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기억 느낌/나 관찰일기

일기 그리고 또 일기

테우리 2014. 11. 17. 02:18

하루종일 혼자있고 하는 일이라곤 '읽기'뿐이니

생각이 많아지고 그 생각을 주워담을 요량으로 계속 블로그에 뭔가를 쓰게된다.

 

오늘 하루는 여러사람의 블로그를 읽는걸로 끝이 났다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몇가지 있다.

나라는 붓을 가지고 그리는 그림이 인생이라는 하나의 애니메이션과

세상은 해석한대로 이해한다는 것과

사람용 세탁기나

뭐 그런 것들

 

그 중에 미래사회에 발명되면 어떨까 싶은 것에 대한 나의 상상이미지는

사람들이 영화관 같은 데에 빨갛고 폭신한 의자에 앉아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사람이 나가서 오늘의 주제는 저에요~하고

그 사람 머리에 모자같은걸 씌우면 화면에 그 사람의 생각이 펼쳐지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화면 따위는 없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 상상하는 것 떠올리는 모든 것을 똑같이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사람이 아름다운 장미 정원에서 뛰놀던 유년시기를 생각하면 모두들 그 때 그 사람이 느꼈던 장미향, 햇살, 잔디를 밟던 감촉과 무릎에 오는 중력감, 심장소리, 두근거림, 설레임과 기쁨, 이런 것들을 공유하는 하나의 '감상' 매체를 향유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주체가 되는 사람은 생각 컨트롤을 아주 집중해서 해야하는데 왜냐하면 생각이란 것은 해보면 알겠지만 가만히 두면 종잡을 수가 없어서 순식간에 '아 저 맨앞에 앉아있는 할아버지 배가 나왔군'하고 생각해버릴수도 있기 때문이다.(게다가 갑자기 야한 생각하게 되버리면 순식간에 19금이 된다!)

 

그 이미지에 연결되는 이미지로 어릴적 읽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동화책에 영향을 받은 이미지가 있다

인간이 하나의 우주라는 거

말 그대로 하나의 고차원적인 집합과 차원을 영위하고 독자적인 유일무이한 성격을 가지는 존재라는 것.

(최근에 우리 우주의 이미지가 뉴런의 형상과 유사하다는 루머가 돌면서 사실 우리우주가 어떠한 외부존재의 생각이라는 얘기가 돌기도 한다 ㅎㅎㅎㅎㅎ)

 

이 우주와 같은 존재들이 이래저래 만나고 하면서 마치 비눗방울들이 접했다가 떨어지듯

그렇게 영향을 주고 받는다 싶다

 

 

이게 아마 내가 초등/중학교 전후로 가지게 된 이미지들인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블로그로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 유투브로 영상을 만들어올리고, 그라폴리오에 그림을 올리고, 아무나 정보전달이 가능하고 광고를 하고 견해를 드러내고 소리를 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시작이, 이제 막, 되었는데, 인간이 발전하는 속도를 보면 내가 죽을 때 쯤에는 아니 한 30여년 뒤 쯤에는 정말 내가 가진 이미지처럼 한사람의 우주가 원하는 만큼 전세계의 사람들에게 노출/공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의도한 것보다 더 노출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수만가지 우주가 상호작용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게되면서 지금껏 인간이 살아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생겨날 것이다. 뉴런이 겨우 세포인데도 불구하고, 겨우 단순한 시그널 전달을 하는 작용을 하는데도 인간의 인식력이나 상상력은 무한한 이유가 무엇인가. 시너지효과이다. 1 더하기 1이 3, 5, 천, 만, 억, 무한대로 늘어날 수 있는 시너지 효과. 그 시너지효과가 세포수준을 넘어서 인간 개체 수준에서 전 인종, 전 국가, 남녀노소 시간/성별을 뛰어넘어 일어난다면 발휘될 수 있는 효과는 지금 내 상상력의 수준을 넘어선다.

 

 

최근에 생각하게 된 것은 이런 시대상에 있어 한국은 굉장히 장점을 지닌 국가이며 무척 리스크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일단, 1,2차산업에서 3차, 서비스/컨텐츠/소프트웨어/디자인 과 같은 산업이 더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는 이 시대에 '인간 자원'으로만 연명하던 한국은 그 어느때보다 강국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쌀 수확량으로 강대국의 조건이 주어졌더라면 우리나라는 그냥 무조건 KO다. 지금은 게임이 다르다. 똑독하고 창의적이면 이길 수 있다. 땅덩어리의 크기가 제약이 되는 것이 아닌 시대다. 리스크는 획일적 교육문화, 다양성 낮음, 정답을 요구하는 사회적 문화와 같은 것들이 있는데 이는 다른 글에서 집중적으로 다뤄보겠다.

 

 

오늘 여러 블로그들을 보고 여러 사람의 우주를 먼발치에서 슬쩍 보면서 느낀 것은 다른게 아니고

'가치있는 삶'은 무엇인가 하는 나의 질문에 대한 여러가지 답변들이다.

답이 너무 많고 다르다. 삶이 단순하다면 얼마나 쉬울까.

 

가치관이라는 것이 다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가치있는 삶을 정의하려는 것 자체가 바보같은 시도 같다.

 

처음에는

남들에게 인정받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에서 정점이 되어야 가치있다 여겼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없고 나는 분노에 차 있거나 좌절하거나 투쟁하거나 도피하는 상태로 존재할 뿐이었다. 그건 삶이 아니라고 느껴졌다. 가치관을 바꾸게 된 결정적인 순간에 나는 매우 슬펐다. 외로웠다. 행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재미있게 순간순간 즐기고 행복하게 살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살아야겠다 했다. 어차피 세상에 가치란 의미부여하기 나름이므로 거꾸로 모든 것은 무가치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죽으면 다 나와 무관해질 것이란 생각에 현실을 즐기는 쾌락주의자가 되어야지 했다. 더이상 나는 분노하지 않았고 투쟁하지 않았다. 때때로 평화로웠고 즐거웠고 어떤 때에는 참 행복하다 했다.

행복한 일상을 온전히 맛본 것은 좋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저주일까. 내면에서 다음 질문이 들어왔다. 이런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 나는 사회나 세계에 가치를 창출해내기를 외면하고 있었다. 그러다보니 삶에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즐거운 삶일 뿐이다.

 

 

오늘 본 여러 블로그에선

 

자신이 행복한 것을 가장 중요히 여기고 거기에서 만족을 느끼는 삶

더 나은 위치를 갈구하고 또 그를 위해 온전히 노력하는 데서 의미를 찾는 삶

자신의 위치에서 행복해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삶

배우고 익히고 자신의 깊이를 더 깊게하는데 의미를 둔 삶

인간 존재에 물음을 던지고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관념들에 대해 숙고해보는 삶

그냥 하루하루 먹고살기위해 일하고 마는 삶

밖에서 보기에는 이렇다할 성공따위 하지 못했지만 자신의 분야에서 어느정도 이루었고 생각의 틀도 갖춘 삶

 

이런 삶들을 보았다.

 

 

 

갑자기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나는 세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존재가 될 생각을 해보았는가?

순수한 성취가 순간의 고통을 이겨낼 만큼 중요하다는 점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나는 현재 쾌락주의자적인 태도로 살아가고 있었으므로)

나보다 더 많은 타인과 세계를 위해 살아가는 삶이 더 값어치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또

더 즐거운 것이 세상에 많은데 지금 만족해버리면 아쉽지 않은가?

나는 사실 지금 별로 즐거운 상태가 아닌지도 몰라, 더 즐거운 것이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이건 악마의 속삭임들일까?

그냥 현재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행복의 길일까?

 

 

삶의 무게와 소중함을 죽는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해보면

매번, 이렇게 허투루 살면안되겠다, 싶은데

막상 또 제대로 살아보려니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사는 것인지 도무지 알길이 없다.

 

 

 

억겁의 세월동안 지옥의 불길에 타다가

자, 이번에 단 한번 세상에 태어날 기회를 주겠다, 어디 한번 잘 살아보거라

하고 세상에 나온 것이

나라면, 지금 26년은 이미 지나서 어쩔수 없다손치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빛이 나는 삶이 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야 말 그대로 '원없이 사는 삶'이 될 수 있을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마지막에 가서는 잘 놀다 갔노라 라고 말할 것임은 알지만

아직 선택하기 전인 상태에서 생각이 많아지는 건 막기가 힘들다.

흘러가는 대로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주어지는 대로 잘 따라가려하고 있다.

더 좋아지려면 어찌하면 좋을까

어떻게하면 나도 행복하고 잘하고 즐거우면서 세상에 도움도되고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 일조하며 깊이 있는 하나의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될까

 

 

 

어차피 나는 죽는다

목표한 바를 이루고 죽을 수도 있고

이루려다가 죽을 수도 있고

실패한 뒤에 죽을 수도 있다

 

내가 죽고나면 내가 하고자 했던 것들, 내가 좋아했던 것들, 내 주위에 인간관계, 사상, 철학, 밟았던 땅, 내가 쓴 글, 남긴 그림들, 이야기들, 배웠던 것들, 학문들, 맛본 것들, 가지고 있던 모든 재산들, 돈, 지금 새벽 2시에 느끼는 졸리움, 목에 간질거림, 추위나 더위, 음악이 주던 황홀함, 거절의 아픔, 외로움의 고통, 사랑의 기쁨, 그래, 이 모든 나와 관계된 것들이, 내가 의미있게 여기던 모오든 것들은 나의 우주 속에서 그룹화 되있던 상태에서 '아무 관계 없는 것들'로 해체되어진다.

 

갑자기 글을 쓰다 떠오른건데

사람이란

한 평생동안 엔트로피에 역방향으로 자신의 우주를 팽창시키고 최대한 끌어모으고 또 노력하다가

죽는 순간 팡!

터져서 엔트로피 최대치를 찍고 세상에 흔적도 남기지 않는

정말 가변적인 물결같은 존재다 싶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이 세상에서

이제 벌써 인류는 목적없는 삶에 대해 적응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선사시대때부터 근대까지 수많은 인간들이 지금까지도 '우리는 왜 살까?'에 대한 의문에 목을 맨다.

종교나 철학이나 신념이나 그 외에 수많은 답들.

우리는 왜 삶에 목적을 갈구할까

그게 제일 궁금하다.

 

목적이 없는 삶이 많다. 아예 없다기 보다는 그 목적 자체가 가변적인것들이라 살아 생전에 그 목적들이 이뤄지거나 없어지거나 하는 삶들이 많다는 거다.

 

 

 

집 직장 집 직장 집 직장 하다가 컥 하고 죽는 삶이나

서핑 미술관 등산 토론 여행 독서 하다가 컥 하고 죽는 삶이나

둘다 목적의식이 없다면 똑같은 거 아닌가? 안 똑같아 보이지? 그렇다. 그게 내가 처음 삶에 부딪혔을 때 느낀 것이다. 그 다음 벽에 부딪혔다. 저 두 삶이 사실 둘다 무가치하게 느껴질 수 있다.

 

집 직장 집 직장 집 직장 컥 하고 남는 것이 아프리카 백신 개발 완료라면

그리고 그 일 자체를 즐겁게 또는 의미있게 했다고 하면 두번째 삶보다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는 거 아닌가?

 

 

 

내 남은 인생이 어떤 인생일지 모르겠다.

여러 답들을 기웃거리다 답없는 인생으로 끝날 것인게 내 인생인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그래도 참 와닿는 과거의 인물들, 과거의 우주, 역엔트로피의 흔적들, 삶들을 말해보라하면

고갱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최근에 그의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를 봤기 때문일지도.

의도치 않게 고갱에 흔적이 강하게 남는다.

독서모임에서 읽게된 (내가 선정하지도 않은) 달과 6펜스

타이티를 떠올리게된 하와이에서의 열대 섬 생활

그리고 그 속에서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극심한 고독

순수한 것에 대한 동경 그리고 자연으로 회귀하는 마음

미술과 색채에 대한 사랑

이런 것들 때문일지도.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행복하게 산다고 생각했다가

저 그림을 다시 보고 잊고 있던 질문들이 수면으로 떠올랐다.

지금 나의 최대의 화두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가치있는 삶이란?'

 

 

 

 

 

 

 

 

 

*****

to be list 작성하기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보다
내 역할에 충실하고 그에 따라 긍정적인 영향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던 사고방식은 앞으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중요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emily"



ps 이미지에 대한 거에 덧붙여. 내가 생각하는 현대 IT 세계에서 구현되는 두가지 이미지가 있다.

하나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거기 나오는 시계토끼는 손에 시계를 들고 바삐 어딜가는거로 나오는데 딱 한국 서울시내 한복판에 서있으면 그런 토끼같은 사람들은 시종일관 관찰할 수 있다. 사실 루이스 캐럴은 웜홀을 통해 21세기에 방문한 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지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그런 시나리오.

 또 하나는 황금나침반에 나오는 데몬. 핸드폰이 이제 거의 데몬이나 마찬가지이다. 데몬이 뭔지 궁금한 사람들은 책을 읽길 바람. 대략 내 영혼의 일부이자 파트너이자 항상 어디든지 함께 다니는 분신 이런거다. 책에서는 사람 성격에 따라 동물의 형상이 다르게 나타나는 데 핸드폰 외부 꾸미는 것부터 내부 시스템 구성이나 최적화 정도, 그냥 글씨체 같은 것까지 다 다양하게 나타나는 걸 보면 내가 죽기 전에 아름다운 데몬 형태를 한 스마트기기 또는 형상화된 소프트웨어 같은 걸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