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우리 2015. 1. 29. 14:58
내가 과학과 주식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는

첫째, 남의 의견이라고 모두 옳거나 모두 틀리지 않는다.
그건 그냥 그 사람의 가치관이고 생각일 뿐이다. 생각 그 이상의 무게를 줄 필요가 없다.

둘째, 자신만의 생각을 가져야 타인의 목소리 물결 속에서 자신을 지탱할 수 있고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순간 사람은 답정너가 되버리고, 어떻게 보면 똥고집이 되어 버리는데 나는 그 순간을 자신의 목소리를 가지는 때라고 본다. 그때부터 삶은 자신의 선택의 결과이며 어른으로서 책임을 지니게 된다.
한편으로는 자유로우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기반의 책임감이 생긴다.

셋째, 지금 아무리 종교처럼 맹신하는 것도, 생각도, 사상도,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 바뀔 수 있다. 현상이란 지금 시점에서 최선의 것일 수 있으므로 미래의 알지못하는 경험, 만남, 배움, 사건 등으로 인간은 그 이전과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인간이 잘 변하지 않는다고? 그런 차원에서의 말이 아니다. 패러다임 쉬프트의 관점을 말하는 거다.

그러므로 지금 나와 다른 의견을 목에 핏대세우며 외치는 사람의 말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필요는 하등없다. 미래에 그 사람이 맞는 소리여서 내가 수긍하게될 수도 있고, 내가 맞아서 그 사람이 나에게 동의할 수도 있고 우리 둘다 틀릴수도, 시간이나 관점에따라 둘다 맞을수도 있다. 그냥 저건 견해구나 하면 된다.
(그 사람이 나의 행동과 의지를 자신의 생각대로 컨트롤 하려들면 그건 얘기가 다르다. 그건 싸우자는 거다)


넷째, 자신의 가치관에서 누군가를 판단하는 건 괜찮은데 그걸가지고 타인을 대하는 건 의미없다. 왜냐하면 각자의 가치관은 다르기 때문이다. 최근에 나보다 잘나가는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 나한테 미안해하는 표정을 보았는데 나는 개인적으론 그냥 좀 웃기고 귀여웠다. 마음 깊은 곳까지 솔직해지면 정말 나는 하나도 안부럽고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다. 사실 인간은 타인에게 별로 관심이없다. 타인의 큰 사건들이 사실관계로서 다가올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스스로의 생각이 만드는 것이다. 나는 나만의 생각이 따로 있으므로 그들이 생각하는 가치관에서의 성공은 나와는 별개다. 한가지 덧붙이자면 그 미안한 웃음을 진 아기들보다 훨-씬- 성공하고 잘나가고 행복하게 사는 형님들을 더 많이 안다. 그렇다고 아는척 내 지인 자랑할 일도 없으니 그냥 넘어간다.


다섯째, 사건의 시간의 흐름 속에서 생각해야한다. 지금 좋은 것, 지금 나쁜 것에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 물론 삶은 행복함과 기쁨으로 차야하니 그런 긍정적 감정은 떠오르게 둬도 좋다. 다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지금만을 고려했을 때와 다른 움직임을 보일 수 있다.

여섯째, '진짜' 가 중요하다. 기업도 기업의 '진짜'가치가 중요하듯이. 나는 진짜로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하고. 숫자도 그게 진짜로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겉으로 표현되는 것에 현혹되면 그 책임은 스스로가 져야한다. 그리고 나자신도 진짜 가치로 채워져야 넘어져도 일어날 수 있다.




과학의 진짜 매력은 비판적인 사고와 패러다임 변화의 인정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근거에 기반한 논리와 확률론적 사고.


학부 때 우연히 읽기로 결심한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 추천.




타인과 나가 서로 같을 수 없음을 인정하면 차별이나 멸시라는 것이 정말 바보같고 어리석은 것이라는 점을 느낀다.


그 사람의 좋고 나쁨과 삶의 가치는 그 스스로가 정한다고 생각한다. 인류사에 아무런 기록에 남지도 못할 한 할머니의 삶은 그 할머니가 건네준 들꽃을 받은 한 소녀의 삶에서 큰 의미가 될수도 있고, 그 할머니의 손자의 인생 지표가 될수도, 그냥 그 할머니 본인이 잘 살다 갔다 하며 만족할 수도 있다.


이 모든 것도 다 지극히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옳고 그름을 논할 가치는 없다.