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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l. 2021

테우리 2021. 1. 31. 01:21

영화 소울 보고 쓰는 일기

분명 영화를 보고 나오는 순간에는 엄청난 울림을 느꼈는데 집에 돌아오니 쏟아지는 정보와 할일과 유혹에 순식간에 사그러 들었다.
그게 안타까워서 얼른 쓰는 일기.

영화 보는 약속 시간을 꽤나 지나 도착했다. 요즘 24시간을 집에서만 보내고 있어선지, 할일이 많아선지,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르겠다. 열심히 살고는 있는거 같은데 기억상실증에 걸린 것 마냥 일상이 증발하는 기분이다. 하루에 뭘 했는지 기억이 안나는 데 해가 지고 어둑해지고 어느새 나는 아까 나온 것 같은 침대에 다시 눕고 있다. 이런 기분이 너무 싫어서 매일 한 일을 기록하는데 집착하기도 했다.

어제도 하루종일 프로젝트 업무, 알바 업무를 하고 졸업 준비의 압박을 느끼며 해야할일이 끝없이 쌓이는 걸 지켜보며 쿠키런으로 회피를 했었다. 주말에 밀린 일을 해야지 하고 생각해서 영화약속은 까맣게 잊고 잡아둔 할일이 많았었다. 약속이 기억났을 때의 멘붕이란, 솔직히 영화 보가는게 반갑지 않았다. 지금 이럴 땐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래도 예매는 했으니까, 쌓인 일들을 빨리 해치우고 나가야지 하는 마음에 토요일 아침에 알림을 맞춰두고 일어났다. 오전에 스트레칭 5분도 못하고 알바 보고서 하나 쓰고 제출, 오늘 저녁에 있을 회의 자료 정리하고 블랙 커피 한잔 들이킨 다음에 바로 나왔다. 그런데도 늦고 말았다.

오는 길 내내 화창한 겨울 하늘에 햇빛이 따스했다. 나는 버스를 타고 가는 중이었는데 그 때 먼저 든 생각은 지하철이면 가는 길에 뭐라도 읽고 할일 하나라도 했을 텐데였다. 가면서도 온라인 강의를 들을까 하다가 시끌시끌한 버스 소음에 어차피 못들을 거 같아서 그냥 게임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낮에 멀리 나가는 중인데도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별로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게임의 다음 동작, 다음 퀘스트를 틀에박힌 로봇처럼 계속해서 했다. 나는 수레바퀴 아래에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는 제시간에 시작하지도 않았다. 마스크를 쓰고 거리두기를 하고 극장에 별 시덥지 않은 광고가 나오는 걸 보고 있었다. 유튜버나 인스타 웹툰 광고까지 나오다니 수입이 안나와 어렵긴 한가보다 하는 그런 어른스런 생각같은 걸 하고 있었다. 폰은 꺼서 가방에 두었다. 그래도 엣날 사람이어선지 극장이나 공연장에 가면 스포트라이트에만 집중하는 편이다.

[스포주의, 강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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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디즈니 고성과 삐걱거리는 사운드로 시작한 영화는 결국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보고 말았다.
끝나고 사람들 평이 그리 좋지만은 않은 것이 충격이었을 정도로 나에게는 좋았고 좋았다.

무엇이 기억나냐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내려다 보이는 지구이다. 이 지구가 얼마나 아름답고 ‘가고 싶은 공간’으로 그려지는가. 그 지구로 향해 날아가는 떨림과 설렘, 신남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것들이 우리 모두에게 공통적인 마음이라는 것도 전 지구적으로 우리가 연결되어있고 같은 마음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너무 좋았다. TCI성격검사에 거대한 것과 내가 연결된 느낌을 가지는지 측정하는 지수가 있는데 나는 이 부분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기억이 났다. 평소에도 전 생명과 나, 전 지구와 나, 우주와 나를 생각하며 사는 내게 이런 대형 스크린에 온통 까만 공간 속에 빛나는 지구는 더더욱 잊을 수 없는 형상이다.

영화에서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 중 하나인 ‘음악’도 참 좋았다. 재즈도 원래 좋고, 피아노는 더더욱 좋지만 그보다 그 이 너머의 세계를 상징하는 사아~~~~~ 하는 테크니컬 사운드가 뇌리에 꽂혔다. 주인공 조 가드너는 음악이 자신의 삶의 불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조의 삶을 음악으로 증명해내려는 의지와 욕구가 이 스토리를 긴장감 늦추지 않고 흘러가게 해준다. 그런 조가 죽음 이면에서 맞이한 세상은 무채색의 공간일 뿐 아니라 그가 사랑하는 다채로운 음이 아닌 사아~~~~~~ 하는 모든 것을 빨아들일 것 같은 소리로 대표된다. 유 세미나에서도 도란도란 귀엽게, 웃기게 대화하다가 제리가 웃으면서 차원의 문을 열면 다시 사아~~~~~~~ 하는 사운드가 나오면서 ‘죽음의 공포감’이 한번에 내 가슴 깊은 곳까지 전해진다. 소멸의 청각화. 그 따뜻한 공간의 아기자기한 사운드와 대비시키는 연출이 인상깊었다.

재즈는 주어진 화음 위에 즉흥적 멜로디를 얹어 자유자재로 그 순간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순간을 만드는 예술이다. 그런 재즈가 이 영화의 또하나의 주인공임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웃긴 것은 그 변칙적이고 유일무이한 것 같은 악흥의 순간을 지향하는 재즈 뮤지션이 되자마자 맞닥뜨린 현실은 내일도, 모레도 같은 시각, 같은 공간에서 연주를 해야하는 ‘일상’이다. 그 사실에 조는 뭔가 큰 변화가 있었을 줄 알았어요 하면서 허망함을 느낀다. 그런 조에게 영화는 사실 극적인 변화 따위 없다는 것, 바다를 찾아 헤매던 물 속의 물고기가 사실은 그 바다 속에 있다는 것을 들려준다. 사실 그 말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는다. 연인도 가정도 없는 조가 죽음에서 탈출하고 다른 영혼의 배지를 갖고 뛰어들 정도로 인생에 가장 중요한 순간, 꿈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이 빠른 편집으로 끝나자마자 어둡고 조용한 아무도 없는 집의 방문을 열면서 그 허탈감과 고독감이 극도로 커진다.

처음에 왜 극적일 수 있는 성취의 순간을 길게 잡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재즈 음악을 좀더 몰입해서 담을 수도 있었을텐데, 오히려 음악에 몰입하게 해주는 순간은 영화 초입에 오디션 장면이다. 그때는 피아노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건반 하나 하나에서 울리는 음이 알알히 박혀 맴도는 장면에 푸른 빛과 보랏빛은 내게 명장면 중 하나이다. 만약 이 영화가 음악영화라던가 성장영화였으면 그 성공의 순간에 극적으로 길게 머물렀을테다. 이 영화가 클래식 연주자의 이야기가 아닌 것도 너무나 좋다. 그랬다면 잘했다, 못했다, 틀렸다, 맞았다를 떠올리며 스토리에 집중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즈는 연주자의 것이고 그 순간의 것이기에 개인적으로 그걸 잘했다 못했다의 의미를 따지는 건 의미없다고 본다. 그래서 조의 인생공연은 사실 우리에게 크게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그 순간을 만들었다. 이 점은 사실 조가 놓치고 있던 성취의 다른 아름다운 이면이기도 하다. 매일 반복되는 것이 좀비같은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사실 매일 같은 음악을 같은 사람들과 연주해도 절대 같지 않다. 그날의 비트와 컨디션, 멜로디가 다르다. 재즈라면 더더욱. 어느 관객에게는 유일한 공연일 수도 있는 그 모든 공연이 다 즐겁고 아름다운 것이다. 아주 특별한 것이 없다는 것은 거꾸로 보면 모든 것이 특별한 것이다.

영화는 소울22를 통해 그 메세지를 보다 직접적으로 전달한다. 솔직히 최고의 장면은 여기다. 단풍나무 씨앗이 팔랑팔랑 떨어지고 가을 하늘이 살짝살짝 비치는 단풍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 그 사이로 햇살이 따스하게 내 눈에 내리쬐는 순간. 손에 떨어지는 까슬하고 단단한 작은 씨앗. 아 이거만 써도 눈물이 나네. 이 작은 감각들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다. 지금 이 일기를 쓰는 타자의 겉 표면에 있는 아주 느낌좋은 요철, 팔꿈치의 뻐근함, 내가 좋아하는 잠옷바지가 다리에 닿는 느낌, 젖은 머리가 목 뒤에 닿는 감촉. 오늘 영화를 보기를 참 잘했다. 보고나서야 이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있어서 내가 하루를 증발한 것처럼 느꼈구나하고 깨달았다. 영화에서 삶과 영혼이 분리되어 집착에 빠져있는 괴물들이 나오는데 딱 핸드폰 게임에 빠진 내가 그 꼴이다. 오늘 버스에 탄 나 말이다. 현실에 내 몸에 Here and Now에 있지 못하고 생각이 어디론가 가버리거나 핸드폰으로 중요하지도 않고 보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좀비처럼 보고 있는 나는 영혼이 삶과 분리된 상태였다. 모든 것이 반복되는 새로울 것 없는 집이란 환경에서 주어진 일만 처리하거나 게임으로 도피하는 ‘어른’이 내게 신생아나 다름없는 소울22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기분좋은 울림으로 머리를 친다. 특히 나는 내가 가진 내 맘에 드는 장점으로 천진난만한 아이처럼 감각하고 현실을 언제나 새롭게 느끼는 것을 꼽았던 사람이다. 그런 나였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지금 글을 쓰면서 깨달았다. 그랬다. 나 그런 사람인데. 평면 스크린에서 나오는 햇살과 건물 코너에 이는 바람을 보고 내가 속한 현실의 감각할 수 있음을 소중히 해야지 하고 느끼다니. 와우.


영화에 이 외에도 너무 많은 메세지가 담겨있어서 일일히 쓰기가 어렵다. 아기의 시선으로 느낀대로 표현하기, 솔직하게 표현하기. 삶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기(이발소씬), 즐거운 것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에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알기(지하철환풍구씬, 지하철음악가씬),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의 멋짐(아니 이건 솔직히 무슨 마법이라도 건 것 같았다. 계단에서 연주하는 코니가 순간 정말 너무 멋져보여서 그 시선을 어떻게 화면에 담았는지 신기했다). 마지막에 조가 그 허탈함 가운데 소중한 것들을 늘어놓고 결국은 ‘음악’을 만드는 것도 그에게 음악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의 중심인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 좋았고, 몰입의 순간이 복선이 되어서 조와 22를 연결해주는 것도 좋았다. 조의 연주장면이 불편했던 것은 상처받은 22를 냅뒀기 때문에 이건 아닌데 하는 마음으로 봤기 때문이다. 그게 다 해결되고 끝까지 삶을 살아본 선배로서의 모습을 보여주는 조의 모습도 아름다웠다. 삶이란 매일매일의 순간 그 자체가 의미있던 거라는 걸 깨닫자마자 그 기회를 건네줄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마음이 든 것도 감동적이다. 그대로 죽음을 맞이해도 성인동화로서 충분했을 거 같은데 꿈과 희망의 애니메이션은 그런 조에게도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

아마 그는 선생님과 연주자의 역할을 둘다 충실히 해내며 유쾌하게 살아가지 않을까. 연애도 할거고 말이다.
맛있는 것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끼고, 상쾌한 바람과, 빗방울이 튕기는 소리를 들으며 살 것이다. 엄마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곁에 있어드리고 아이들의 반항에 쩔쩔매기도 하고 성장을 지켜보기도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내내 여러 사람의 이름들을 보면서 이 사람 하나하나가 소중한 영혼들이고 그들이 이렇게 머리 싸매고 앉아서 소중한 영화를 만들어 내게 전해줬다는 사실도 감동적이었다. 예전에 나는 디즈니 픽사 영화 크레딧을 볼 때마다 내가 저 자리에 가야하는데, 하며 그들의 삶을 부러워하곤 했다. 오늘은 조금 달랐다. 그 생각도 떠올랐는데 바로 지금 내 위치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의 소중함과 즐거움도 떠올랐다. 꼭 무언가를 해내고 싶으면 도전해보기, 하지만 그만둬도 괜찮고 다른 것을 해도 괜찮다는 것. 그 여정 전부가 삶의 의미 그 자체라는 것.

쭉 늘린 발가락 끝의 시원한 감각을 느껴본다.
오늘 하루도 좋은 기억을 만들었다.
이 지구에서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고 또 감동한다.

정말 신이 있다면 삶을 주심에 감사를.


삶이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고 단조로운 일상만을 반복하며 시간을 날리고 있는 아빠와
무언가 엄청난 것이 되려고 노력하느라 전전긍긍하고 행복하지 않은 내 친구 W에게 이 영화를 추천하고 싶다.

요즈음 세상에 삶의 의미를 곧추 세우고 만들어가는 것이 지상 최대 명제인 것처럼 돌진하고 투쟁하고 좌절하는 사람들과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꿈이 없는데, 하고 자신을 모자란 것처럼 느끼는 쭈굴쭈굴한 사람들 두 종류가 우리 주변에 가득하다. 그 둘 모두에게 전해주는 따뜻하고 울림있는 메세지. 소울.


그 외.
- 성격이 태어나기 전에 형성된다는 게 심리학에 나오는 얘기 같아서 재밌었음
- 테리가 서류철 가나다 순으로 다 뒤지는 게 싸늘하면서도 짜릿했음
- 제리들이 대화하는 게 너무 부드럽고 온화해서 긴장 안해도 되는게 편안했음
- 사실 한줄요약하면 엄청 뻔한 메세지, 그래서 여운이 휘발되는건가 싶기도 하고, 포스터에 별 설명이 없었던 듯.
- 한글 많이 나와서 반가움. 이건 한국 사람이면 다 인정할 듯.
- 개인적으로는 인사이드아웃보다 더 좋다. 그 땐 안 울었음;
- 일상으로 돌아가면 또 이 느낌을 잊을 거 같다. 그래서 졸린데도 쓰는 일기.
- 웃긴게 아까도 계속 게임하고 싶었음. 중독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 OST정주행해야지
- 여전히 픽사, 디즈니 일해보고 싶긴하다
- 그 너머의 세계로 그려서 종교적 논쟁을 벗어난 것, 영혼은 민트색이라 인종에서 벗어난 것, 인류 공통의 메세지를 전하고자 한다는 것도 내가 매력을 느끼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