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릴 적 내게 세상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것이었다. 나는 세상이 궁금했고 더 넓고 더 많은 것을 항상 갈구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던 것은 모험동화책이다. 여전히 그것들을 매우 사랑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나니아 연대기, 오즈의 마법사 시리즈(뒤로 갈수록 좋았다), 무민 시리즈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이었다. 어찌보면 그다지 모험적이지 않은 것도 같다. 환상적인 세상에 우연히 가게되어 모험을 하게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좋았던 것 같다(무민은 제외)
책을 읽음으로써 한국의 평범한 초등학생으로 경험할수 있는 아주 작고 재미없는 일상들에서 벗어나 매번 새롭고 흥미로운 세계를 탐험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어찌보면 난 현실 세계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산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리 동네 지도를 그리자. 등의 모험가 흉내를 내었던 것은 선명히 기억난다.
그러한 관심은 중학교때 만화책을 통해 증폭되어 완전히 다른 세계에 빠져살게 되었다. 소위 오타쿠에 근접하게되었는데 그들과는 또 달랐다. 나는 나만의 기준에서 소수의 몇개의 만화책만 깊게 읽곤했다. 여전히 책도 많이 읽었다. 만화는 내게 종이에 옮긴 영화였고 영화 또한 간접 경험을 많이 준다는 면에서 내가 사랑하던 것이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때는 만화를 거의 읽을 수가 없었고 이때는 내 기준에 상관없이 친구들이 빌려온 걸 읽게되느라 관심도 없던 순정만화를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읽어보니 이쪽도 매우 재밌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접하면 그 재미를 깨우치게되고 그러면 다 재밌게 느껴지는 것이다.
만화를 못읽게되었지만 책을 못읽게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서관은 내가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때부터 항상 내 가장 좋은 피난처이자 안식처이자 놀이터였다.
고등학교때 삼일동안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던 나의 사랑 몬테크리스토 백작이 기억난다. 삼총사도 바로 읽었고 이때는 주로 영미 문학이나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다. 묘사가 섬세하고 갈등과 사건이 뚜렷한 이쪽 문학들이 나는 좋았다.
지금까지도 가장 가슴깊이 담아놓은 러시아 문학도 이때 읽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이건 대학때 다 읽은거 같기도)가 기억난다. 러시아 민중들의 멍청하면서도 순박하고 신의대한 믿음이 가득하면서도 투박한, 그들 농민들의 가난함과 힘듦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비슷하게 느껴져서 더 좋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주로 문학을 읽었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는게 즐거웠던 것인데 비문학은 그러한 즐거움을 주지도 않고 딱딱하기만 하여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차라리 시를 참 좋아해서 많이 읽었다.
대학에 와서 내가 좀 달라졌다. 본 바탕은 달라진 것이 아닌데 세상에 드디어 관심을 갖게되었다. 항상 다른 세상을 꿈꾸다가 사실은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이 가장 흥미로운 존재이며 남이 아니라 내가 바로 이 세상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게다가 내가 처한 현실을 잘 알지 못한다면 나만 불리해질 뿐이라는 것도.
지금 뒤를 돌아보니 그랬던거 같은 것일 수도 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이 세상이든 환상세계든 나는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이 좋았고 대학은 마치 갓 태어난 고래를 위해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같았다. 나는 정신없이 달고 맛있는 것들을 따먹느라 즐거웠다.
교양수업으로 심리학, 사회학, 스페인문학, 철학의 이해, 경제학 청강, 역사학을 들었다. 만화에 대한 수업도 하나 들었고 행정학은 더럽게 재미없다는 걸 깨달으면서 내가 모든 학문을 좋아하진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이렇게 무언가를 배우게되면서 비문학을 접하게되었다. 교재 속에는 항상 뛰어난 과거의 학자들이 소개되어 이 사람들이 무슨 책을 썼는지 알려주는 데, 거기서부터 호기심이 생겨났다.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또 비문학을 읽게 되었다. 진짜 학자들은 어떤 패러다임을 제시하는지 읽어야 알수 있으니까.
비문학은 배움의 연장선이었다. 그래서 재미가 엄청 있지는 않지만 배움으로 얻는 흥미로 읽어나갔다. 다만 문학처럼 쉽게 넘길수가 없어서 일년에 읽는 책의 권수가 매우 줄었다(노느라 그런 것도 사실이다).
어렵게 읽어낸 비문학 책들이 알게모르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그렇게 믿고있을 따름이다.
현재에 이르러서는 배우고 싶은 것들, 알고 싶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다 내 것으로 하고 싶은 욕심에 문학을 읽을 짬을 못내고 있다. 그리고 읽고 싶은 비문학이 너무 많아서 문학을 읽으면 시간 낭비같이 느껴지기까지 한다.
결국 나는 책과 함께 커왔고 결국 내가 존경하던 사람들의 공통점을 좋은 책을 써서 유명해진 사람들이라는 점, 진로 고민을 할때 아니오라는 답이 마음에서 나올때마다 결국 귀결되는 하나의 답은 나는 꼭 책을 쓰는 사람이 되어야지 하는 것이다...!
세상은 여전히 모르는 부분 투성이다. 과연 죽기전에 다 알수나 있을까? 알 필요도 없을 모양이지만 호기심을 잃는다면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게 세상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재미있는 책이다. 신이 나를 세상에 내린 이유는 내 생각엔 이 책을 자신이 흡족하게 만들었으니 그가 사랑하는 내가 한번 잘 읽어보라는 뜻일 거다.
평생 독자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작가가 되어보면 얼마나 짜릿할까.
나만의 통찰력을 담아 나만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그에 대해 동의를 받거나 새롭다는 흥미롭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얼마나 흥분될까!
끊임없이 고민한 결과 내 꿈은 바로 책이다 라는 것이 나의 현재 결론이다. 또 바뀔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지금 나의 원동력은 이것이다. 나는 다음 단계를 책을 쓸 수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한 방향으로 정할것이다. 나아갈 것이다.
여기서 내가 답해야하는 다음 질문은 무슨 책을 쓰고 싶냐는 것이다.
일단 그 것을 찾기 위해, 그리고 글쟁이가 되려면많이 써보는게 좋다는 생각에, 그냥 쓰는 것 자체가 사실 나는 상당히 재밌기 때문에ㅡ 이렇게 나 관찰일기를 뭔가 떠오르면 계속 써나가는 것이다.
지금은 형태없이 나열된 이 글조각들이 언젠가 엮어질 날이 오길 바란다.
플라톤의 향연에 사람의 사랑은 자신을 잉태하고 출산하여 이 세상에 다시 남기는 것이라고 했다. 나의 나에 대한 사랑, 세상에 대한 사랑은 글이다. 좋은 글이다. 나는 이렇게 나를 세상에 남긴다.
덧: 희망적인 사실은 글이라던가 세상을 보는 시각이라던가 하는 것은 사실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것이 나타날 수 있고 내가 쓴 것이 백프로 찬성을 받지 못하더라도 누군가는 동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다. 해낼 것이다.
Recent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