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심리학 (수정)

#예술


성격검사나 직업흥미검사를 해보면 항상 나는 예술가 유형이 나온다.


나는 어릴때부터 그림그리는게 좋았다.

관심사는 중학생때 일본만화를 처음보면서 뇌에 핵폭탄이 떨어진 느낌의 충격을 받고 만화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갔다.


이 사랑에 대해 쓰자면 한도끝도 없이 쓸 수 있지만 오늘 글에서 하고 싶은 말은 결국 나는 심리학으로 밥벌어먹는 사람이 됐다는 것이다.


예술은 아름답고, 당시 나에게 유일한 숨쉴 구멍, 내가 속한 세계,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바르고 따르고 싶은 모습을 보여주는 멘토이자 선생님, 즐겁게 놀아주는 친구들, 세상에 대한 간접 경험, 내가 죽지 않고 내년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였다(다음 권 나오는걸 보고싶어서..).


컨텐츠 속에서 만난 주인공들의 독백과 말 속에서 위로받고, 공감되고, 같이 슬프고 괴롭고, 같이 쓰러지고, 투지를 다잡고, 자존심을 세우고, 다시 일어나곤 했다.


지금 다시 봐도 좋은 대사들과 닮고 싶은 인물들이 참 많다. 당시 내게 만화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세상 그 자체였다. 그것도 매력적인.




하지만 만화는 현재 세계를 그려내어주지 해체시키고 재구축해주진 못했다.

예술이 때로는 세계관을 확장시켜주곤 하지만

예술은 직접 말하지 않는다.


그 세계 속에서 그려진 것들을 보면서 나름 성장할 수는 있었지만

내가 확고히 가진 세계관, 가치관, 사고방식, 그리고 더 정확히는 성격을 바꿔주진 못했다.

아마 아무리 내가 공감되는 것이라해도 현실의 내게 필요한 맞춤 처방전을 줄 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 이야기들이 완벽히 내 이야기인 것은 아니니까.


그건 바꿀 수 있는 영역의 것이란 생각도 많이 못 해왔던 것 같다. 마치 MBTI가 자신의 정체감이 되는 요즘처럼.


그리고 그 부족하고 모난, 겁이 많고 비굴한, 정돈되지 않고 공격적인 성격을 가지고 학교에서, 사회에서, 사람들 속에서 참 많이 다치고 다쳤다. 지금도 사실 진행 중이다.


사는게 괴롭고 버겁고 힘겨울 때 쯤 이렇게 살면 아무것도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을 찾았다.





#심리학


심리학은 학문이며, 학문은 왜? 그럴까 하는 질문을 태생적으로 지닌다.


나는 왜 그럴까?
나는 왜 계속 이러는 걸까?
나는 왜 계속 고통받지?
나는 왜 멈추지 못하지?
나는 왜 바꾸지 못하지?
나는 왜 시작하지 못하지?

나는


나는 나를 알고 싶었다.



직업흥미검사에 예술형과 함께 항상 내 검사결과로 등장하는 것은 탐구형이다.

나는 그냥 공감받고 위로받는 걸 넘어서
이 혼돈과 혼란을 이해하고 싶었다.

파고들고 파고들어서 이해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이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의식도 사실 안했고
그냥 알고싶었다!!!!! 왜 이ㅈ같은 일이 일어나는거야!!!!!





심리학은 여러가지 해석들을 주었다.

수십년동안 쌓인 현명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은 사람들과 자기자신을 분석하며 나온 결과물들 중 정말 고르고 골라 누구나 납득하고 있는 진주같은 것들을 접했다.


문장 하나하나가 다 내 얘기였다.
내가 아는 사람 얘기였다.
내 부모 얘기였다.



만화를 정말 사랑했지만, 지금도 사랑하지만,
나의 괴로움을 벗겨주고,
그동안의 내 삶이 왜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시켜주고, 이해해주고,
어떻게 다르게 살아야하는지 이끌어준 것은 심리학이었다.



게다가 깊이 들어갈 수록 내가 안다고 생각한 내가 그 안에 새롭게 더 알아갈 것들이 있고, 그 층위 아래에 또 새로운 층이 있고… 무한한 양파를 까듯 겹겹이 끝이 없다. 그것 또한 재미다.




#그리고 지금 둘과의 관계


내가 아마 처음부터 괴로움이 없었다면 여기가 아닌 예술을, 내 첫사랑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다른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면? 이런 가정도 가끔은 든다.

하지만 지금 이게 내 현실이고 유일무이한 내 삶이니..

지금 내게는 심리학이 만화가 주지 못한 것들을 주었다.


일어나야한다고 다그치고,
나보다 힘든 상황에서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공감과 위로를 주고,
혼내고, 싸우러 가라 일으켜세우고

같이 전율하던

만화는 내 친구였다.



친구가 보여준 세계 속에서
나는 내가 현실에서 처한 유해한 환경으로부터 살아남을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고
그 속에서 나다움을 완전히 잃진 않고 성장할 수 있었다.

만화는 나를 살아버티게 해준 동지다.


반면,
심리학은 내 선생님이자 제2의 부모이다.
내가 아기가 된 듯 아주 작은 습관들부터 나 자신을 다루고 알아가는 법을 하나하나 알려주었다.

새롭게 세계를 이해하는 언어를 알려주었다.

지금도 배우고 있다.



그래서일까 두 영역을 대하는 내 마음은 사뭇 다르다.

심리학은 나와 좋은 관계이고 얘를 틀렸다고 하면 왠지 반박하고 싶어진다. 뜨겁진 않지만 오래 가는 관계가 될 것 같다.

만화는 언제나 그리운 대상이고 빛나는 존재며 첫사랑 같은 느낌이다. 얘가 별로라고 하면 니가 뭘 안다고? 이런 생각이 든다. 자주 보진 못하지만 죽을때까지 만화나 예술을 싫어할 일은 없을 것임을 느낀다.


만화와는 즐겁게 어울리고 싶다.
그는 여전히 너무 매력적이다!
사랑하는 마음은 여전하며
언젠가는 내 작품을 만들겠다는 소망도 여전하다.



예전 글들을 보다보니
만화에서 삶의 해답을 찾던 때의 내가 떠올라서 적어보았다.




ps. 요즘 고등학생때 보던 애니를 정주행하고 있는데 역시나 명작이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왜 좋아할 수 밖에 없었는지 너무나 알 것 같다. 결국 그때도 나는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고 나와 공명하는 것들이 좋았던 것이다. 좋은 예술은 사람의 마음을 울리는 것들이지 않은가.




ps.ps. 우리 상담쌤은 항상 상담도 예술이라고 하신다. 실제로 대가들의 문헌에 그런 표현이 왕왕 나온다. 그리고 하다보면 일부 공감되는 점도 있다(아직 완전히는 받아들이진 못함).




ps.ps.ps 심리학을 배운 뒤 예전 만화를 다시보니 더 와닿는게 많았다. 좋은 캐릭터들의 대사가 주는 울림이 더 커져서 역시 만화에서 배우는것도 많구나 다시 느낌. 그냥 내가 성장해야 보이는 폭도 달라지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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