문일 거다. 내 말에 내 스스로가 스트레스 받고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한 영혼없는 웃음을 짓는 것은.
사실 나같은 사람이면서 완전 마이웨이 갈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괴짜라고 불리겠지만 본인은 편하다.
근데 나같은 타입인데 사회에서 인정받으려고 노력한다?
개피곤하다.
진짜다.
최근엔 내가 남에게 인정받지 않아도 괜찮도록 수련하면서 동시에 남들과 달리 안 웃기면 안웃으려고 하는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정말 사람이 몸에 배인건 쉽게 가시지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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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있었던 일은 이렇다.
그렇게 또 남들이 나를 향해 웃었다.
나는 안 웃겼다.
- 사실 어릴 때부터 여러번 , 정말 여러번 있는 일이지만 나는 이런 상황이 될때 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전혀 모르겠다. 찬물을 끼얹을지, 어떻게 대꾸를 해야할지....... 그냥 가만히 있는게 상책인듯
애초에 그 그룹에서 나는 자투리였고 메인 보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의 그들을 위한 그들만의 자리였다. 자기들끼리 종교얘기하고 감정공유하고 울고달래고 하는데
1도 공감이 안되고
그냥계속 내가 방해했나?
나는 왜 공감이 안될까?
이 분위기는 대체 뭘까?
나는 사이코패스인가?
나는 왜 타인의 슬픔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까?
나만 그럴까 다들 그럴까?
다들 그런 척하는 거라면 정말 세상은 suck이다 싶었다.
그냥 모기가 많이 달려들어서
어서 끝났으면 좋겠다 싶었고
남들이 감정 배출/공유 하는 자리는 나는 도무지 불편해서 있기가 힘들었다.
이곳 뿐 아니라 다른 곳들도. 그래서 내가 모금활동이니 사회봉사활동이니 인권운동이니하는 것들에 지지하고 한발 떨어져 응원하지만 절대 다가가지는 않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들이 매우 불편하다.
사실 싫다.
내 삶에 그런것들은 다 지워버리고 싶다.
내 삶에는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로만 채우고 싶다. 좀더 가볍고 좀더 유쾌한 것들로.
그게 나다.
쨌든 그렇게 자기들만의 시간을 보내는데 들러리를 하고 있었다.
애초에 남이라고 생각한 사람들과의 자리였다면 사실 상관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 만난 가장 좋은 그룹이었고
평소에 나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생각했고
나도 그들안에서 '우리'가 되었다고 생각하다가
'그들'과 '나'로
너무도 선명하게 선이 그어지는 것이 역겹고 토할거 같았다.
나는 아직 그룹생활에서 나는 배격하는 분위기가
견딜수가 없다.
내가 나약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아무튼 안그런 척은 물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척'은 에너지 소모가 엄청나고
삶의 의욕을 다 꺾어버린다.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내가 그 사람들 사이에서 배척당하는 느낌을 받을 때 그 집단이 끔찍히 싫게 느껴진다.
다들 그럴거다. 다들 동질감을 느끼는 곳에 행복을 느끼고 소외감은 싫은 감정을 불러일으킬거다.
그게 사회적 동물이란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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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상태로 집에오면서
이젠 내가 기분이 안 좋으면 나를 달랠 메뉴얼이 갖춰져있어서 그걸 여러가지 갖다대보았다.
아이스크림을 먹을지 만화를 보거나 그림을 그릴지 일기를 쓸지
그치만 가장 먼저 한 것은 전화다.
내편이 되줄 사람의 목소리를 듣는 것.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되는 것이 제일 빠르다.
혼자서도 회복할 수 있지만 느리다.
어쨌든 나도 지금 일기를 쓰고 있긴 하니깐. 각 방법이 약간 다를 뿐 다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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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와서 샤워도 하고 내집 내가족 내 침대의 안락한 내 껍데기 속에 들어오니 머리가 좀 차분해졌다.
그런뒤 생각해보니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한 것 외에도 다른 생각들이 떠올랐다.
우선 역시 부모님은 아무리 나를 거부하고 못이뻐하시더라도
저런 '그들'과는 달리 나를 배척하지는 않으시구나 하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세상에는 자신을 배척하거나 버리거나 심지어 죽이려는 부모도 존재한다. 실제로 서로 죽이기도 하고.
가족이 다 해답이다 하는건 반대다. 하지만 오늘 내게 내 소속감을 확인시켜줄 존재가 있음에 감사했다. 해외에 혼자 살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이 부분.
(참고로 나는 항상 A를 말하면 B도 생각해보고 틀리지 않다라고 말하는 성격이라 사람들한테 더 공감을 못 얻는거 같다. 하지만 둘다 맞는건 사실이잖아. 내가 왜 동네 아줌마들처럼 한 편에 서서만 말해야 하지? 과학은 그래서 좋다. 확률만 얘기하는게 사실에 더 가깝다. 둘다 완전히 틀리지 않은 것이다.)
또하나 떠오른 건 오늘 환송회를 연 두 보석같은 존재들은 자기들의 서운함과 이별에 대한 감정에 대해 말하면서 사실 본인들이 떠나기로 계획했다는 것이다.
그들이 아주 남을 울리고 - 그것때문에 내가 불편했지만 - 감정 운운 하는 이야기가 나온 상황을 만들어 낸 것은 그들이 이 사람들을 - 오늘 한말이 다 사실 이라면, 그리고 사실이라고 믿는다 - 정말 아끼고 가장 사랑받음은 틀림없지만 자기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때 그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정말 스스로를 위한 조건을 따지고 선택한, 어찌보면 현실주의자들이다.
그게 객관적으로는 참 맞는 말이다.
나는 웃긴게 공감은 잘 못하고 사회성도 떨어지면서 그들 사이에 어떻게든 끼려고 그들을 고려한 선택을 할 때가 종종? 꽤 자주 있다.
나는 동질감을 못느껴선지, 아니면 소속감의 결여가 커선지, 애정결핍인지 뭔지 인정받고 그들 사이에 들어가고 싶은 강한 욕구가 존재한다. 그래서 간혹 사람들을 위한 선택인지 내가 정말 원한건지 혼동이 된 상태에서 미래를 결정지은 적이 있다. 사실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안들고 현재까지도 정말 그랬던 건지 아니면 지금 해석을 그렇게 하는 건지는 잘 알 수 없다.
아무튼 간에 내가 그들에게 배워야 할 것은 이것이다.
타인과의 유대감은 쌓되
내 인생에 있어서는 선택권을 주지 말라.
나는 반대로 살고 있는데
그러니까 내 스스로에게 스트레스만 쌓이고 삶의 만족도가 떨어진다.
bad way, disc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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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 스스로가 이상한 사람임을, 소외감을 느끼고 우울해지고 자기비판이 시작되고 무척 괴로웠는데
내편인 목소리가 나는 안 이상하다고 말해주었다.
사실 그런 대답을 기대하고 전화를 건 것임에도
실제로 들으니 태어나서 처음 들은거같고
또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 정상범주에 드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졌다.
안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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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이 '그들'도 내 삶에서 1년도 안 볼 사람들일 수도 있는데
이렇게 일희일비 하는 게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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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오는 길에 우울한 상태에서 든 마지막 생각
지금 내가 진로 활로를 모색하는 두 방향은
하나는 팀으로 일하는 것
하나는 혼자 일하는 것이다.
사실 나는 혼자가 편하다.
근데 이렇게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고
평소의 감정 폭에서 더 높이 더 낮게 위아래로 널뛰기를 하면서 내 스스로가 나를 더 잘알게되고 더 성장할 계기를 만들어주는 것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이다.
어느쪽으로 가야할까
모자란 부분을 채워야 할까
내가 편한 부분에서 쉬는 것이 좋을까
둘다 정답은 아니겠지만
나는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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