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한 달에 한 권 책읽기는 5월인 현재까지 순조롭게 지켜지고 있다. 이대로라면 최소 올해 12권은 읽겠지...



이번 달에는 [소피의 세계]를 읽고 있다.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걸 매우 싫어하는 나지만, 이번 책은 분명 초중학생 쯤에 읽고는 전혀 기억이 안난단 말이지.


철학은 대학생때부터 '관심사'에는 있어왔지만 이번에 좀 주변에 철학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선지 다시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아주아주 쉬운 입문서인 소피의 세계를 집었다.



읽길 매우 잘했다고 생각한다. 완전 처음 읽는 느낌이었다. 아니, 애초에 나는 이걸 끝까지 읽은 적이 없었을까?



1부 마지막 쯤인가, 영혼의 영원불멸을 지지하는 한 쪽과 그걸 반박하는 두 학파 간의 이야기가 나올 쯤이었다. 침대에 누워서 작은 테이블 등 하나만 켜고 읽고 있었는데 문득 내가 죽는다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내가 죽는다고 생각을 해보았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처음에는 죽으면 내방은 어떻게 되겠지, 엄마 아빠는 어떻게 반응하겠지, 친구들 중엔 과연 누가 올까, 다들 그러고나서 한참 시간이 지나면 또 적응하고 각자 삶을 살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 까지는 뭐 예전에도 여러번 생각했던 거니까 뭐. 


근데 문득 내가 진짜 영혼이 없다고 생각하고 죽는다고 여기니, 내가 죽음 뒤에 벌어질 이 일들을 '지각'하거나 '볼' 수도 없고 그냥 진짜 없어지고 사라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무서운 느낌이었다 그건.


나는 생물학을 배우면서 영혼은 없다고 느꼈다. 왜냐면 지금까지 지구가 돌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어왔는데 그걸 다 쌓아둘 곳이 있겠는가. 또 있다고 쳐도 그렇게 영생을 영혼상태로 살면 너무 지칠 것 같았다. 나는 죽음 자체는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 몸은 죽어 스러지면 또 다른 생명의 양분으로 쓰이겠지 싶었다. 


신기하게도 그런 '생각'이나 내가 '세계를 인지하는 것'은 결국 '내 자아'가 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 그걸 왜 몰랐을까. 세상 사람들이 다 죽고 나만 남아도 나는 행동할 수 있고 생각할 수 있고 감정을 느낄 수 있고 그 사실을 인지할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세상 사람들은 다 살아도 나라는 존재가 죽으면, 나의 경험과 기억, 생각과 감정, 내게 존재하는 세상, 내가 보는 세상, 내가 느끼는 이 모든 세상이라는 것이 사라진다. 


그건 마치 정말 내가 잠에 빠져들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겠지?

다만 다른 점은 잠에 빠져서 아무 꿈도 꾸지 못하고 그냥 그 아무 인식안되는 상태로 영원히, 나라는 존재자체가 사라지고 나는 정말 '없음'이 되는 거란 거지.



다른 그 무엇보다 내가 세상을 더이상 볼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다는 것이 너무나 무섭고 끔찍했다.


죽은 사람은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던 것이다. 왜냐면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니까.

그의 자아는 없으니까.



아침에 눈을 뜰때 신기하게도 어젯밤 이후로 꺼졌던 스위치가 켜지듯이 내 자아가 생각을 시작한다. 

더 자고 싶다, 해가 떴다, 엄마가 있다 - 이런 식으로. 


아마 죽는다는 건 이렇게 스위치가 켜지지 않는다는 거겠지? 그러면 정말 내 인생의 역사와 기억과 이렇게 글을 쓰고 타이핑을 하는 의지를 가진 '나'는 없어지고 마는 걸까?



그건 정말이지 끔찍하기 때문에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부터 영혼에 대해 논박을 하고 또 하고 또 하는 것인가보다. 



인간이 자아를 인식하면서 그것이 사라진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서, 그건 너무나도 벅차서, 영혼과 신을 찾기 시작한거가 아닌가 싶다.



정말 천국도 없고 영혼도 없다면, 그리고 지구가 멸망하지 않고 인류가 멸종되지 않는다면, 내가 죽음에 있어 바라는 건 단 한가지다. 



먼 훗날 나를 이루던 모든 것들이 다시 합쳐져 하나의 생명으로 태어나서 다시 세상을 보고 듣고, 그 안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정말 그렇게만 되었으면 좋겠다. 


그 존재는 여자일 필요도 인간일 필요도 없고 지구가 아니어도 사실은 상관 없을 것 같다. 환생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나였음은 결국 아무도, 새로운 내 자신도 모를 것이다. 다만 세상에 다시 한번 살아 숨쉬고 싶어진다. 살아있다는 건 정말 '아무것도 없음'에 비하면 너무도 위대하고 감동적인 일이니까.



정말 아무것도 없음 상태로 사라진다는 것, 그것이 제일 무서운 일이지 싶다. 생각해보면 태어나면서부터 자아를 갖게되면서 '나'라는 것이 존재한 것 아닌가. 나라는 사람이 있어야 내가 세상을 보고 겪고 느끼는 것이지, 나 이전의 세상과 사람들은 나에겐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일 뿐이다. 그냥 기록물일 뿐. 그것도 내가 존재해서 읽고 봐야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처음에는 자아 소실에 대해 너무도 거부감이 들었는데 인생이란 결국 이렇게 모든 것을 놓아주는 법을 배우는 건가 싶었다.


자라면서 타인과 함께하면서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남에겐 아닐 수도 있음을 배우고 자기 고집을 놓아주는 것을 배운다.


성인이 되고 사랑을 하면서 자기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나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생기면서 자신만을 위하는 마음을 놓아주는 것을 배운다.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준다고 느꼈는데, 죽음을 앞두고는 '나'를 유지하는 것 자체를 놓아버려야 한다니. 신이 있다면 정말 너무 하십니다. 결국 무에서 태어난 존재는 태어남과 동시에 가장 복잡하고 가장 가진 것이 많으며, 죽음에 다가갈 수록 모든 것을 버리고 결국 죽음으로써 다시 무가 되는 건가보다.



내가 그 과정 속에 있는 보통의 인간임을 받아들이니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예언자들도, 대통령도, 성녀들도 결국 다 죽었다. 다들 그 버리는 여정을 갔다. 그러니 나도 갈 것이고, 나도 잘 버려낼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내 자아가 존재하고 있을 때, 그것을 참 잘 아껴주고 행복하게 있도록 신경써줘야겠다. 





요즘 이런거 생각하고 삽니다.

'생각 기억 느낌 > 나 관찰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행복으로 가는 길  (0) 2016.05.29
버스 맨 앞자리  (0) 2016.05.12
최근에 떠오른 질문들  (0) 2016.05.04
ios 9.3 업뎃  (0) 2016.03.23
직업심리검사  (0) 2016.03.11
일어서자 걷자 숨쉬자 눈 뜨자 by 테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